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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군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진짜 사나이>는  예능의 대세인 '리얼'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예능프로그램이다. '리얼병영체험'이라는 컨셉답게 연예인들은 일반병사들처럼 훈련에 참여하고 주특기 교육을 받고, 그들과 함께 일상을 공유하며 군생활을 한다. <진짜사나이>는 연예인들의 병영생활 체험기로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을 엿볼 수 있다는 호기심과 여기에 연예인들의 좌충우돌 예능코드까지 더해져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승승장구하던 <진짜사나이>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28사단 윤일병 구타 사망사건이 터지고 난 뒤였다. <진짜사나이>가 묘사하고 있는 군의 모습이 군대의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을 뿐더러, 군의 부조리와 제반문제들은 여과된 채 오히려 군을 미화하고 홍보에 급급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연예인들의 병영체험을 소재로 한 예능프로그램이 제작된다고 했을 때 일각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이 윤일병 구타 사망사건으로 터져나온 것이다. <진짜사나이> 폐지론이 붉어진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이라는 더욱 강력한 아이템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조작 논란과 악마의 편집 논란이 잇따랐지만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진짜사나이> 보다 더 큰 화제와 파란을 일으키며 방송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진짜사나이> 여군특집 역시 군대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미지 세탁용 방송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예능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와 매력은 있지만 그럴수록 그와는 정반대의 군 현실은 더욱 씁쓸함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리얼'이 있어야 할 자리를 '판타지'가 대신하고 있을 때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은 극한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현실에서는 윤일병 사건처럼 <진짜사나이>와 군 현실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보여주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난다. 





지난 10일 검찰은 여군 부하를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된 인천지역 17사단장인 S사단장을 전격 구속했다. 현역 사단장이 성추행 혐의로 긴급체포된 것도, 법정 구속된 것도 사상 초유의 일이다. 구속된 S사단장은 사단 예하 다른 부대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해 사단사령부로 전출된 이 여군을 위로한답시고 다시 성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성추행 피해를 입은 여군의 신상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성추행했다는 것으로 볼 때 그 죄질이 매우 엄중하다. 구속된 S사단장은 육사 40기로 최근 장성 인사에서 육군본부 정보작전부장으로 영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치 박근혜 정부의 인사 검증시스템을 그대로 복사한 것처럼 군 내부에서도 인사검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군대 내 직속상관에 의한 성추행과 성희롱은 일선부대에서 빈번하게 터져나오는 고질적인 군병폐 중의 하나다. 상명하복의 위계를 절대적 가치로 내걸고 있는 군 내에서 직속상관(남성)이 부하(여성)에게 가하는 성적 착취는 2013년 10월 상관의 성추행과 성행위 요구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오대위 사건'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당시 오대위는 직속상관으로부터 성추행과 성희롱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관계 요구까지 당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대위가 남긴 유서에는 "10개월 동안 언어폭력, 성추행에 시달렸다. 하룻밤만 자면 모든 게 해결되는데 하면서 매일 야간근무를 시켰다. 상관의 여군 비하 발언이 듣기 싫고 영원히 저주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그녀가 얼마나 심각한 정신적 외상에 시달려왔는지 보여주고 있다. 


국가인권회가 지난 2012년 여군 8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2년 여군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는 군대 내에서 여군을 대상으로 얼마나 많은 성희롱과 성추행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1년간 직접적으로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여군은 11.9%에 달했고, 동료가 이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무려 41.3%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집계결과는 성희롱과 성추행,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이 외부노출과 2차 피해를 우려해 조사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충격적인 결과다. 



폐쇄적인 군의 특성상 군대 내부에서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는 성폭력이 외부로 노출되는 경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국민들이 <진짜사나이>가 보여주는 판타지에 빠져 있는 동안 윤일병이 선임병들의 집단 구타로 목숨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로, 신비감에 쌓여있던 여군들의 묘한 마력이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는 동안 현장의 여군들은 상명하복의 규율과 강압에 노출된 채 성적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본 글은 <진짜사나이> 폐지론 및  방송과 관련된 논란과는 관계없는 글임을 밝혀둔다)





문제는 역시 군이다. 이 고집불통의 대책없는 집단은 도무지 변화를 할 줄 모른다. 그동안 군대 내부의 문제들이 외부로 돌출되어 논란을 빚을 때마다 병영문화를 개선하고, 군 내부의 정신적 해이와 기강을 바로잡아 반드시 군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해왔지만 달라지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늦장 보고하는가 하면 관련 사실을 은폐하며 천성은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는다는 가설만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부하장교를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된 S사단장의 경우 성추행 피해를 당해 자신의 부대로 전출된 여군을 재차 성추행하는 무도함을 보여주었다. 딸같은 부하장교의 아픈 상처를 감싸 주어도 모자랄판에 더욱 씻기 힘든 모멸감과 수치심을 안겨준 것이다. 그러나 파렴치한이나 할 법한 몹쓸 짓을 저지르고도 그는 가장 최근의 장성인사에서 보기좋게 영전을 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S사단장이 지난 2010년 성추행과 성희롱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여군 심모 중위 사건의 피의자인 이모 중령을 군사재판의 심판관으로 인사조치한 당사자란 사실이다. 이모 중령은 당시 내부고발에 의해 27사단 감찰부로부터 성추행 혐의와 가혹행위 등에 대해서 형사입건되는 조치를 당했으나, 당시 27사단장은 그에게 구두조치 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시켰다. 그 이후 이모 중령은 S사단장의 인사조치로 군사재판의 심판관이 되어 군성범죄자의 심판까지 담당할 수 있게 되는 특혜를 누렸다. 



성범죄 피의자를 훈방조치하고 그것도 모자라 성범죄 피의자를 군범죄 사범을 재판하는 요직에 인사조치하는 막장인사는 일반사회에서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오직 무소불위의 권위적 통치가 지배하는 폐쇄적인 군대에서만 가능한 현상으로 군이 얼마나 심각한 치유불능의 상태에 빠져있는지를 보여준다. 27사단장의 어처구니없는 조치와 S사단장의 황당한 인사는 우연도, 개인이 초래한 일회적 일탈도 아니다. 대한민국 군대의 현주소이자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민낯이며 공직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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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담에 중이 제머리를 못 깍는다는 표현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허름한 전당포 주인 원빈이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을 하고 간지나게 머리를 깎던 장면을 기억한다. 지금은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 스스로 머리를 깎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생적으로 혼자 힘으로는 개혁과 혁신을 도저히 못하는 집단들이 있다. 특권을 버리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이 그럴 것이고, 매너리즘과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는 관료집단이 그럴 것이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누구도 모르고 그마저도 모두 국가기밀로 보호받고 있는 국정원이 그럴 것이고, 도무지 개혁과 혁신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군대조직이 그럴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감시와 견제가 없으면 부정비리에 쉽게 노출되고 급속도로 빠르게 부패한다는 점이다. 시도때도 없이 들려오는 국회의원들의 부정비리, 관료들의 편법을 동반한 각종 잇권개입,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 군의 무너진 기강과 끊임없는 추문 등은 사회가 용납할 수준을 이미 넘어선지 오래다. 특히 군은 폐쇄성과 특수성에 미루어 볼 때 그 폐해가 가장 심각한 집단이다. 그들 스스로 개혁과 혁신을 이뤄낼 가능성은 그동안의 관행으로 볼 때 기적에 가깝다. 


군은 이번 S사단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도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중이다. 진부하고 식상한 너무나 뻔한 스토리다. 그동안 군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문제들이 돌출될 때마다 늘 이렇듯 뼈를 깎는 혁신을 약속해 왔다. 그러나 지금껏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이같은 사실은 군에게 자체적으로 군 내부의 오래된 환부를 도려낼 방법도 의지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머리를 깎지 못한다면 강제로 머리를 깎게 만들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시대의 젊은 청춘들이 어둡고 음습한 군문화의 관성에 갖혀 안타깝게 희생되어 가는 비극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비극의 당사자가 바로 당신의 자녀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군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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