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국회 찾은 박근혜의 진짜 노림수는 이것

ⓒ 오마이뉴스


박 대통령이 8일 오전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회동을 가졌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에 좋은 분을 추천해 주신다면 그분을 총리로 임명해서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의장과의 회담은 '김병준 국무총리 카드'가 야권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 수습에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궁지에 빠져있던 박 대통령이 국면을 바꿀 수 있는 회심의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박 대통령은 영수회담을 통해 여야 대표들에게 책임총리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총리 인준에 대한 협조를 구할 생각이었다. 여야의 동의를 받은 김 후보자가 국정을 이끌도록 함으로써 이번 사태를 진정시키겠다는 복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독단적인 총리 지명에 야당이 영수회담 제의를 거부하자 상황이 꼬이게 됐다. 여당 내부에서도 국회와 사전 교감없이 일방적으로 총리를 지명한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사태를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던 박 대통령의 악수였다.  

지난 4일의 대국민 담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기변명과 동정심을 유발하는 내용 일색이었던 대국민 담화는 오히려 역효과만 냈다. 도무지 민심이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박 대통령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야권이 반대하는 김 후보자를 고집할수록 사태 해결은 더욱 멀어지게 되는 탓이다. 더구나 오는 12일에는 민중총궐기대회가 예정돼 있다. 획기적인 민심 수습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국회를 찾았다.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서 김 후보자의 지명을 사실상 철회하고 국회의 협조를 부탁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를 추천해야 한다는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신임 총리에게 '실질적 내각 통할' 권한까지 약속했다. 이는 대통령 권한 이양까지 수용하겠다는 취지로 야당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모양새다. 박 대통령의 제안은 강공 일변도의 마이웨이를 고집해왔던 기존 전략의 수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박 대통령의 노림수가 있다. 얼핏 코너에 몰린 박 대통령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막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총리 인준을 국회에 요청함으로써 그에 대한 부담은 온전히 국회의 몫으로 남겨지게 됐다. 국회의 총리 인준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박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총리 인준 지연에 따른 국정 공백 장기화의 책임 역시 대통령이 아닌 국회가 떠안게 됐다. 총리 인준과 국정 공백에 대한 비난을 비켜감과 동시에 정치권의 자중지란을 유도하는 양수겸장의 카드인 셈이다. 



ⓒ 오마이뉴스


박 대통령이 노렸던 효과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여야가 박 대통령의 발언의 진위와 총리 후보 인선을 두고 갈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먼저 박 대통령이 언급했던 '실절적 내각 통할'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정 의장이 거듭 물어봤지만 내각지명권을 국회에 주겠다는 것인지, 청와대가 내정에 간섭하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라며 "조각을 할 때 청와대가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아야 한다. 지금처럼 똑같이 하면 총리는 바보가 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우 원내대표의 지적처럼 박 대통령은 이날 "적임자를 추천하면 권한 주시겠다는 취지의 말씀을 주셨는데 나중에 그 문제를 가지고 이런저런 논란 없이 국민들이 보기에 깔끔하게 정리돼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정 의장의 요구에 "신임 총리가 내각을 통할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을 보장해주는 취지를 잘 살려나가겠다고"며 말을 아꼈다.

국회가 추천한 총리 임명과 권력 이양이 수반된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주장해온 야당의 요구에 즉답을 피한 것이다. 실제 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들어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한 헌법 86조 2항의 내용과 비교해 별 차이가 없다. 야당이 박 대통령의 발언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 이유다.

반면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발언을 권한 이양에 대한 의지로 해석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야당이 일관되게 요구하는 중립내각 취지와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야당의 요구에 존중하고 부응한 것으로 안다"며 "초헌법적 초법률적으로는 안되겠지만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범위 내에서 총리가 많은 권한을 갖고 실질적인 국정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대통령이 밝힌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박 대통령의 발언 의미를 두고 여야의 입장이 상반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총리 후보 인선에 대한 여야의 갈등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차기 총리는 비상 시국을 수습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는 만큼 여야 모두 주도권 싸움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전제로 국정을 수습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인사를 추천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반해 여당은 정치적 색채가 없는 풍부한 국정경험 능력을 갖춘 인사가 1순위다. 여야의 첨예한 이해관계와 정치공학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시국임을 고려하면 총리 후보의 국회 논의 과정 역시 난항이 예상된다.

문제는 주지한 바와 같이 총리 인준 지연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국회로 향하게 된다는 점이다. 처리해야 할 국정현안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총리 인준이 늦어질수록 그에 대한 책임은 국회, 더 정확히는 야당이 짊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강공책을 고집해왔던 박 대통령이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분노한 여론을 추스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대국민 담화 이후 60대 이상 보수층의 지지율은 반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보수층의 결집은 박 대통령의 구명줄이나 다름 없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까지 정권 퇴진 운동에 가세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사면초가의 위기를 벗어날 무언가가 절실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몸을 낮춰 총리 임명을 국회에 일임했다. 야권이 정권 퇴진 운동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사이, 그 빈틈을 절묘하게 찌르면서 국면 전환의 전기를 마련하는 기막힌 묘수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제는 외려 박 대통령의 2선 후퇴와 권력 이양을 주장해온 야당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등 돌린 보수층의 결집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진짜 노림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이 보이는 정치·시사 블로그 ▶▶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