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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종인의 탈당이 민주당에 미치는 영향

ⓒ 오마이뉴스


4·13 총선을 몇달 앞둔 지난해 1월14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을 발표했다. 다름 아닌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하 김 전 대표)을 '선대위원장'으로 전격 영입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관련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졌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크게 요동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 전 대표가 2012년 총선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진두지휘하며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에 크게 기여한 데다, 그해 대선에서는 경제 분야 공약을 책임··총괄하는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역임하며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키는데 앞장섰기 때문이었다.

부지불식 간에 뒷통수를 맞은 새누리당은 김 전 대표를 향해 "배신자", "정치 낭인"등 원색적인 비난을 섞어가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잇따랐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김 전 대표의 이력이 문제되며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민주당에게 김 전 수석 영입은 총선을 위한 '신의 한 수'나 다름 없었다. 김 전 수석은 강력한 리더십을 앞세워 문 전 대표의 거취 논란과 당시 당내에 만연해 있던 민주당 내의 '주류-비주류' 갈등을 최소화시키며 당을 연착륙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어 냈다. 


기실 김 전 대표가 영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의 총선 전망은 지극히 비관적이었다. 새누리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가운데,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180석을 넘게 가져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김 전 대표 체제로 선대위가 꾸려지자 상황이 급반전됐다.

문 전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던 비주류의 목소리는 김 전 대표 체제로 선대위가 꾸려지면서 급속히 사그라들었다. 경제민주화의 전도사이자 최고의 경제전문가 중 한 사람인 김 전 대표가 총선을 지휘하면서 유능한 경제정당으로서의 면모도 차츰 갖춰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새누리당이 극심한 공천파동을 겪으며 최악의 당내 갈등에 횝싸였던 반면, 민주당은 공을 들였던 인재영입이 '대박'이 나면서 시대적 요구였던 정당 쇄신과 혁신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기틀까지 마련했다. 


복기해 보면 문 전 대표의 용단과 김 전 대표의 리더십이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끈 원동력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과거 이력에 대한 당안팎의 반발을 무릅쓰고 김 전 대표를 전격 영입한 문 전 대표의 뚝심과 김 전 대표의 강력한 지도력이 더해져 총선 필패의 예상을 깨고 기적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 오마이뉴스


그러나 두 사람의 '허니문'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둘은 이후 자주 엇갈리는 모습을 보이며 갈등을 연출시켰다. 총선 직전 문 전 대표의 호남 지원 방문 계획에 김 전 대표가 비판적 시각을 내비치는 것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시시각각 부딪히며 불안한 동거를 이어갔다. 총선 전에는 컷오프 파동과 비례대표 공천 논란이 불거졌고, 총선 이후에는 김 전 대표에 대한 '당대표 추대설'로 엇박자가 나기도 했다. 사드 배치 문제로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전 대표가 역점을 두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도 두 사람은 부딪혔다. 문 전 대표가 제시한 '국민성장' 정책 비전에 김 전 대표가 부정적 의견을 낸 데 이어, 얼마 전 문 전 대표 캠프의 전윤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정치권의 경제민주화는 포퓰리즘"이라며 김 전 수석과 각을 세웠다. 여기에 민주당 주류에 대한 불만과, 개헌 추진을 반대하는 문 전 대표의 지지자들로 '문자 폭탄'을 받는 등 두 사람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는 상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 전 대표의 탈당설이 끊이질 않는다. 그동안 숱한 불화설에도 근근히 이어져오던 두 사람의 관계가 더 이상 복원되기 힘든 지경에 이른 탓이다. 김 전 대표가 탈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6일에는 김 전 대표의 후원금 계좌가 폐쇄됐다는 언론 보도마저 나왔다. 관련보도가 사실이라면 김 전 대표의 탈당이 임박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표는 7일 "민주당에서 탈당하겠다"고 밝히며 탈당을 공식화했다)

현 상황은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 당시의 모습과 대단히 흡사하다. 당시에도 민주당 비주류는 문 전 대표의 리더십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사건건 부딪힌 끝에 집단 탈당한 바 있다. 지난 총선 당시 민주당 내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 대립을 수습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김 전 대표가 1년 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는 모양새다. 세상은 돌고 돈다더니 정치의 불확실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 전 대표의 탈당이 유력해진 가운데 이제 관심은 그의 탈당이 민주당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에 집중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50%에 육박하는 정당 지지율을 보이며 맹렬히 질주 중인 민주당의 위상과 위세가 지난 총선과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굳건한데다, 탄핵정국과 맞물려 돌아가는 정치상황 역시 김 전 대표에게 유리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조기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개헌을 매개로 한  '3지대론'은 사실상 소멸된 상태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여야3당이 추진하고 있는 개헌 움직임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탄력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대선 전 개헌이 '반문연대'를 기치로 한 권력구조개편에 방점이 찍힌 터라 국민적 공감대도 얻지 못하고 있다. 김 전 대표의 탈당이 큰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오히려 지난 총선 전 상황을 떠올려 보면 김 전 대표의 탈당이 민주당을 더욱 결속시키는 촉매가 될 개연성도 있다. 주류와 비주류 갈등이 빚어낸 극심한 내부 분열로 침몰하던 민주당이 4·13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박지원 의원 등 비주류가 집단 탈당하며 반등의 기회를 잡았던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김 전 대표의 탈당이 외려 민주당의 호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김 전 대표 체제에서 고착화된 권위적 의사결정시스템을 털어내고 정당 개혁과 당내 민주화를 바로 세울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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