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누란의 위기에 빠진 한국당, 이대로는 총선도 어렵다

ⓒ 오마이뉴스


"한국당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이 아주 가혹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간 한국당이나 '보수의 대안'이라고 나온 바른미래당이 국민들에게 보여준 게 없습니다. 말로는 맨날 자기들 각오와 결의만 다졌을 뿐 알맹이는 하나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아주 전면적인 개편이 있지 않으면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다음 총선에서도 이번 지방선거와 같은 꼴이 날 것입니다."


'보수의 책사'로 통하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14일 <세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발언한 내용 중 일부다. 윤 전 장관은 이번 선거에 나타난 유권자의 표심이 한국당을 벼랑 끝으로 내몬 정도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한국당에 단단히 성나 있는 민심을 감안하면  이 정도 성적을 거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충격적인 참패로 망연자실해 있을 한국당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는 아이 빰 때리는 야박한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당을 향한 민심이 윤 전 장관의 지적만큼이나 극도로 나빠져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죽하면 노회찬 정의당 대표가 한 라디오 방송에서 "경남분들 한국당 후보 명함 받으면 바로 버린데요, 준표한테 준 표가 아깝다면서요"라고 말했을까. 보수의 텃밭이라 불리는 경남지역의 바닥 민심이 이 정도라면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나 마찬가지다. 

복기해 보면, 한국당에게는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던 시기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짓누르던 불평등과 부조리, 반칙과 특권, 적폐를 청산하라는 촛불민심에 부합했어야만 했다는 얘기다. 뼈를 깎는 자성과 반성을 통해 혁신과 개혁의 길로 나아가야 했다. 인적 청산을 대대적으로 단행하고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만 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이름만 바꿨을 뿐 냉전적 사고와 인식,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구태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국민은 한국당을 향해 낡은 정치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정작 그들은 관성에 의지한 채 전통적 지지층 사수에 매달렸을 뿐이었다.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 이후 합리적 보수가 이탈하고 중도층이 돌아선 상황에서 표의 확장성을 스스로 가로막았던 셈이다. 

한국당의 자충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을 펴는가 하면, 수구냉전적인 시대인식으로 유권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무분별한 정치 공세와 무조건적인 반대를 일삼으면서 새로운 정치 문화를 요구하는 민의와 자주 충돌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21세기의 패러다임과는 어울리지 않는 과거의 유산들과 구시대적 정치 담론을 통해 유권자의 마음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한국당이 민심과 괴리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당 지도부를 비롯한 주요인사들의 거친 발언과 품격 없는 언행 등도 유권자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 요인 중의 하나라는 분석이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홍준표 전 대표를 비롯해 김성태 원내대표, 장제원 수석대변인 등은 대안과 비전은 제시하지 않은 채 반대와 비판에만 열중하며 오히려 민심 이반을 부추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홍 전 대표는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과 공격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하며 당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다. 

지방선거 참패로 한국당은 존립의 위기에 처해진 상태다. 윤 전 장관은 "유권자의 심판이 가혹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진단했지만 선거 결과는 아찔하다 못해 암울한 지경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한국당이 받아든 성적표가 얼마나 처참한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한국당은 전체 17곳 중 단 두 곳(대구·경북)에서만 승리했다. 전통적인 지지기반이었던 부산·울산·경남도 날아갔다. 그로 인해 한국당은 영남 자민련이 아니라 'TK 자민련'이 된 모양새다. 


ⓒ 뉴스티앤티



더욱 심각한 것은 기초단체장과 광역단체 시·도의회 선거 결과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한국당은 전국 226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53명의 기초단체장을 당선시키는 데 그쳤다. 이는 151곳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1/3 수준이다. 지역별로 보면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도드라진다. 한국당은 수도권에서 완전히 몰락했다. 66개 기초단체장 가운데 서울 서초구, 경기 가평군과 연천군, 인천 강화군만 승리했을 뿐 나머지 62곳을 민주당에 내줬다. 서울의 경우 25곳 가운데 24곳이 민주당 차지다. 이 중에는 한국당의 아성인 강남구와 송파구도 포함돼 있다. 

한국당은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부산 구청장 선거에서는 16곳 중 2곳만 챙겼을 뿐이고, 경남 역시 10곳을 사수하는 데 그쳤다. 강원과 대전·충청에서도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강원11:5(민주당:한국당), 대전(5:0), 충북(7:4), 충남(11:4)에서 한국당은 민주당에 완벽하게 밀렸다. 철옹성 같았던 대구·경북에서도 한국당을 긴장시키는 선거 결과가 나왔다. 광역단체장 선거는 막판까지 치열하게 전개됐고, 경북 구미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가 시장에 당선되는 이변이 펼쳐지기도 했다. 

광역단체 시·도의원 선거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의 경우 서울시의원 110명 중 민주당이 102명의 당선자(비례대표 포함)를 배출한 반면 한국당은 고작 6명에 그쳤다. 다른 지역 역시 비슷한 양상이다. 한국당은 인천(34:2), 경기(135:4), 강원(35:11), 대전(21:1), 세종(17:1), 충북(33:8), 충남(28:4), 부산(41:6), 울산(17:5), 경남(34:21), 제주(29:2) 등 대구(5:25)와 경북(9:41)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민주당에게 압도당했다. 

기초단체장과 광역단체 시·도의원 선거는 2020년 총선의 풍향계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지역 민심이 곧바로 총선 민심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한국당이 입은 내상은 상상 그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은 집권여당을 견제·감시할 최소한의 의석수조차 확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조직 기반이 붕괴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기초의원 선거 역시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한국당의 총선 전망은 매우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저는 자유한국당은 어차피 이번에 죽었다 새로 태어나라고 국민이 심판한 거예요. 정치에서는 버려서 얻는 길이 있고, 죽어서 사는 길이 있는 거예요. 죽어서 사는 길을 가라고 국민이 냉혹하게 심판한 거거든요. 그 길로 가야 해요. 또 어설프게 화장 좀 고치고 리모델링 좀 해서 다시 새 세력인 양 한다? 아, 국민이 절대 용납 안 할 거라고 봅니다."

윤 전 장관은 14일 KBS 라디오 '최강욱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역대급 참패로 벼랑 끝에 내몰린 한국당이 회생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적당히 수습하고 봉합하는 것으로는 서늘하기 그지없는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 말 그대로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 조직이 사실상 궤멸된 한국당이 살아남으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는 수구냉전적 인식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의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물갈이 수준의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단행하고, 참신하고 새로운 인재 영입을 통해 조직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무엇보다 보편적 상식에 맞는 정치를 펴는 것이 급선무다. 지금처럼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무조건적인 반대와 몽니, 딴지 걸기로 일관해서는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다시 찾아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그 외에는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당은 누란(累卵)의 위기에 빠졌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유권자의 무시무시한 분노의 본질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다음 번에는 나라가 아니라 '한국당'이 통째로 넘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작금의 '민심'이다. 



♡♡ 1인 미디어 '바람 언덕'이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