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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민들이 특검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

1894년 9월 프랑스 욱군정보부는 프랑스군 내부의 기밀정보를 독일에 유출하는 단서가 적혀있는 편지를 입수한다. 프랑스 군 당국은 편지에 적힌 필적을 추적해 유대교 포병대위인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군사 기밀유출 혐의로 체포했다. 비밀군사재판에 회부된 드레퓌스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남미의 프랑스령 기아나 앞바다에 있는 '악마의 섬'에 유배된다.


당시 이 사건은 정의와 불의, 진실과 거짓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프랑스는 물론 전유럽을 뜨거운 논쟁 속으로 몰고갔다.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자유주의문학의 거장이었던 에밀 졸라가 프랑스 일간지 1면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편지를 게재한 것이 그 기폭제가 됐다. 졸라는 이 편지에서 드레퓌스가 광기에 휩싸인 국가 폭력의 희생양이라고 강변했다.

당시 프랑스는 프로이센(독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알자스·로렌 지방의 대부분을 독일에 빼앗기고 막대한 배상금까지 지불하는 굴욕과 수모를 겪고 있었다. 금융시장의 공황으로 투자실패가 잇따르며 경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고, 이로 인해 당시 금융계의 큰 손이었던 유대인에 대한 증오가 증폭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에 대한 복수를 선동하는 극렬한 애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등 국내 정치 역시 혼란과 혼돈의 도가니였다. 졸라는 이와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프랑스가 유대인인 드레퓌스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인식했다.


이에 졸라는 '진실이 행군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는 비장한 결의가 담긴 장문의 편지를 통해 이 사건이 조작된 것임을 만천하에 공개하기에 이른다. 당시 졸라가 강조했던 정의와 양심은 현대사회에도 그대로 소급·적용된다. 추악한 권력의 야만과 광기를 고발한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가 시대를 초월한 명문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옮겨보면 이렇다.

"한쪽에는 햇빛이 비치기를 원치 않은 범죄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햇빛이 비칠 때까지 목숨마저도 바칠 정의의 수호자들이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진실이 땅속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입니다"

졸라의 외침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홍역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를 향한 일침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한쪽에는 국가권력과 결탁해 헌정질서를 농락하고 사익을 챙겨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는 그들의 범죄행위를 밝혀내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진실을 감추기 위해 공모하는 사람의 대척점에서 땅 속 깊숙히 파묻혀있는 진실의 조각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특검이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철규 특검보가 밝힌 구속영장 청구 사유다. 100년 전 졸라가 부르짖었던 '그것'과  유사한 무엇이그 속에서 발견되는 까닭이다. 이 특검보는 "구속영장 청구를 결정함에 있어 국가 경제 등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저 말을 들어보니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총체적 난국의 본질이 '정의'의 실종에 있다는 사실을. 특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댓가로 최씨 일가에게 430여억원을 건넨 삼성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벌이고 있던 지난 14일,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79번째 노동자였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무려 430여억원의 뇌물을 상납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삼성은 그러나 산업재해에 대해서만큼은 피도 눈물도 없는 반인륜적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삼성은 급성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에게 500만원의 위로금을 건넸던 사실이 드러나 공분을 샀다. 지난 14일 사망한 고 김기철씨 역시 "질병과 직업의 상당한 인과 관계가 있다"는 의사의 진단 소견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고용노동부의 관련 자료 제출 거부로 산업재해 보상신청을 받지 못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16일 헌재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관여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및 경영권 승계 문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면 등에 관여했다고 실토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미르·K포츠재단 의혹에 대해 "의미있는 사업이며 재계가 순수한 참여 의지를 가지고 주도한 것"이라고 했다. 최순실씨와의 관계 역시 과거의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부터 취임 후 일정 기간까지만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해명은 모두 거짓이었다.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과 관련해 대통령의 범죄를 99%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특검 역시 박 대통령의 뇌물죄 성립을 위한 핵심 인물인 이 부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함으로써 범죄의 사실관계 입증에 한발 더 다가섰다. 최씨는 박 대통령의 해명과는 달리 국정 전반에 걸쳐 깊숙히 손을 뻗히고 있었다. 심지어 최씨가 국정교과서에까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마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탄핵으로 직무정지 중임에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어이 없다", "엮였다" 등의 수사를 섞어가며 최씨와 공모한 사실이 손톱만큼도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던 피의자 대통령이 어느새 누명을 쓴 결백한 피해자로 둔갑해 국민을 상대로 교묘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최씨 일가에 대한 지원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6일 열린 청문회에서 "고 황유미씨에게 삼성이 5백만원 내밀었고 정유라에게 3백억원을 내밀었다. 아시느냐?"는 윤소하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5백만원을 건넨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10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자격없다'고 외치고 있는데도 이 나라의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다. 정의가 실종되면 이처럼 부조리한 일들이 일상이 된다.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 모처럼 등장한 '정의'는 그래서 애틋하다. 특검이 꺼내든 '정의'가 절절한 것은 전적으로 우리 사회의 절박함에서 기인한다. 정치·사회·경제는 물론이고 가장 정의로워야 할 법조계와 관료 사회에서조차 정의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특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거운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달리 생각하면 그동안 권력형 부정·비리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검 수사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위고하의 여부를 따지고, 권력의 유무를 살피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정의'는 지극히 난망하다는 사실이다. 법과 원칙이 제대로 지켜질 때에만 우리 사회에 '정의'에 바로 설 수 있음을 특검이 각인시켜 주고 있다. 현직 대통령과 삼성,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칼 끝을 겨누는 특검을 국민들이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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