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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꼬리무는 방산비리, 조선시대였더라면

마피아는 불법과 무법을 상징하는 범죄조직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 섬에서 발원한 마피아는 이제는 전세계로 퍼져나가 기업형 범죄집단을 통칭하는 대명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원래 시칠리아 섬 내부에서 외부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마피아가 범죄조직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정계와 재계 등과 결탁한 19세기 후반 이후부터입니다.


공동체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된 결사체였던 마피아가 행정력과 경찰력까지 통제할 수 있는 거대범죄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시칠리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습니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본토의 남쪽에 위치한 섬입니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통제와 영향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마피아들은 섬이라는 폐쇄성을 발판으로 삼아 시칠리아에 무법천지의 절대성역을 구축했습니다. 1990년대 초 중앙정부가 시칠리아로 군대를 파견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는 조직은 불법과 부정에 취약합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고여있는 물이 썩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는 조직들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조직이 바로 ''입니다. 조직의 유지를 위해 폐쇄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이탈리아의 마피아와 ''은 아주 흡사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은 우리 군에게 '군피아'라는 닉네임을 부여했습니다. 이 치욕스럽고 굴욕적인 닉네임을 우리 군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방산비리'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우리 군의 심장부를 도려내는 이 부끄러운 비리에 전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해 장성 여럿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언론에 의하면 '방산비리' 수사가 시작된지 100일 만에 구속된 ''의 숫자만 12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높은 하늘에 찬연히 떠있어야 할 별들이 감방 안에 갖혀버린 모습. 우리 군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방산비리'를 밝히기 위해 출범한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은 지난 2 100일 동안의 수사 기간 동안 전현직 군 관계자 23명을 기소하고 이 중 16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합수단이 이 과정에서 밝혀낸 비리 규모는 1639억원 가량입니다.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합니다. 현재까지 진행된 수사결과만 놓고 보면 합수단의 지난 100일을 평가하기에는 '16명 구속, 비리금액 1639억원'은 참 애매한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합수단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이를 
'성과'라고 보기에는 미진합니다. 


우리나라는 올해 국방예산으로 374560억원을 책정한 세계 10위권의 국방예산지출국입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국방예산을 고려한다면 합수단이 밝혀낸 비리의 규모는 지극히 소박한 수준입니다. 저명한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은 "정부의 무기정책 결정 자체가 로비로 이루어진다는 의혹이 군 비리 의혹의 핵심"이라며 "납품 로비 등은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단언합니다.

이는 결국 정부와 정치권, 군 관계자가 관여되어 있는 로비 의혹을 밝혀내는 것이 '방산비리' 수사의 최종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그런데 합수단의 수사는 고작 납품비리를 수사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습니다. 이는 1993년 율곡사업비리 수사 이후 최대 규모의 인력과 수사력을 투입해 방위산업이 아닌 방위사업 전체를 수사하겠다고 정부가 밝혔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강력한 대포로 적을 응징하겠다더니 고작 짱돌 몇개 던진 격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번 '방산비리' 수사의 핵심은 납품비리 따위의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권과 군 관계자, 대기업 계열의 군수업체, 그리고 방위사업청 등이 총망라된 로비 의혹입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대규모의 방산물자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된 통영함, 소해함 등의 군함건조사업에서 거액의 납품비리와 로비가 있었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또한 무인기 사업, 한국형 개인화기 개발사업, 헬기사업 등 이명박 정부가 손을 댄 사업마다 해당 사업체들이 비리 의혹에 연루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개발된 무기에서는 각종 결함과 하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말에 무리하게 추진되었던 14조원 규모의 무기도입사업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된 방위사업 전반에 걸쳐 의혹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간에서 제기되고 있는 MB정권 실세들과 로비스트가 연결되어 대규모의 무기거래에 이루어졌다는 의혹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방산비리' 수사의 칼끝이 이명박 정부를 향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칠리아의 마피아가 세를 불리며 급성장하는 계기는 그들이 정계와 재계 등과 결탁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정치권이 뒤를 봐주고 재계의 자본이 공급되면서 마피아는 세계적 범죄조직으로 탈바꿈된 겁니다. 공모와 결탁.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불법과 부정은 절대로 혼자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피아는 이제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무법천지의 골치덩어리들로 세상을 호령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군대의 마피아로 통하는 '군피아' 역시 스스로 존립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정치권에 줄을 대고, 정부 고위직에 결탁하고, 재계 및 군 관계자의 손을 잡으며 우리 군의 심장을 소리없이 갉아먹고 있습니다. '군피아'에게 우리 군은 최상의 숙주인 셈입니다. 저들은 우리 군의 사기를 무너뜨리고, 국가안보를 허물며 국가의 존립을 어지럽혔다는 측면에서 중죄인들입니다. 조선시대였더라면 당연히 참형에 처해야 할 대역죄인들에 해당합니다. 법이 저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합수단의 이번 수사결과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주지한 것처럼 이번 수사가 '방산비리' 수사의 핵심을 비켜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앞으로 합수단이 어떤 수사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수사가 이명박 정권이 연루된 정치적 사안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줄 가능성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습니다.

'군피아'를 척결하려면 그들과 연계되어 있는 몸통을 건드려야 합니다. 연결고리 몇개를 도려내고 깃털 몇개를 뽑아낸들 몸통이 건재하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합수단의 '방산비리' 수사가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결국 이번 수사는 용두사미로 끝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이 말은 '군피아'가 앞으로도 우리 군의 심장을 갉아먹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대대적인 소탕작전에도 불구하고 마피아가 여전히 건재하듯이 말입니다
합수단의 수사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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