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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주 지진 일어난 날, 2명의 노동자가 우리 곁을 떠났다

ⓒ 경북일보


경주 지진이 일어난 다음날 새벽, 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경주 지진의 여파로 KTX가 지연운행하면서 경북 김천역 부근에서 야간 선로작업 중이던 노동자 2명이 열차에 치여 숨진 것이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번 사고는 지진으로 인한 열차의 운행지연 사실을 미처 통보받지 못해 일어났다. 생명과 직결된 위험한 야간 선로작업을 수행 중이던 그들은 왜 코레일로부터 관련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을까.

이유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코레일 정규직이 아닌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코레일이 해당 업무를 외주화시켰고 노동자들이 운행지연 사실을 모른 채 작업에 나섰다 변을 당한 것이다. 위험을 외주화시키는 성장우선주의와 성과주의가 공공부문에까지 깊숙이 침투해있는 현실에서는 이처럼 생명과 직결된 정보 공유조차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사람 목숨보다 비용과 효율이 더욱 중시되는 시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고는 제2의 구의역 사건이다.

지난 5 28일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 19살 꽃다운 청년의 죽음에 온 사회가 전율했다. 각계각층으로부터 더 늦기 전에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됐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달라진 것은 없다.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니 매번 같은 패턴의 동일한 사고가 끊이질 않고 발생한다.

지난 6 1일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어난 붕괴사고로 4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7 26일에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노동자가 해양5안벽에서 익사 상태로 발견됐다. 8 11일에는 역시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소속 이주노동자가 20m 높이에서 추락사했고, 9 3일에는 성수역과 용답역 사이 장안철교 발판 철거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끝도 없이 죽음의 행렬이 이어진다.

이들의 죽음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외주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중대재해 사망자 중 하청업체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2 37.7%에서 2015 40.2%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그만큼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외주화에 따른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재 외주화는 공공부분은 물론이고 재벌·대기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사회적인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청·재하청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원청기업의 비용절감을 위한 최저가 입찰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누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사이 노동자들은 극한의 위험 속에 노출된 채 목숨을 잃어간다. 위험의 외주화가 부른 예고된 비극인 것이다.



ⓒ 오마이뉴스



외주화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공공부문을 선진화·정상화시키겠다는 의도에서 추진되었다. 재벌·대기업 역시 업무 효율과 이익 극대화를 위해 외주화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었다. 여기에는 안전업무에 대한 외주화까지 포함됐다. 문제는 외주화에 따른 위험을 오로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재벌·대기업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2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김천역 사고에 대한 코레일 반응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코레일은 "작업 승인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선로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며 사고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시켰다. 익숙한 장면이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당시도 그랬다. 서울메트로 측은 사고의 원인을 작업 규정을 지키지 않은 노동자 과실로 몰아갔다. 노동자의 죽음을 바라보는 코레일과 서울메트로의 시선이 이처럼 서늘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방법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대 국회 때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발의한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 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사고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분야에 기간제 사용을 금지시키는 것을 골자로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발의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이 통과됐더라면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질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안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2명의 노동자가 또 다시 우리들 곁을 떠났다. 이번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의 죽음은 국내의 시선이 온통 경주 지진에 매몰된 탓에 언론에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못했다. 법과 제도가 정비되고, 불공정한 사회적 관행들이 개선되었더라면 그들 모두는 누군가의 아버지로, 남편으로, 아들로 여전히 숨쉬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은 배가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역시나'. 도무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민생 팔이에 날새는 줄 모르는 정치가 기실 민생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수백조에 달하는 사내보유금을 쌓아둔 재벌·대기업에게 노동자는 여전히 이윤추구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 삶에 든든한 울타리를 제공해야 할 정부는 노동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노동착취법안을 밀어붙이기에 혈안이다.

노동자의 존엄과 인권보다 경제적 효율성과 기회비용을 더 우선시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OECD 산업재해 사망사고율 1'라는 오명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들의 죽음은 과연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두렵다. 세상에 한눈 파는 사이 다시 누군가가 희생될까봐, 그들의 죽음이 또 다시 잊혀지게 될까봐,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거란 무력감에 익숙해져 그들을 외면하게 될까봐, 무섭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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