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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외통수 걸린 '박근혜'

오마이뉴스


특수(特殊). 특별나게 다르다는 의미로, 일반적이지 않거나 보편적이지 않은 경우 사용하는 어휘다. 실제 이 단어가 쓰이는 용례를 보면 비범하지 않은, 특별한 무언가가 진득히 묻어난다. '특수활동', '특수학교', '특수제품', '특수소재', '특수강도' 등만 보더라도 평범하지 않은 느낌과 어감이 오롯이 전해져 온다.


그러고 보니 최근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 국정원의 '특수활동비'에도 '특수'가 붙는다. 생각할수록 탄성이 절로 나온다. '특수'란 어휘의 용도에 맞게 국정원이 국민혈세를 제대로 활용한 셈이니 어찌 아니 그럴까.

특수활동비의 정의는 이렇다.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나 사건 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활동에 소요되는 경비'.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뭔가 대단한(?) 활동에 사용되는 예산 같다. '특수'가 붙은 경비답게 한해 예산만 해도 '억' 소리가 난다.


지난 2016년 9월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받은 '2016년 기관별 특수활동비 편성내역'에 따르면, 2016년 정부의 특수활동비는 총 886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다시 말하면 한해 9000억원에 이르는 국민혈세가 정부 부처와 국가기관 등이 벌이는 특수한 활동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는 얘기다.

국정원은 그중에서도 특수활동비를 가장 많이 받아 챙기는 국가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에 책정된 특수활동비만 해도 무려 4,860억에 이른다. 전체 특수활동비 예산의 절반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대외정보 활동 및 수사, 범죄 예방 등 갖가지 비밀 업무를 해야 하는 국정원이기에 다른 부처에 비해 상대적으로 특수활동비가 많이 책정되는 것일 게다. 불철주야 가릴 것 없이 특수한 일을 많이 하는 곳이니, 특수한 돈이 오죽 많이 필요할까.


많이 챙긴만큼 '밥값'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국정원은 이 예산을 아주 특수한 곳에 은밀하게 사용했다. 인터넷 여론조작을 목적으로 정치 댓글 활동을 폈던 군 사이버사령부 503심리전단에 특수활동비를 지급하는가 하면, 동일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민간인 사이버외곽팀 30여 곳에도 특수활동비를 사용했다.


그런가 하면 대국민 안보교육과 심리전 강화를 위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로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이 설립한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에도 특수활동비를 쏟아부었다.

특수한 목적을 위한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지출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국정원은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에게도 돌아가며 총 40억여원의 특수활동비를 상납했고, 조윤선 전 정무수석과 현기환 수석에게도 매월 수백만원씩 꼬박꼬박 갖다 바쳤다.


심지어 국정원은 지난 4·13총선 무렵 청와대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경선 결과 예측을 위해 실시한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을 대납해 주기까지 했다. 이쯤되면 국정원이 청와대의 '돈줄'이라고 해도 무방할 터다.


ⓒ 오마이뉴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종합해 보면 국정원의 특수활동비가 떳떳하지 않은 곳에 집중적으로 사용돼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국정원의 특수활동비가 불법 정치 개입, 대국민 심리전을 위한 여론 조작, 정권 실세에 대한 정기적 현금 상납으로 활용된 이상 이를 정당한 지출이라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을 관행이라 주장하고 있는한국당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한국당은 2일 장제원 대변인 명의로 "DJ·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의 모든 국정원 특수활동비에 대해 투명하게 낱낱이 공개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예산심사와 결산심사를 받는 법적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관행대로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것이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한국당이 하는 행태가 딱 그 짝이다.


그러나 한국당의 주장은 국정원이 첩보작전 방불하듯 비밀리에 현금다발을 청와대에 배달했다는 점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이 불거진 이후 이 전 비서관 등이 국정원에 돈 상납 중단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전혀 설득력이 없다. 특수활동비 상납이 관행이라면 국정원과 청와대가 숨어서 돈을 주고 받을 까닭이 없는 탓이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이를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등 이전 정부의 특수활동비 역시 공개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자신들이 여당이었던 시절 국정원과 청와대의 불법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사과나 반성은커녕 외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한국당의 모습에서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절감한다. 집권당의 헌법수호 의지와 윤리관이 이 모양 이 꼴이니 최순실이, 문고리 3인방이, 박 전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제 멋대로 농단할 수 있었던 것일 테다. 청산돼야 할 권력형 부정·비리가 졸지에 관행으로 둔갑돼 버리니,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곳곳에 적폐가 파리처럼 꼬였던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구속된 이재만 전 비서관은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사실을 인정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실토했다. 이는 검찰수사의 촛점이 박 전 대통령으로 맞춰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관건은 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으로부터 건네 받은 돈을 과연 어디에 사용했느냐다.


국정원이 매달 일정액을 정기적으로 청와대에 상납했다는 점에서 별도의 용처가 있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대통령 급여에 해당되는 2억여 원의 예금이 매해 증가했다는 언론보도를 감안할 때 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 자금을 아주 특별한(?) 용도에 사용했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상납이 '통치자금', '관행' 등의 군색한 변명이나 해명 따위로 어물쩍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각의 주장처럼 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 자금을 옷값, 비선진료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면 국가예산 횡령죄에 해당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뇌물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 만에 하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한 흔적이 발견된다면 파장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설령 공적인 용도였다 해도 국정원 자금을 다른 목적으로 전용한 셈이기 때문에 그 역시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상납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박 전 대통령이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진퇴양난이요,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외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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