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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포대 시즌2?'..IMF 환란이 누구 때문이었는데

ⓒ 오마이뉴스


'경포대 시즌2'. 20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자유한국당이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등을 비판하며 내뱉은 말이다. 과거 한나라당(현 한국당)이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깎아내릴 때 사용했던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프레임으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질의에 나선 이종배 한국당 의원은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 속에서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민생경제는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장밋빛 희망만 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야말로 '경포대 시즌2'가 시작됐다. 시즌1보다 더 블록버스터급"이라며 "경제 마이더스의 손이 아니라 경제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할 수 있고 경제 망치기, 최악의 경제 성적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겠다"고 강하게 쏘아붙였다.

김상훈 한국당 의원("정부의 조치는 거위의 배를 갈라서 알을 꺼내고 죽은 거위를 내팽개치는 정책이 아닌가")과 송언석 한국당 의원("시대착오적 좌파적 이념에 휩싸인 위정자의 잘못된 의식구조의 산물로 국민과 경제를 대상으로 위험한 생체실험을 하는 것은 아닌지 경제학자들은 걱정하고 있다")도 정부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한국당이 공세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앞서 나경원 원내대표 역시 1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헌정 농단' 경제 정책으로 위헌"이라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당시 나 원내대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대한민국 경제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한 사실을 거론하며 "좌파 정권이 한국 경제를 벼랑 끝에 내몰고 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한국당의 주장은 요컨대, 문재인 정부의 이념적 정책이 대한민국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고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세금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일자리 지표는 개선될 기미가 없으며, 외려 실업률만 상승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당의 공세는 급기야 '경포대 시즌2', '생체실험', '헌정농단', '위헌' 같은 극단적 레토릭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그 말대로라면 대한민국 경제는 '망조'가 들어도 아주 단단히 들었다. 국민 대다수가 거리로 내몰릴 판이다. 경제 성적표가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최악이고, 헌정질서를 무시하는 위헌적 경제정책이 펼쳐지고 있다는 데 왜 아니 그럴까.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경포대 시즌1'이었던 참여정부 5년의 평균 경제성장률이 4.5%였다. 한국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초래한 IMF 외환위기를 수습하느라 등골이 휘었던 국민의 정부는 5.3%였다. 그러나 민주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매도했던 이명박 정부는 3.2%에 불과했다. 대국민 사기극으로 끝난 '747공약'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표다. 박근혜 정부는 더 심각하다. 2.9%로 채 3%도 넘기지 못했다.

OECD의 '중간 경제 전망'(Interim Economic Outlook)도 한국당의 비판을 무색하게 한다. 지난 6일 OECD는 한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을 지난해 11월 전망치에서 0.2% 하락한 2.6%로 조정했다. OECD는 하향 조정한 이유가 “글로벌 교역과 세계성장 둔화의 영향”이라며 “다만 확장적 재정과 낮은 물가상승률이 국내 수요를 뒷받침 해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OECD의 설명대로 경제 성장률 하향 조정은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 보고서는 세계 각국의 경제 성장률을 낮춰 잡았다. 특히 경기 체감이 두드러진 유로존의 경우는 지난 11월 전망치보다 무려 0.8% 떨어진 1.0%로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독일(1.6%→0.7%), 이탈리아(0.9%→-0.2%), 프랑스( 1.6%→1.3%)등 유로존 대부분에서 성장률 전망이 하향 조정됐다. G2인 중국(6.3%→6.2%)과 미국(2.7%→2.6%) 역시 마찬가지다.

OECD의 경제 성장률 0.2% 하향 조정에 경제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는 한국당의 주장대로라면 무려 0.8%가 내려간 유로존의 경제는 벌써 붕괴되어야 마땅할 터다. 그런 면에서 OECD의 '중간 경제 전망' 보고서는 한국당의 정치 공세가 얼마나 악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역대 최악이라는 경제지표들도 한국당의 주장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의 물가상승률은 1.5%로 OECD 평균인 1.7%보다 낮다. 미국(2.4%), 영국(2.3%), 캐나다(2.3%), 노르웨이(2.8%), 독일(1.7%)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한국당과 보수언론이 맹공을 펴고 있는 실업률 역시 지난해 3.8%를 기록해 OECD 평균인 5.6%보다 낮게 집계됐다. 프랑스(9.1%), 이탈리아(10.6%), 스페인(15.3%), 핀란드(7.4%), 스웨덴(6.3%), 캐나다(5.8%), 영국(4.4%), 미국(3.9%) 등 대부분의 국가가 우리나라보다 실업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2017년 기준 정부부채비율(42.5%)과 경상수지비율(4.7%) 등도 OECD 평균(94.4%, 2.5%)보다 양호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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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종합해보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다는 한국당의 주장은 사실관계를 크게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각종 경제지표를 객관적으로 평가·분석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수치와 자료를 인용해 정치공세를 펴고 있는 셈이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대기업 프랜들리', '줄푸세'로 대표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부의 편중과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시켰다. 이 기간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명목으로 비정규직이 대폭 증가했을 뿐 아니라 극심한 소득불평등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부익부 빈익빈'의 극단적 양극화 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법인세 인하와 감세 등 각종 규제 철폐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었지만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채워진 건 대기업·재벌의 곳간이었지 서민들의 지갑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정부정책의 핵심 아젠다로 삼았던 배경이다. 중하위 계층의 소득을 끌어올려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복안이었다. 실질임금이 인상되면 소비가 증가해 자연스럽게 생산∙투자∙일자리가 늘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서였다. .

그러나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대표되는 'J노믹스'는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한국당 등 보수진영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한국당은 소득주도성장을 급진적 '사회주의 정책'으로 규정하며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은 수 십년 넘게 (좁게 잡아도 지난 10년 내내) 성장 담론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펴왔으면서 사회의 경제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소득주도성장은 채 1년도 안 돼 결과를 예단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당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삶을 극단으로 내몰고 있다고 각을 세우고 있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태, 높은 상가 임대료,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 높은 카드 수수료 등이야말로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실질적인 요인이라는 평가다.

그런데 한국당은 최저임금 인상이 모든 원흉이라는 듯 목을 매고 있다. 황당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이 지난 대선 당시 홍준표 한국당 후보의 대선공약이었다는 것. 당시 홍 후보는 최저임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오는 2022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거품 물던 한국당이 상가임대차보호법 처리에 미온적이었던 것 역시 앞뒤 말이 맞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소리가 아니다. 정부 비판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거나 비판에도 정도가 있다. 객관적 기준이나 근거에 의한 비판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수치와 통계로 본질을 왜곡하는 정치공세에 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의 국정동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농익지 않은 경제 정책, 개혁 의지와 성과 부족 등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의 소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현재의 상황을 온전히 설명하기가 힘들다.

관련해 눈여겨 봐야 할 것은 한국당이다. 일자리 추경안부터 시작해서 개헌, 선거제도 개편, 각종 민생·개혁 법안에 이르기까지 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은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문제는 삼권분립 원칙이 살아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소야대 국면에서 제1야당이 이렇듯 사안마다 작심하고 반대와 몽니를 부린다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삶, 국가 혁신과 직결된 민생·개혁 법안이 발의돼도 입법이 가로막히는 형국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는 셈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행태로 보건대 한국당이 달라질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기승전-문재인 정부 비판' 기조가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될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 국민 입장에서 본다면 불행도 이런 불행이 없을 터다.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정책 대결이 아니라 소모적인 대립· 적대 정치가 이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 하나는 확실히 해둬야 겠다. 경제가 완전히 거덜나고 안보가 누란의 위기에 빠졌던 것은 좌파가 아닌 우파정권이 집권할 때였다는 사실을. IMF 외환위기로 나라 경제를 통째로 말아먹은 것도, 북한이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에 매진했던 것도 모두 한국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안보 정책에 대한 평가는 정파적 시각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 이래 경제가 완전히 폭망했던 시기는, 북한이 핵무기 고도화에 집중했던 시기는 한국당이 집권할 당시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당의 주장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것은 시대가 지나도 변치않는 '팩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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