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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계파 청산? 정치를 코미디로 전락시킨 새누리당

ⓒ 오마이뉴스

지난 10일 주목할만한 선언이 정가에서 흘러나왔다. 진원지는 다름 아닌 새누리당이었다. 그들은 20대 국회 첫 정책 워크샵에서 계파 청산 선언을 전격적으로 부르짖었다.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당 소속 의원과 김희옥 비상대책위원장, 비대위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나온 의미심장한 외침이었다.

새누리당은 이 자리에서 "우리를 옥죄여왔던 분열과 작은 정치를 넘어 '대통합의 정치'를 실현해 나갈 것"이라며 "지금 이 순간부터 계파라는 용어를 쓰지 않을 것이다.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한마음 한 뜻으로 변화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날의 계파 청산 선언은 우여곡절 끝에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새누리당이 국민 앞에서 환골탈태하겠다는 약속이자 의지의 표현이었다. "또 다시 계파 타령 하면 당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라며 "계파는 정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던 정진석 원내대표의 역설 속에 계파 청산을 외친 그들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의 계파 청산 선언을 바라보는 당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혁신위원장에 내정됐다가 친박계의 집단 반발로 물러난 김용태 의원은 "총선 막장 공천에 관한 해명도 없이 계파를 청산한다고 하니 공허하기 짝이 없다"며 의미를 평가절하했고, 보수언론 역시 계파가 실존하는 상황에서 허울 뿐인 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전격적인 계파 청산 선언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을 향한 당 안팎의 평가는 이처럼 싸늘하고 냉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날의 계파 청산 선언이 새누리당 내의 뿌리깊은 계파 갈등을 혁신하려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는 상태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총선 참패의 실질적인 원인이었던 친박계의 독선과 일방주의,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는 기울어진 당·청관계, 당내 민주화를 가로막는 패권주의 등을 혁신하기 위한 최소한의 과정도 없이 털컥 계파 청산 선언을 해 버렸으니 당 안팎의 의구심이 쌓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허울 뿐인 말잔치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세간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계파 청산 선언이 눈가림에 불과했다는 정황들이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더민주에서 새누리당으로 갈아탄 조경태 의원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기재위원장에 선출됐다. 그는 당내 경선에서 경쟁자였던 이혜훈 의원과 이종구 의원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제치고 기재위원장을 거머쥐었다.

당초 기재위원장에는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경제통인 이혜훈 의원이 선출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승자는 기재위 경험이 전무한 조경태 의원이었다. 그는 당내 경선에서 114표 중 무려 70표를 얻었다.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표 차이였다.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이혜훈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대표적인 비박계 인사라는 점에서 친박계의 몰아주기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오마이뉴스


무소속 유승민 윤상현 의원 등의 복당이 결정된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 벌어지는 내홍 역시 그들의 계파 청산 선언이 이벤트용 눈속임에 불과했다는 방증이나 다름없다. 20대 총선 이후 대통령과 친박계의 눈엣가시인 유승민 의원의 복당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친박계는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출했고 그로 인해 그의 복당 문제는 피일 차일 미뤄지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16일 이 문제가 전격적으로 일괄 타결됐다. 새누리당 비대위가 무기명 비밀투표를 거쳐 탈탕 무소속 의원들의 일괄 복당을 결정한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당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회의를 주재한 김희옥 비대위원장은 결과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거취를 고민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고, 친박계는 "쿠데타"라는 극단의 수사를 동원하며 비대위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당내 갈등과 마찰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17일로 예정됐던 고위 당·정·청 회의는 취소됐고, 김희옥 비대위원장은 사퇴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승민 의원의 복당을 반대해온 친박계 김진태 의원은 "의원총회를 개최해 다시 복당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고 반발했고, 친박계 내부에서는 이 참에 끝장을 내보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유승민 의원의 복당 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친박계의 모습은 그들 스스로 청산을 선언한 계파와 파벌, 패권주의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비대위원들의 토론을 거쳐 자율투표에 의해 민주적으로 결정한 사안을 뒤흔들고 있는 행태 그 어디에서도 계파 청산 선언의 취지와 의미, 국민에게 다짐했던 약속은 찾아볼 수 없다. 막장도 이런 막장극이 또 없다.


정당은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인 정치결사체다. 그러나 현재의 새누리당은 가치와 비전이 아닌 권력과 사익을 쫒는 이익결사체의 모습에 가깝다. '친이'와 '친박' 간의 골육상쟁의 혈투가 계속되면서 기득권에 대한 집착과 권력에 대한 탐욕에 오랫동안 노출된 탓이다. 그 결과 새누리당과 극강의 패권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계파를 정치 박물관에 보내겠다며 호기롭게 선언했던 새누리당이 또 다시 계파 문제로 내홍에 휩싸이며 국민들을 한숨짓게 만들고 있다. '혹시나'를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어김없이 '역시나'를 선사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모습은 "장난 지금 나랑 하냐"라고 따져 물어도 뭐라 할 말이 없는 한심함 그 자체다. 정치가 코미디로 전락했다. 그 중심에 비민주적 패권주의에 휩싸여 있는 새누리당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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