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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정원 해킹 의혹, 못 밝히나 안 밝히나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 프로그램 제작업체인 'Hacking Team(해킹팀)'으로부터 원격감시시스템을 구입해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다는 정황 증거들은 차고도 넘친다. 국정원은 삼성 갤럭시 시리즈가 출시될 때마다 해킹을 의뢰했으며, '서울대 공과대학 동창회 명부'라는 한글 제목 파일에 해킹용 악성코드를 심어 '서울대 공대 출신 전문가'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국정원은 다 '카카오톡'과 안랩의 'V3 모바일' 등에 대해서도 해킹을 의뢰했다. 지난 2014년 3월 '5163부대'는 HT사에 '카카오톡' 해킹 기술에 대한 진전 문의를 하기도 했었고, 6월에는 "안드로이드 휴대폰 공격 기능이 필요하다"는 주문까지 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어제(30일)는 해킹 의혹을 최초 공개한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비영리 연구팀인 '시티즌랩'의 연구원이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에 SK텔레콤 망을 쓰는 국내 스마트폰의 해킹을 요청하면서 '실제 표적(real target)'이라 고 했다"며 국정원의 지난 27일 국회 정보위 해명이 거짓이었음을 폭로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당시 SK텔레콤 IP를 쓰는 국내 스마트폰은 모두 국정원 소유의 스마트폰으로 실험용으로 썼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시티즌랩'의 연구원은 이 날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해킹 사태 해결을 위한 토론 및 백신 프로그램 발표회'에서 "국정원과 해킹팀이 주고받은 이메일 내역을 보면, 국정원이 해킹팀에 (해킹을) 요청할 땐 '실제 표적'인지, '실험용'인지 구분해서 표현하는데, 아까 말한 폰에 대해선 '실제 표적'이라고 했다"고 밝히며 국정원의 해킹이 실험이 아닌 실제 사찰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국정원의 거짓말운 이제 습관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국정원 직원 임모 과장의 미스테리한 자살과 마티즈를 둘러싼 각종 논란은 국정원 해킹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게 만든다. 임모 과장이 자살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그의 죽음은 미스테리 그 자체다. 앞뒤 말이 맞지 않는 것들을 모두 조합해 놓은 듯한 임모 과장의 석연치 않은 죽음과 숱한 의혹을 남기며 귀신같이 사라진 마티즈야말로 국정원 해킹 의혹의 결정판이나 다름이 없다. 이 정도면 '지록위마'의 역대급 사례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어제는 임모 과장의 미스테리한 죽음의 실체를 파헤칠 중요한 증거물이었던 마티즈의 폐차와 관련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그동안 마티즈는 임모 과장의 장례가 끝난 다음날인 22일 폐차가 의뢰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사실은 임모 과장이 자살한 다음날인 19일 폐차 의뢰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임모 과장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은 가운데, 하물며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서둘러 폐차 의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더욱 놀라운 사실은 폐차 의뢰를 유족이 국정원과 오래도록 거래해 왔던 타이어 업체 사장을 통해 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경황이 없다 하더라도 유족이 직접 폐차를 의뢰하지 않고 국정원 거래 업체에 맡겼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폐차 의뢰를 부탁한 유족은 숨진 임모 과장의 매부가 맞는 것일까. 그는 왜 하필 국정원과 10년이 넘게 거래를 해왔던 업체에다 폐차를 의뢰했던 것일까. 단지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임모 과장의 죽음과 마티즈의 폐차 과정은 이처럼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들의 연속이다. 


최초 국정원의 해킹 의혹이 세상에 공개된 이후 국정원은 거듭되는 거짓말로 국민불신을 더욱 부추겨 왔다. 또한 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임모 과장은 뚜렷한 이유없이 자살했으며, 그의 죽음의 비밀을 밝혀줄 유일한 단서였던 마티즈는 빛의 속도로 폐차되었다. 해킹 의혹 진상규명이 '안보 자해 행위'라는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주장이 공감을 얻으려면 이 일련의 과정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어야만 가능해진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에게 '국가 안보'를 빼면 이번 논란을 납득시키기 위한 방법이 과연 무엇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해킹 의혹은 여러모로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사건과 닮아 있다. 논란을 유발한 주체도 국정원이고, 논란이 진행되는 과정도 당시와 매우 흡사하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은 한결같이 '국가 안보'를 내세우며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해킹 의혹의 진상규명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국정원 비호에 혈안이 되어 있고, 범죄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검찰과 경찰, 정의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마저 권력의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는 현실이라면 국정원이 아무리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다 한들 실체를 규명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전무하다. 세월호 사건, 비선실세의 국정 개입, 성완종 리스트 등 대통령과 정부, 새누리당에게 불리한 정치적 사안들이 어떻게 귀결됐는지를 살펴보면 결론은 어쩌면 이미 나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헌법질서를 짓밟은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사건도 유야무야로 넘어간 마당에 국정원 해킹 의혹은 알면서도 못 밝히고, 안 밝히는 미궁 사건으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정의와 상식이 사라진 대한민국에 흉터가 하나 더 생기려 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오늘도 이렇게 나즈막히 물어오고 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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