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김무성 체제와 조기 레임덕의 가능성

새누리당의 신임 당대표로 김무성 의원이 선출되었다. 김무성 의원은 어제(14)일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총 5만 2,706표를 획득해 3만 8,293표를 얻는데 그친 서청원 의원을 큰 표 차이로 따돌렸다. 이로써 지난  2002년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대선자금 차떼기와 2008년 공천뇌물을 받아챙긴 혐의로 두 차례나 실형을 선고받았던 사내를 통해 당권을 장악하려 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비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번 결과는 '박심'을 등에 업고 정치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던 서청원 의원과 그를 통해 당 장악력을 높이려던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전당대회가 열렸던 이날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을 전격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속보이는' 밀어주기에도 불구하고 참패했다는 사실이다. 친박의 상징이자 리더인 서청원 의원은 국민참여경선, 국민여론조사, 지역별•계파별 득표는 물론이고 심지어 박근혜 효과를 기대했던 현장투표에서 마저 완전히 밀렸다. 이는 칠순 노구의 정치인을 내세워 친정체제를 구축하려 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구상에 심대한 차질이 빚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당청간의 권력지형에 큰 변화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예측케 한다. 





무엇보다 김무성 대표의 선출로 새누리당내의 주류를 이루었던 친박계열의 대분열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은 정치권력의 작은 파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친박의 상징인 서청원 의원이 참패했다는 것은 이미 새누리당 내에 탈친박의 기운이 상당히 퍼져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이번 표심에서도 친박계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의견이 상충되고 이들 중 상당수가 김무성 의원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친박 주류인 홍문종 의원은 최고의원에 오르지도 못했다. 이는 새누리당 내의 권력이동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의미다. 


김무성 신임대표는 2016년까지 당을 이끌게 된다. 그리고 그 해에는 차기 총선이 치루어 진다. 당권을 장악할 수 있는 극강의 무기 '공천권'이 사실상 그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자와 없는 자는 머리카락이 있는 삼손과 머리카락이 없는 삼손만큼의 차이가 있다. 공천 앞에선 누구도 예외없이 순한 양으로 변모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치인의 속성이다. 앞으로 새누리당은 어정쩡한 친박의 허물을 탈피하는 자들이 속출하게 될 것이고 김무성 대표 체제로 확실히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는 애증의 관계에 놓여 있는 인물이다. 지난 2005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을 당시 그를 사무총장에 전격 발탁하며 시작된 둘의 인연은 냉탕과 온탕을 반복해가며 10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 한때 친박의 좌장으로 불리며 서청원의 자리를 대신했을만큼 돈독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그러나 2009년 계파갈등 및 세종시 이전을 둘러싼 이견과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를 박근혜 대통령이 반대함으로써 틀어졌다. 급기야 그는 지난 2012 총선에서는 친박계에 밀려 공천조차 되지 못하는 수모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정치에는 영원한 적이란 없다. 정치적 목적 앞에선 어제의 적이 언제든 오늘의 동지가 될 수 있다. 완전히 등을 돌린 줄 알았던 두 사람은 이후 지난 대선에서 김무성이 전격적으로 박근혜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영입되면서 다시 복원되었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서청원 의원을 밀어주는 모양새를 연출하자 둘 사이에는 또 다시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전당대회에서 연설을 하는 내내 단 한차례도 박수를 치지 않으며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물론 김무성 대표가 대표수락연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온몸을 바치겠다"는 정중한 멘트를 날렸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립서비스에 불과할 뿐이란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박심을 누르고 당당히 당권을 거머쥔 남자 김무성, 그는 커다란 덩치 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정치적 카리스마를 내뿜는 정치인이다. 마치 조폭세계에서나 볼 법한 김재원 의원의 절대복종 서약이 상징하는 것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당 동료의원 조차 머리를 조아리고 충성을 맹세하는 막후실세였던 그가 이제 당대표까지 되었다. 달리는 말에 날개까지 달린 셈이다.


전당대회 승리로 더욱 위풍당당해진 이 거구의 사내와는 반대로 올드보이 서청원을 통해 당청관계의 확실한 우위를 선점하려던 박근혜 대통령의 머릿속도 이에 따라 매우 복잡해졌다.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정부 제2기 내각구성을 둘러싸고 민심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집권 2년차 강력한 국정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시점에 당권장악을 위한 서청원 카드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누리당 내의 친박의 현주소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해타산의 집결체인 정치권에서 열혈남아 '김보성'의 의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권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김무성 대표와 차기 대권주자들인 김문수, 정몽준은 물론 친박과는 '怨讐(구원)'의 관계에 있는 친이의 노림수, 그리고 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사퇴로 등을 돌린 보수층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2년차에 생각조차 하기 싫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독선과 독단, 불통의 정치스타일과 맞물려 생각해 보면 실질적 충격은 배가 된다. 그동안 당청관계에서 청와대는 확실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임기초 프리미엄과 당내 친박세력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에서 '박심'이 작동했음에도 서청원은 완패했고, 친박세력의 자중지란과 탈친박의 명확한 징후마저 포착되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측면지원이 필요한 7•30 재보선 이후 당청관계의 무게 저울추가 한쪽으로 급속히 기울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정치가 (적어도 여당내에서는) 용인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독단과 독선의 아이콘인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굴욕적인 상황이다. 





'레임덕'은 임기말에 나타나는 현직 대통령의 권력누수현상을 지칭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처한 (혹은 조만간 처하게 될) 상황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레임덕'과 큰 차이가 없다. 집권 2년차에 불과할 뿐일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말에서나 볼 수 있는 권력누수현상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는 현 상황은 솔직히 조금 놀랍다. 대통령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레임덕'이 이토록 빨리 찾아오는 것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이겼어야 할 서청원 카드가 실패로 돌아간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게 생각보다 빠르게 정치적 위기가 찾아왔다.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이라더니 역시나 영원한 권력은 없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