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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다음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폭망'해야 하는 이유

ⓒ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정당은 대의민주주의를 신장시키기 위해 시민의 투표를 독려하고, 투표율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방안들을 강구해야 할 책무가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대한민국에도 투표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정당이 하나 있다. 그런데 이 정당은 아주 기묘하다. 다른 여타 국가들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데 반해, 이 정당은 그쪽으로는 아예 관심이 없거나 되레 시민들이 투표를 많이 할까봐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낮은 투표율에 기대 정치생명을 연명하려는 정당이 대의민주주의의 근본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이 정당은 민주정부 10년과 문재인 정부 2년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정권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기이하다고 말할 수밖에.

눈치챘겠지만 투표율이 높아질까봐 노심초사하는 주인공은 바로 자유한국당이다. 지난 2014년 국민참정권 확대 차원에서 현행 '만 19세 이상'에게 주어지는 투표권을 '만 18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이 정치권 안팎으로 강하게 대두된 바 있다.

그러나 이 논의는 활발히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한국당)의 강력 반발로 투표연령 하향 조정의 불씨가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투표연령 하향에 반대하는 한국당의 기조는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선거연령 조정에 반대하는 한국당의 속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젊은층이 투표에 참여하게 될 경우 선거판도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는 18세 연령이나 이런 것은 너무나 파장이 커서 수용이 어렵다, 오차 범위내 초접전 지역이 대부분인데 전체 선거의 절반이 수도권인데 선거연령을 줄이는 것은 부담스러운 제안이다" (2014년 원유철 원내대표)

"우리의 전략은 이 중간층이 이쪽도 저쪽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를 못하겠다면서 투표 자체를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다"(2012년 박근혜 캠프 김무성 선대본부장)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 힘든 어처구니없는 인식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이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선거연령 하향이 전체 선거 판세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자들이 집권당의 대표-원내대표를 역임했으니 이 나라 민주주의가, 정치가 제대로 작동했을 리 만무했을 터다.

대의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한국당의 모습은 투표시간연장 거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들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시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요구를 번번이 묵살해 왔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사자방 사업'으로 사라진 수 십조 원의 혈세를 상기해보라. 그에 비하면 투표시간 연장에 필요한 100억 원의 비용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선거 때마다 정부와 선관위, 지자체가 홍보예산을 들여 투표 참여 캠페인을 벌이는 것과 비교해도 그렇다. 이는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의지의 문제다. 

대의민주주의는 정책 결정의 권한을 대표자에게 위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시민들은 직접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리할 사람을 선출하고 그에게 정책 결정을 위임한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표율이 높아야 한다. 투표율이 낮으면 낮을수록 대의민주주의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으며, 선출된 이들의 대표성 역시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투표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떨어지고 있다. OECD 국가들 중 최하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투표율은 대의민주주의의 근본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각계각층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 것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투표율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이 대의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대적 과제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대한민국의 정당은 투표율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확장을 위해 투표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과 투표율이 높을까봐 불안해하는 정당이 바로 그렇다. 

이 둘 중 누가 대의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투표 포기전략을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는 정당, 투표율이 낮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정당, 투표율 제고 방안 마련에 마음이 전혀 없는 정당에게 대의민주주의의 신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자가당착이다. 

(비상식-반지성-반민주-반통일-반평화 친일 수구정당인 한국당이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그런 면에서 나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대의민주주의의 확장을 위해서라도 한국당이 폭삭 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가로막는 정당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는 난망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 역설 속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운명이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