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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국당은 안희정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 오마이뉴스


"믿을 사람이 없네, 정말. 당신도 뭐 있는거 아냐?". 안희정 충남지사에 호감을 갖고 있던 아내가 아침에 불쑥 건넨 말이다. 아내는 가끔씩 내게 안 지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보여주며 "참 마음이 맑은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런 아내에게 안 지사의 성폭행 의혹 사건은 아주 큰 충격으로 다가온 듯 했다. 아내는 들릴 듯 말 듯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이며 연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설마". 안 지사 관련 기사를 전했을 때 아내가 처음 보인 반응이다. 기자 역시 같은 심경이었다. 설마, 그럴 리가. 가짜뉴스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안희정'인데. 아닐거야. 뭔가 잘못됐겠지. 그러나 사건과 관련해 후속기사가 줄을 잇고, 피해 당사자인 김모씨가 5일 JTBC <뉴스룸>에 직접 출연해 인터뷰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말의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일련의 흐름들이 기계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번 논란으로 야기될 정치적 '파장' 말이다.

터질 것이 터졌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문화예술계, 학계, 종교계 가릴 것 없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이 정치권으로 옮겨붙게 될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바닥이 원래 도덕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취약하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 아니던가. 실제 국회 사무처 직원과 국회의원 보좌진, 정당 사무처 관계자 등이 이용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는 국회 내 성폭력과 성추행을 질타하는 글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오고 있다.

가해자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고 있지는 않지만 국회의원과 보좌관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경험과 고충을 털어놓는 내용 일색이다. 급기야 5일에는 국회의원실 소속 비서관이 국회 홈페이지 '소통마당'에 4급 보좌관의 지속적인 성폭력을 폭로하는 글을 실명으로 올리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미투' 운동이 정치권으로 옮겨붙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조만간 불거질 시한폭탄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그 포문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안 지사가 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벌집을 쑤신 격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말 그대로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왜 아니 그럴까.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던 안 지사가 아닌가. 청렴하고 젠틀한 이미지로 차세대 정치리더로서의 입지를 다져가던 안 지사가 아닌가 말이다. 그랬던 그가 난데 없이 수행비서 성폭행 의혹에 휩싸였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진 대형 악재에 더불어민주당은 패닉에 빠졌고, 자유한국당 등 야권은 일제히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밤 9시 국회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안 지사를 즉각 출당·제명 조치했다. 사실상 당이 내릴 수 있는 최고수준의 징계조치를 취한 셈이다. 추미애 대표는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안희정 지사에 대한 뉴스보도에 대해 당대표로서 피해자와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안 지사에 대한 출당·제명 조치는 언론보도가 나온 뒤 불과 2시간여만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만 보더라도 민주당이 이 사안을 얼마나 위중하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민주당은 이번 파문이 문재인 정부와 지방선거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높은 당청 지지율을 바탕으로 지방선거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쳐왔던 민주당으로서는 안 지사의 성폭행 의혹 파문은 예기치 않은 대형 스캔들이다. 당장 충남지사 선거는 물론이고 지방선거 전체의 흐름이 흔들릴 판이다.


오마이뉴스


반면 야권, 그중에서도 한국당은 뜻밖의 호재를 만났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위 등이 연달아 불거지며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은 한국당에게 안 지사의 성폭행 의혹은 반격의 기회다. 위계에 의한 성폭행이 아닌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는 안 지사 측의 해명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안 지사가 부절적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당도 이 부분을 집중 부각시키며 안 지사와 민주당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미투' 운동과 연계해 정부여당의 도덕성을 최대한 걸고 넘어지겠다는 심산이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밤 구두논평을 통해 "안희정 지사의 정의롭고 상식있는 모습이 이미지였고, 가면이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까지 하다"면서 "한때나마 국민들의 기대를 받았던 정치인으로서 더 불쌍해 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모든 사실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국민들께 사죄하는 것이 그나마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지사 측이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도 밝힌 것에 대해서는 "합의가 없었다면 성폭행이고 합의가 있었다면 부정행위가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더 충격적 폭로는 미투운동을 언급하며 또 다시 성폭행 했다니 금수같은 짓"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장 수석대변인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도 각을 세웠다. 그는 "당의 가장 유력한 지도자까지 충격적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민주당은 역대 최악의 성추행 정당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미투운동을 적극 지지한다던 문재인 정권이 왜 이토록 미투운동으로 처참하게 떠내려 가고 있는지 집권세력 전체가 청소하고 성찰할 때"라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옳은 지적이다. 장 수석대변인의 말대로, 안 지사는 제기된 의혹에 대해 진솔하게 고백하고 피해자와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안 지사를 지지했던 지지층과 진보진영이 느끼는 당혹감과 배신감은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다. 백번 양보해서 강압적인 폭력에 의한 성관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안 지사의 행태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에 상응하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져야 마땅할 터다.   


그러나 한국당이 안 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정부여당에 대한 정치적 공세의 수단으로 삼을 자격이 있는지는 따져 볼 일이다. 최연희 전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 정형근 전 의원의 이른바 '묵주사건', 강용석 전 의원의 '불륜 스캔들', 김형태 전 의원의 '제수 성추행 의혹', 김무성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논란', 정몽준 전 의원의 '방송국 여기자 성추행 의혹',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방미 중 인턴 성추행 사건',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골프장 캐디 성추행 사건', 심학봉 전 의원의 '성폭행 논란', 홍준표 대표의 '돼지 흥분제 논란' 등등. 당장 인터넷에 한국당 관련 성추문 사례를 검색해 보면 그들의 낯뜨거운 과거가 너무나도 손쉽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인물과 분야 가릴 것 없이 전방위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는 '미투'는 우리 사회에 성폭력 문화가 얼마나 은밀하고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안 지사의 성폭행 의혹 파문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이번 파문은 권력적 갑을관계와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구조적 문제이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문제가 아니다. 진영논리로 물타기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뜨겁게 분출되고 있는 '미투' 운동의 본질을 직시하고 사회문화적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고민해야 할 시점일 터다. 


그러나 역시 '염불보다 잿밥'이다. 한국당은 이번 파문을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집권세력의 문제로 단정지으며 정치공세의 기회로 삼고 있는 모양새다. 안 지사 성폭행 의혹 파문을 계기로 정치권의 '미투' 폭로가 본격적으로 확산될 경우, 한국당이 그 후폭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일반론에 가깝다. 성폭력 문제가 남성중심의 권력적 사회구조에 기인한 일그러진 젠더의식의 산물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이는 명확해진다. 


더욱이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 한국당이 도덕적 우위를 거론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경험으로 입증이 된 문제다. 안 지사에 대한 실망과 분노와는 별개로, 한국당의 정치 공세가 볼썽사나운 이유다. 한때 '성누리당'으로 불리울 만큼 숱한 성추문에 휩싸여왔던 정당이 한국당이라는 건 삼척동자가 다 아는 일이 아닌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한국당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역대 최악의 성추행 정당", "집권세력 전체가 청소하고 성찰할 때"라고 매도할 입장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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