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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고등학생의 황산테러, 그보다 두려운 것은

두 번 놀랐다. 첫번째는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무용담처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세태에 놀랐고, 두번째는 물리적 폭력을 휘두른, 그것도 황산이라는 끔찍한 물질을 투척한 당사자가 나이 어린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물론 전직 국정원장이 국민의 절반가량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하고, 집권여당 정치인들이 종북을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묘약쯤으로 여기고 있는 나라에서라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전북 익산에서 열린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 대변인의 토크 콘서트에 등장한 고등학생과 황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놀랍다. 기실 이런 장면은 애국심과 파쇼를 혼동하는 노병들에 의해 주도되어 온 측면이 강했다. 날이 잔뜩 선 군복과 무시무시한 가스통, 그리고 뒤틀린 적개심과 분노. 이 호전적인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앳된 고등학생의 황산테러는 놀라움 그 자체다. 안타깝다. 한창 세상을 탐미하고 철학을 사유해야 할 나이에 저 학생은 증오에 사로잡혀 황산을 움켜 쥐었다. 저 학생의 어리석은 치기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 사회, 더 정확히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미성숙함이다. 


반토막난 땅덩어리를 닮아서일까. 우리 국민들의 사고체계는 마치 자로 잰 것처럼 확연하게 갈린다. 불행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저 학생의 치기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반응들에 있다. 황산이라는 인명 살상물질을 투척한 이 학생의 행동은 어떤 이유에서든 비난받아 마땅하다. 어떤 경우에서건 다른 사람에게 행해지는 물리적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나와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폭력은 용인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 학생이 돌연 애국청년으로 둔갑해 있다. 그는 찬사받아 마땅한 의혈청년이며 '종북주의자'의 준동을 막아낸 열사다. 이 땅의 보수진영으로 보자면 학생의 치기어린 행동은 칭송받아 마땅할 구국의 결단이요, 애국의 참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학생의 행위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사이 정작 중요한 본질은 사라져 버렸다. 어느새 폭력을 용인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행위가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그에 대한 폭력마저 정당화되는 사회는 민주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사회다.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한 개별주체들의 인식차를 고려한다 해도 폭력은 비난의 대상이지 절대로 찬사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이 학생의 사고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가 민주주의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든, 아니면 투철한 반공주의자이든 상관없이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존중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가해지는 탄압과 폭력만큼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이 둘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호받아야 할 가치라면 그에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은 반드시 떨쳐버려야 할 이데올로기적 욕망이다. 





신은미씨와 황선씨의 토크 콘서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겠고, 주의깊게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우리 사회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다른 견지에서 보자면 우리 사회는 토크 콘서트에 대해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이 학생처럼 황산을 뿌려서라도 막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다. 우리나라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반공을 절대선으로 인식하는 정치집단과 보수세력이 여전히 집권을 하고 있는 나라다.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폭력으로 응징하겠다는 어린 학생의 위험천만한 행동이 애국으로 인식되는 나라이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정당치 못한 폭력마저 용인하고 묵인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힌 폭력에 환호와 열광을 보내는 사람들이 정상적일 리 없다. 이번 사건이 상기시키는 분명한 한 가지는 시간이 갈수록 짙어만 가는 우리 사회의 광기다. 나는 이 점이 두렵고 또 두렵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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