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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보복이 문 정부 탓? 누가 토착왜구당이 아니랄까봐

ⓒ 오마이뉴스

 

중남미를 순방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아베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의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통제에 들어가자 이를 작심 비판한 것이다.

박 시장은 9일(현지시각)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마디로 적반하장격"이라며 "아베 정권은 정치적 이유로 인류 보편적 상식도, 국제적인 규범도 무시하고 가해자가 오히려 경제적 우위에 있다는 점을 이용해 보복을 가하고 있다"라고 일갈했다.

박 시장은 "지금 현재 일본의 아베와 같은 정치는 일본 국민들에 의해서도 결코 장기적으로 용납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국가 간 갈등이 첨예해지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양국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한일 양국 국민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보복'이 아닌 '화해'의 선택을 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성토했다.

박 시장은 한일 무역갈등의 책임을 우리 정부의 반일감정 탓으로 돌리는 정치권 일각을 향해서도 일침을 날렸다.

박 시장은 "우리 일부 정치권도 일본과 놀라울 만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경제보복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리고 있다"라며 "박근혜 정권에서 무엇을 했는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한을 철저하게 외면한 채 대한민국 국민보다 일본 정부의 편에 서 있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단기적으로 이렇게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정치적 리더십은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과거청산이라는 기반 위에 우리가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데 과거청산에 대해서도 제대로 동의하지 않고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일부 정치 세력은 도대체 어디에 줄을 서고 있는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심정"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 시장의 발언은 자유한국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빌미로 경제보복 조치를 감행한 아베 내각을 비판하기보다 되레 문재인 정부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의 어설픈 대일외교가 아베 내각의 경제보복으로 이어졌다며, 한일 무역갈등을 정치공세로 활용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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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한국당의 비판이 뜨겁게 터져나오고 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2일 논평에서 "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는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일"이라며 "한일 관계에서 실익우선과 현실주의적 접근이 아닌, 이념적 목표 달성에만 매진하면서 역사상 최악의 국면을 맞이한 결과"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김무성 의원도 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박근혜 정권에서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일본 정부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합의를 도출해 냈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같은 대한민국 정부가 이를 뒤집는, 외교적으로도 큰 문제를 일으켰다"라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몰아세웠다. 박근혜 정부 당시 일본 정부와 맺었던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뒤집었기 때문에 경제보복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역시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일찌감치 일본 정부가 통상보복을 예고해왔음에도 문재인 정부는 수수방관하며 사태를 악화시켰다"라며 "감상적 민족주의, 닫힌 민족주의에만 젖어 감정외교, 갈등외교로 한일관계를 파탄 냈다"라고 날을 세웠다.

나 원내대표는 10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도 "정부와 여당은 반일(反日) 감정에 편승하려는 듯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라며 "결국 국익은 내팽개치고 정치권력만 쫓는 모습이 될 수 있다"라고 정부 책임론을 강조했다.

한일 무역 갈등의 밑바탕에 아베 정권의 정치적 노림수가 깔려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 결집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참에 과거사를 확실히 정리해야겠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턱밑까지 쫓아온 한국 경제에 대한 견제 심리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껄끄러워진 한일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속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번 사태를 초래한 당사자가 바로 '아베 정권'이라는 점이다. 정치와 무관한 대법원 판결을 정치 쟁점화시키고 이를 다시 경제 문제로 연계시켜 보복 조치를 감행한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의 쟁점이라 할 수 있는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개인 청구권이 포함되어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대법원은 이미 2012년 5월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개인 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해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라며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개최된 제1차 한일회담에서 이른바 '8개 항목'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무관계에 관한 것이고, 이 8개 항목 중 제5항에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라는 문구가 있긴 하지만, 이 또한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일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밝혔다. 

또한 "한·일 청구권협정 제1조에 따라 일본정부가 대한민국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이 제2조의 양국 및 양국 국민간 청구권 등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인 대가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라며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의 발표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도, 정부가 수령한 무상자금 중 상당금액을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에 사용하여야 할 책임은 '도의적 책임'에 불과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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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것은 한국당이다. 지난 2015년 12월 체결된 위안부 문제 합의 당시 집권당이었던 그들이 아베 정권의 주장에 동조하며 문재인 정부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제국주의 당시 자행된 반인륜적 침략행위를 부정하고 왜곡하기에 여념이 없는 아베 정권의 도발에 강력 대응하기는커녕 외려 일본의 입장을 엄호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의 문재인 정부 때리기는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의 전범 기업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 이명박 정부 시절이기 때문이다. 살펴본 대로 2012년 5월 대법원은 국가 간 협정이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라며 일본 기업의 손을 들어준 1, 2심을 파기환송시켰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전범 기업들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배상판결이 내려진 파기환송심 역시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열렸다. 2018년 대법원에 의해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확정됐지만, 그보다 앞서 원심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이미 뒤집어졌다는 의미다.

(아베 정권이나 한국당이나) 삼권분립의 대원칙을 무시하고 대법원 판결을 정치적으로 연계시키는 발상도 놀랍지만, 굳이 책임을 물으려면 현 정부가 아니라 이번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게 따져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아베 정권이 경제보복에 나서게 된 빌미를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제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한일 무역 갈등 사태에 아베 정권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 조치가 한국 정부의 교체를 염두해 둔 전략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문재인 정부의 아픈 손가락인 경제문제를 건드려 향후 친일 우호적인 정권으로의 교체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10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저번에는 제가 '아베 정권은 한국을 망가뜨릴 생각이다'라고 말했는데, 한국이 아니라 현 정권, 그런 식으로 표적을 삼았다는 내용이 포착되었다"라며 이같은 주장을 폈다.

호사카 교수는 오노데라 자민당 안보조사회장(전 방위성 장관)이 지난 6월 10일 자민당 강연회에서 "이번 정권하고는 절대 관계가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권 교체 다음을 생각해야 된다"라고 발언한 사실을 거론하며 "일본의 극우 언론이 조선일보 등 국내 보수언론의 사설 등을 인용해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의 조치에 대해서도 '이것은 한국 정부의 실패가 초래한 내용이다'라는 댓글이 굉장히 많다"라며 일본판 조선일보에 달린 댓들 등이 일본 극우매체를 통해 여과 없이 보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내 극우매체가 국내 보수언론의 비판 기사와 댓글 등을 소개해 '한국 정부 책임론'을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경제보복 조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는 얘기다.

호사카 교수의 말을 종합해 보면 아베 정권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정치세력으로의 정권 교체를 위한 정략적 의도에서 경제보복 조치를 단행한 것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한국당이 집권했던 지난 2015년 위안부 문제가 타결됐다. 사회적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1993년 고노 담화의 내용과 별 차이가 없는 데다, 아베 총리의 사과도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관련된 내용도 빠져 있었고,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인 위안부 피해자들과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었다. 위안부 문제 합의는 그렇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이뤄졌다. 

후폭풍도 거셌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한동안 국민적 지탄에 시달려야 했다. 각계각층으로부터 재협상 요구가 빗발쳤다. 지난 대선 당시 대선 후보 모두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재협상 의사를 밝힌 것도 성난 민심을 의식해서였다. 한국당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후보는 "위안부 합의는 외교가 아니라 10억엔에 합의한 뒷거래"라고까지 했다. 

그랬던 그들이 한일 무역 갈등과 관련해 아베 정권을 옹호하는 듯한 행태로 또 다시 빈축을 사고 있다. 아베 정권의 몰상식과 외교적 무례를 탓하기는커녕 사실을 호도하며 정부 비판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가 밉다고 해도, 수권이 목표라 해도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한국당은 자신들이 누구를 대변하고 있는지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5천만 국민이 숨쉬고 살아가는 이 곳은 '대한민국'이지 일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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