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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공영방송 정상화, 고대영과 이인호만 남았다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13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김장겸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여권 추천 인사 5명의 전원 찬성으로 의결했다. 앞서 2일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이 해임된 데 이어 김장겸 사장까지 물러나자,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15일 오전 9시 파업 종료를 선언하고 방송복귀에 들어갔다. 지난 9월 4일 방송의 공정성 회복과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간 지 73일 만이다.

두 번의 실패는 없었다. MBC본부는 지난 2012년에도 총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치열하고 뜨거운 싸움이었다. 그러나 170일에 달하는 최장기 파업에도 MBC본부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외려 파업의 대가는 혹독하고 처절했다. 파업 종료 이후 MBC 경영진은 더욱 노골적인 정권 편들기로 방송의 공정성을 망가뜨렸고, 대규모 해고와 정직, 대기발령 등 무자비한 인사 보복 조치를 강행하며 파업에 동참한 노조원들을 탄압했다.

그 과정에서 파업을 주도했던 정영하 MBC본부 본부장을 비롯해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최승호 PD, 박성제·박성호 기자 등이 줄줄이 해고됐고, 보도국 기자와 아나운서 등 서울에서만 70여 명에 이르는 노조원들이 대기발령 통보를 받았다. 부당 전보조치가 잇따르는가 하면, 파업 참가자에 대한 사측의 고소·고발이 난무하기도 했다. MBC본부에게 2012년 총파업은 이렇듯 깊은 상처와 좌절을 안겨준 기억으로 남아있다.  

김재철·김종국·안광한·김장겸으로 이어지는 지난 9년 여 동안 공영방송 MBC의 위상은 끝도 없이 추락했다. 시청률과 신뢰도는 바닥을 쳤고, 국민들은 편파·왜곡 방송을 일삼는 MBC를 향해 '정권의 혓바닥', '어용방송' 등의 낯뜨거운 꼬리표를 붙여주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규탄 촛불집회 당시 MBC 기자들을 향한 집회 참가자들의 날선 반응은 추락할대로 추락한 공영방송 MBC의 현주소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방증과도 같았다.

고영주 전 이사장과 김장겸 전 사장은 각계각층으로부터 MBC를 망친 주역이라 지목받는 당사자들이었다. MBC본부가 방송 정상화의 기치를 천명하면서 두 사람의 동반 퇴진을 전면에 내세웠던 이유였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의 퇴진은 MBC의 정상화를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는 것을 뜻한다. 무너진 공영방송의 위상과 신뢰 회복을 위해서 MBC 경영진과 구성원들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 길만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권력에 부역한 지난 과오를 씻는 유일한 방법이며, MBC 총파업을 묵묵히 지지해준 국민들에 대한 도리일 터다.



ⓒ 오마이뉴스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MBC와 달리 KBS의 앞 길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보도국장 재직 시절부터 불공정··왜곡 방송을 일삼으며 KBS의 방송 공정성을 크게 후퇴시켜 왔다고 평가받는 고대영 사장이 방송법이 개정되면 사퇴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데다, KBS노조로부터 동반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이인호 이사장 역시 "이 나라의 공영방송 지킴이로써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사퇴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꼼수와 궤변이 만나니 이렇게나 황당한 '콜라보'가 만들어진다. 지난 9년 동안의 KBS 몰락사가 두 사람이 보여주고 있는 '환상의 케미' 속에 여실히 담겨있는 듯하다. 고대영 사장이 방송법 개정안을 사퇴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장직을 유지하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공영방송 이사 구성을 여야 7대 6으로(현재는 여권7, 야권 4) 하고, 사장을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뽑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은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만큼 12월 국회 통과가 난망한 상태다.

문제는 또 있다. 설령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경영진 교체가 곧바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KBS새노조가 지난 10일 '방송법 개정 통한 고대영 퇴진 신기루'라는 성명에서 "방송법 개정안이 12월 말 통과돼도 부칙 등에 따라 내년 6월이나 돼야 사장·이사 등의 교체가 가능해진다"고 지적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결국 고대영 사장이 방송법 개정안 통과에 자신의 거취를 연계한 것은 어디까지나 시간을 벌기 위한 꼼수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사퇴가 '공영방송 사수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는 이인호 이사장의 발언은 끔찍한 언어도단이자 궤변이다. 이는 공영방송 사수의 책임을 철저하게 방기한 당사자로서 할 말이 도저히 아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방송의 독립성과 공익성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책무가 경연진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진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KBS 뉴스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자리보전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한심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KBS가 용산참사, 2012년 대선, 국정원 사건, NLL 논란, 세월호 참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 중요한 정치·사회적 현안을 외면하거나 축소·왜곡 보도해 왔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정권 비판적인 인사나 야당 정치인 지지 의사를 밝힌 인사의 방송 출연을 금지시키는가 하면, 이를 비판하는 내부 인사들을 전보시키거나 징계하는 부당 행위를 일삼기도 했다. 공영방송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권력의 호위무사가 되어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유린해 온 사실을 삼척동자가 다 알고 있는데 짐짓 딴소리다.

"권력으로부터 MBC의 독립을 지키지 못해 송구하다"(김장겸 전 MBC 사장), "법과 원칙을 따르겠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대영 KBS 사장), "임기도중 사퇴한다는 것은 KBS가 직면한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 된다"(KBS 이인호 이사장). 놀랍도록 닮아있는 저들의 인식은 공영방송이 처참하게 망가진 이유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도긴개긴. 공영방송 KBS와 MBC의 지난 9년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적절한 비유는 없을 것이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찬성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김장겸 사장의 해임으로 방송 정상화의 물꼬를 튼 MBC와는 달리 KBS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정치적 편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을 짓뭉개 온 고대영 사장과 이인호 이사장이 버티기로 나오고 있는 탓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공영방송을 말아먹은 당사자들이 방송 정상화 요구에는 눈과 귀를 막은 채 자가당착의 궁극을 보여주고 있다고대영 사장과 이인호 이사장은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얄팍하고 졸렬하기 짝이 없는 '꼼수'와 '궤변'은 상식의 시대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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