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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병준 비대위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

ⓒ 오마이뉴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때문에 기사회생했고, '박근혜'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당의 흥망성쇠에 정치인 '박근혜'의 영향이 그만큼 절대적이었다는 얘기다. 6·13 지방선거의 궤멸적 참패 이후 당 쇄신을 둘러싸고 극심한 내홍에 빠져있던 한국당은 과거에도 당의 존립이 흔들리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등장했던 것이 비상대책위원회다.


한국당 비대위를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것이 바로 2011년 당시의 '박근혜 비대위'다. 그해 12월 19일 한나라당(현 한국당)은 14차 전국위원회를 개최하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전격 가동시킨다. 당시 한나라당은 풍전등화의 상황을 맞고 있었다.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데 이어 '디도스 사건'이 터졌다. 여기에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까지 불거지며 당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당시는 이명박 정권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피로감이 증폭되던 시기였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던 상황임을 감안하면 위기도 그런 위기가 없었다. 그때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2004년 '차떼기 사건'으로 침몰하던 당을 위기에서 구해낸 적이 있던 박 전 대통령은 과감한 혁신작업으로 주목을 끌었다. 

박근혜 비대위는 먼저 한나라당의 흔적을 지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공모를 통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교체했고, 당의 상징과도 같았던 파란색을 빨간색으로 바꾸는 파격을 선보였다. 당의 체질 개선을 위해 외부인사 영입에도 공을 기울였다. 김종인·이상돈 등 명망있는 인물들을 수혈해 당의 중심을 잡았고, 낡고 고루한 당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이준석·손수조 등 이른바 '박근혜 키즈'를 영입하기도 했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가 가장 공을 들인 작업은 인적청산이었다. 2012년 총선 공천권을 쥐고 있던 박근혜 비대위는 여론조사 하위 25%에 해당하는 현역의원을 컷오프시키는 인적쇄신을 단행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친이계'를 향한 대대적인 인적청산을 감행함으로써 당의 전면적 쇄신 의지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박근혜 비대위의 혁신작업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둔다. 새누리당은 2012년 4월 총선에서 과반의석이 넘는 152석을 달성했고,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당 지지율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등장한 박근혜 비대위가 총선과 대선 승리의 가교역할을 제대로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러나 한국당은 자신들을 위기에서 건져낸 그 '박근혜'로 인해 다시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좌초의 위기에서 기적처럼 살아나온 박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후 극심한 계파 패권주의에 빠지며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 새누리당은 친박 패권주의가 득세하는 '친박당'으로 변모했다. 대통령의 눈밖에 나면 여지없이 '배신의 정치'라는 낙인이 찍혔다.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와 직언이 사라진 자리에는 '친박', '진박', '신박' 등의 '박타령'이 난무했다.

새누리당이 2016년 총선에서 충격적 패배를 당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당내에 도사리고 있던 극심한 계파갈등, 그 중에서도 친박 패권주의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박근혜 정부의 역주행과 갖은 실정으로 국민적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새누리당은 계파싸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당 대표가 옥쇄를 들고 사라지는 '옥쇄 파동'은 당시 새누리당이 얼마나 극심한 계파갈등에 휩싸여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돌이켜보면, 2016년 4월 총선은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경고였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국민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반성과 성찰은커녕 총선 패배의 책임론을 놓고 계파 간에 다시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당권을 둘러싼 지긋지긋한 헤게모니 싸움이 또 다시 벌어진 것이다. 그 이후 새누리당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두가 안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고 박 전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으며, 새누리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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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게 옛 이야기를 꺼내든 것은 17일 한국당 전국위원회가 혁신비대위원장으로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를 확정했다는 소식을 접해서다. 우여곡절 끝에 김병준 비대위가 문을 열었지만 세간의 시선은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한국당의 모습은 지난 2016년 새누리당의 그것과 아주 흡사했다. 환골탈태의 심정으로 당 쇄신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기에 한국당은 밥그릇 싸움을 벌였다. 바로 그 때문에 당이 이 지경이 됐음에도 낯뜨겁고 볼썽사나운 장면을 계속해서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김병준 비대위가 출범했다고 해서 한국당 내의 계파갈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진흙탕 싸움을 펼치던 한국당 내홍이 비대위원장 선임을 앞두고 갑자기 봉합된 것은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상임위 배정을 매개로 친박계와 전략적 타협을 이룬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그 내막이 어찌됐든 비대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어렵게 봉합된 계파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비대위의 활동기한과 권한 등을 둘러싸고 계파간 이견이 표출되고 있는 터라 갈등의 불씨가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김병준 비대위가 당 혁신작업의 핵심인 인적청산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친박계는 인적청산의 표적이 결국 자신들이 될 것이라고 인식하는 모양새다. 앞서 김 권한대행이 주도하는 당 쇄신안에 강력하게 반발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박근혜 비대위가 25% 컷오프를 앞세워 사실상 '친이계' 정리에 나섰던 것처럼 자신들도 인적청산의 대상이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김 비대위원장이 이날 수락연설을 통해 "현실정치를 인정하고 적당히 넘어가라고 하지 말아 달라. 차라리 잘못된 계파논쟁과 진영논리 속에 싸우다 죽으라고 해 달라"고 강조한 것도 친박계로서는 떨떠름한 부분이다. 당헌·당규에 따라 당 대표의 권한을 갖는 김 비대위원장이 계파청산 작업에 전력을 다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비대위원장이 인적쇄신의 칼을 꺼내들 경우 친박계가 집단적으로 반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내의석 112석의 제1야당이 6석의 정의당과 지지율을 다투고 있는 현실이 한국당이 처해있는 현주소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년층을 제외한 청·장년 세대의 한국당 지지가 급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구냉전적 인식과 이념, 재벌·기득권 위주의 정책을 펴왔던 한국당에게 실망해 20대는 물론이고 30~40대와 50대까지 등을 돌린 것이다. 청·장년 세대의 마음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는 당의 정체성과 이념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시대착오적인 인식과 철학에 더 이상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합리적 사고와 상식을 갖춘 인재 영입도 절실하다. 그러나 비대위원장 인선에 난항을 겪었던 것에서 드러나듯 한국당이라면 너도 나도 손사래를 치고 있는 형국이다. 침체된 당에 활력을 불어넣을 참신하고 새로운 인재의 영입이 난망해 보이는 이유일 터다. 당장 한국당의 명운을 쥐고있는 김 비대위원장만 하더라도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올드보이'다.

총선이 2년이나 남아있다는 것도 김병준 비대위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비록 전권이 주어졌다고는 하나 김병준 비대위에게는 '공천권' 같은 강력한 무기가 없다. 이는 공천권을 거머쥐고 과감하게 인적쇄신을 단행했던 '박근혜 비대위'와 김병준 비대위와의 본질적인 차이를 말해준다. 기반과 세력이 없는 김 비대위원장이 당내의 조직적 반발과 저항에 직면할 경우 이를 극복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병준 비대위의 성패에 한국당의 명운이 달려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살펴본 것처럼 현실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결국, 관건은 김병준 비대위가 '박근혜 비대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느냐 없느냐다. 다시 말해 김 비대위원장이 '박근혜'가 했던 것처럼 강력하게 혁신작업을 밀어붙일 수 있느냐 없느냐에 한국당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뜻이다. '박근혜' 때문에 망한 한국당이 '박근혜'를 따라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해있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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