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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무성의 봉하행, How dare you!

1. 어떤 사실사상행동에 관해서 진위장점단점선악 등을 판정하여 평가를 내리는 것.

2. 다른 사람의 흠이나 잘못을 들추어 사실보다 부풀려 나쁘게 말하는 것.

1은 비판, 2는 비난의 사전적 의미다. 이 둘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만큼이나 극명하다. 물론 개중에는 이 둘을 혼동해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비난'은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비판'이 될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가지 사례를 살펴 보자.

어떤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의 부정을 감추기 위해 자살하지 않았나"라고 말한다면 이는 '비난'일까, 아니면 '비판'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6월 항쟁에 참여하지도 않았던 사람이다"라거나, "조선시대 왕들도 못한 국정기록 파기설이다. 사실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될 역사적 범죄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또 어떻게 될까. '비난'일까, '비판'일까.

위에 적시한 예들은 모두 특정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쏟아낸 발언들이다. 저 발언들은 하나같이 거짓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난'의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이 사람의 발언은 '다른 사람의 흠이나 잘못'이 아니라 '거짓말'을 통해 개인의 명예를 모욕하고 있으므로 이를 단순한 '비난'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럴때는 '비난' 앞에 '악의적인', '저열한', '폐륜적인' 등의 수사를 붙이거나, 그보다 더 명확하게 '망언'이라고 규정하는 편이 옳다.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위 발언들의 당사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그는 어제(14)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적 적대관계에 있었던 그의 봉하행을 두고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참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김무성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하던 모습들을 떠올려 본다면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들이다.

물론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적관계에 있었다고 해서 묘역을 참배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한 그런 이유로 추모의 기회가 박탈되어져서는 더더욱 안된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악의적이고 저열하며 폐륜적인 비난과 망언을 서슴치 않았던 사람이었다면, 그리고 자신의 발언이 거짓으로 밝혀졌음에도 아직까지 단 한차례의 사과조차 없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쯤되면 우리는 김무성 대표에게 과연 추모의 자격이 있는가를 따져 물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김무성 대표의 태도는 불손하다 못해 불량했으며 매우 저질스러웠다. 비단 노무현 대통령이 고인이 된 이후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할 당시에도 그는 공식석상에 조차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노무현이'라고 지칭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 그리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집권세력과 보수언론은 '노무현 죽이기'에 올인했고, 김무성 대표는 늘 그 중심에 있었다.

또한 지난 대선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허위사실을 유포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고인의 명예는 물론이고 대통령으로서의 역사적 업적을 훼손시키는 파렴치한이나 할 짓이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갖은 거짓말과 망언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물어뜯던 사람이 갑자기 고인과의 각별했던 인연을 들먹인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 참을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무성 대표의 제스쳐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난 뒤, 곧바로 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를 얘기하는 아베를 보는 것 만큼이나 어색하다.

"과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참 많이 비판했고, 잘 아는 사이여서 후회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인간에 대한 환멸마저 생겨난다. 그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난사했던 '망언'들이 '비판'이라면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핵펀치' '사랑의 매'라고 달리 불러야 한다. '비판' '비난'의 의미를 모르고 사용했을 리 없는 그의 속내가 비릿하기 그지없는 이유다.

다시 언급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적 입장이 달랐다고 해서 추모의 자격에 시비를 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이다. 그러나 과거에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과 습관적인 망언들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사과와 반성이 없는 가운데, 어느날 갑자기 고인의 업적을 치켜세우며 화해와 화합의 정치를 운운하는 것은 위선과 기만으로 밖에는 달리 이해 할 길이 없다.





정치인의 행보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단언컨대 없다. 그런 이유로 정치인의 '정치적' 행보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위선과 가식의 허물을 덜어내고 진심을 보여줄 때에라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갑작스런 봉하행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가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의 행보에 진심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눈치 챈 사람들은 그에게 감정이 실린 강력한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How dare You!"

우리말로 직역하면 "어떻게 감히 당신이"라는 뜻의 이 문장은 의역할 때 그 풍미와 감칠맛이 극대화 된다. 이를 의역하면 이렇다.

"어떻게 너 따위가, 감히"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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