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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재원의 간계, 그 저열함에 대하여

초나라 패왕 항우와 한나라 고조 유방은 중원의 패권을 놓고 5년 동안 치열한 전쟁을 치룬다. 초한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에서 유방은 도무지 항우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싸움은 매번 항우의 승리로 끝이 났고 유방은 도망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이 전쟁은 유방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거의 모든 면에서 항우에 절대열세를 보였던 유방이 초한전쟁을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 유명한 반간계(反間計)에 바로 그 이유가 숨어있다. 


병법의 36계 가운데 제 33번째 계책인 반간계는 본래 아군에 심겨져 있는 적의 첩자를 이용하여 적을 기만하는 병법이다. 그러나 좀 더 넓게 본다면 적들이 서로 의심하고 믿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내부의 신뢰를 깨뜨리고 자중지란을 일으키게 만드는 계책을 모두 반간계로 일컬을 수 있다. 항우에 쫓겨다니기만 했던 유방은 진평의 반간계를 통해 초나라의 내부분열을 일으키고 급기야 이를 기회로 삼아 초한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절대 허물어질 것 같지 않던 인간 사이의 끈끈함이라는 것도 '의심'의 독사과를 먹고 나면 눈녹듯이 사라지기 쉽상이다. 사랑, 우정, 신뢰, 믿음 따위의 빛나는 감정들도 예외는 아니다. 반간계는 바로 이와 같은 인간의 본성을 기막히게 이용하는 계책이다. 인간은 같은 인간을 대적하기 위해 가장 비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비열하면서도 잔인한, 야만적인 섬뜩함이란 바로 이런 걸까.


반간계는 오래된 고전 속에서만 존재하는 계책이 아니다. 또한 승리가 절대선인, 전쟁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활용되는 것도 아니다. 반간계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쉽게 목도할 수 있는 지근거리에 놓여 있다. 특히 권모술수가 활개치는 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야 말로 이 계책은 흔하디 흔한 일상처럼 사용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이 어제 일어났다. 





새누리당의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김재원 부대표)는 어제(13일) YTN 라디오에 출현해 '여당이 유가족과 이야기를 해서 문제를 풀 수 없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솔직히 말씀드려서 유가족 분 중에 상당히 많은 분들은 저희들이 협상한 내용에 대해서 빨리 매듭을 짓고 보상•배상 문제도 함께 처리해 달라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유가족들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보다 보상과 배상에 더 관심이 많다는 뜻이다. 


김재원 의원이 말하는 상당히 많은 유가족들이란 도대체 얼마쯤 되는 건지 필자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보편적으로 '상당히 많다'고 한다면 과반을 넘거나 적어도 그에 근접하는 경우를 지칭한다고 볼 때, 그의 주장대로라면 유가족들 중 과반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진상규명 보다 보상과 배상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이다, 만약 그의 말이 맞다면 말이다. 


사실 김재원 의원의 주장은 만약이라는 가정조차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헛점으로 가득차 있다. 근거도 전혀 없고 구체성과 객관성은 더더욱 없다. 가치없음은 이럴때 사용되는 선언적 수사다. 물론 유가족들 중에 김재원 의원의 주장대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당연히 존재할 것이다. 무려 4개월이다. 아직까지 사건의 진상도 제대로 파악되지 못했고, 국정조사며 특별법 문제 등으로 심신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정신적 외상마저 심각한 사람들이 바로 저들이다. 그런데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이 정부와 집권여당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우리는 이 부분을 우선 순위에 놓고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보상과 배상문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보상과 배상을 시체장사 운운하며 속물적인 자본의 영역으로 끌고간 세력이 누군가. 유가족의 특별법안에는 없던 대학특례입학과 의사자 지정 등의 문제를 거론하며 유가족의 진심과 명예를 훼손한 자들은 또 누군인가. 유가족의 특별법 제정 촉구를 금전적 보상과 연계시켜 특별법 제정을 무력화시켜온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보상과 배상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들과 무능과 태만, 무책임으로 무려 300명에 달하는 승객들의 목숨을 잃게 만든 이 정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임과 동시에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이자 참회의 성격을 지닌다. 유가족들은 철저히 그리고 가능한 최대한의 보상과 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지극히 당연히 이루어져야할 보상과 배상 문제로 유가족들이 오히려 눈치를 보고 쉬쉬해야만 하는 이 상황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김재원 의원의 속셈은 그 속이 드러나도 너무 훤히 드러나 보인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책임론과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함한 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유가족들의 연대와 결속을 분열시키는 한편 특별법 국면을 보상과 배상이라는 저열한 싸움으로 둔갑시켜 국민여론을 호도하려는 차원이다. 


원래 반간계는 상대가 모르게 적의 내부를 분열시키는 고도의 정치적 기만술이다. 그러나 김재원 의원의 수는 간계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의도가 뻔히 드러나는 술수를 용장 항우를 무릎꿇게 만들며 대업을 달성한 한나라 진평의 반간계로 명명하는 것은 그에 대한 무례이며 결례다. 무의미하겠지만 이런 저열한 이간질로 세월호 특별법의 당위를 흐리는 김재원 의원을 평가한다면 저잣거리의 모사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름도 성도 기억할 필요가 없는 그저 그런.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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