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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해도해도 너무한 경비원 분신 아파트

지난 10월 7일 서울 압구정동 S아파트에서 이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자살을 기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동료 경비원들은 분신자살을 기도한 이 모씨가 평소 한 70대 여성 입주민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자주 들어왔다고 증언했다. 그들은 입주민으로부터 막말과 폭언을 동반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다보면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분신을 기도한 경비원은 사투 끝에 지난 11월 7일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었다)


경비원 분신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이 아파트의 입주민들이 경비원들을 향해 인격모독적인 언행들을 자주 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아파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아파트의 입주민들이 경비원들을 비인간적으로 다루고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모욕적인 언사들을 일상적으로 행해 왔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분노케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아파트의 입주자 대표는 경비원의 분신과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다. 아니 뻔뻔했다. 이 아파트의 입주자 대표는 경비원의 죽음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할 의향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비인간적인 처우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 경비원은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저들로부터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의 입주자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경찰 수사 결과도 발표되지 않았고 입주자 때문에 목숨을 끊었다고 확정된 사실도 없다"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대표자회의에서 사과를 하느냐"고 되물었다. 또한 그는 "업체가 인사관리를 잘 했다면 이런 사고가 안 났을 것"이라며 "적재적소에 인재 배치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잘못한 것 아니겠느냐"고 오히려 사고의 원인을 경비업체와 경비원에게 전가시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비정한 사내는 한 인간의 비참한 죽음 앞에서조차 이해타산을 따지고 책임전가에 여념이 없다. 


흔히 하는 말로 '끼리끼리 논다'라는 표현이 있다.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파트 입주자 대표의 차갑기 그지없는 언행은 경비원에게 먹던 떡을 던져주고, 경비원들을 하인이나 머슴처럼 부리고, 경비원의 분신을 안타까워 하기보다는 관련 사실이 외부로 알려져 집값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이틀 전 언론은 해당 아파트의 경비원 78명 등 노동자 106명이 전원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해당 아파트 입주자 대표의 태도로 미루어 이같은 조치의 저의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편적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 불합리와 부조리에 저항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해당 아파트의 비인간적 행태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마구 쏟아냈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아파트 측은 경비원들에 대한 전원 해고 방침은 전혀 결정된 바가 없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달 초 입주민회의를 통해 내년도에 경비업체를 바꾸기로 이미 결정한 상태였다. 아파트 측이 사회적 논란과 비난 여론을 의식해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물론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연장할지 말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아파트 측의 권리다. '간접 고용'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경비원의 고용여부는 온전히 용역업체의 문제이지 아파트 측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아파트 측이 통상 1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업체와 계약한다고 해서 문제될 여지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해도 도덕적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아파트 측의 결정으로 애꿏은 경비원들이 졸지에 직장을 잃게 되는 날벼락을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욕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사로 경비원을 죽음으로 이끈 입주민들이 이번에는 106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의 '밥그릇'을 걷어차려 하고 있는 것에 사람들이 뜨겁게 분노하는 것은, 해고 통지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해고 통지의 사유에 있다. 아파트 측은 표면적으로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용역업체를 변경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실은 추악하고 잔인한 인간의 속성이 그 내면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경비원의 분신사망 사건을 둘러싸고 아파트의 명예와 이미지가 훼손되었다며 경비원들을 해고했다. '갑'과 '을', 자본주의의 천박함이 만들어낸 흉물스런 민낯은 우리사회 곳곳에 이처럼 천연덕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섬뜩하게도 이 아파트에서는 사람의 목숨보다 아파트의 명예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람의 생계보다 아파트의 이미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 곳에서는 아파트의 주거환경과 입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온갖 허드렛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경비원들이, 존엄을 가진 인간이 아닌 파리목숨처럼 가볍게 다루어 진다. 이 끔찍한 모습은 냉혹한 동물의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이런 세상은 인간이 아닌 야만의 세계다. 사람들의 압도적인 분노는 바로 이 지점에서 활화산처럼 폭발하고 있다. 





물론 경비원의 열악한 처우문제와 인격모독이 비단 이 아파트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사회의 냉대와 차별, 멸시와 천대가 특정 지역, 특정 집단에게만 나타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빈부의 격차에 따라,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출신지역과 학벌에 따라, 성별과 용모에 따라 사람의 등급을 나누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야만이 일상화된 사회. 우리를 더욱 절망케 만드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야만이 일상화된 사회를 살고 있다는 사실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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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사람을 덜어내고 나면 과연 무엇이 남게 될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악몽을 꾼것처럼 두렵고 무섭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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