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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혁신당과 민평당,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 오마이뉴스


한지붕 두가족이 된 국민의당이 분당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통합 찬성파와 반대파, 그리고 여기에 중재파들까지 가세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상황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국민의당 사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래서일까.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는, 거침없는 행보의 연속이다. 상대방을 자극하는 기싸움은 말할 것도 없고, 서로를 향해 최고 수위의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통합 찬성파와 반대파의 엇갈린 행보는 25일 아주 상징적으로 표출됐다. 이날 이들은 동서로 나뉘어 각각 영남과 호남을 찾았다. 갈림길에 서있는 두 세력의 앞날을 예고라도 하는 듯이. 통합을 향해 가속 패달을 밟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와 함께 보수의 텃밭인 대구를 방문해 통합개혁신당(가칭)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안 대표는 이날 대구에서 국민통합포럼이 주최하는 '로봇산업 및 4차 산업혁명'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중요한 건 지방분권과 경쟁체제, 디지털 시대에 맞는 인물과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통합개혁정당은 정당 역사상 첫 동서화합 정당"이라며 "이런 시도가 힘든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어려움을 뚫고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면 대한민국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통합 명분의 하나인 '동서화합'을 강조하면서 분당으로 치닫는 당내 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통합을 밀고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피력한 것이다. 뒤가 없는 안 대표로서는 어떻게든 통합을 성사시켜야만 하는 입장이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통해 중도·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적자가 되겠다는 게 안 대표의 의중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때 중도·진보진영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안 대표의 위상은 국민의당 창당과 대선 과정을 거치며 빛을 잃은 상태다. 차기 대권을 위해서는 중도·보수로의 외연확대가 절실한 입장이다. 본인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통합의 종착지가 결국 자유한국당을 포함하는 보수대연합이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렇게 본다면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안 대표의 원대한 구상을 위한 첫 관문이자 디딤돌이 된다.

물론 모든 것이 생각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통합개혁신당을 창당시켜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 양당체제를 견제하고, 나아가 중도·보수진영을 아우르는 보수의 적자가 되겠다는 안 대표의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분당이 기정사실이 된 이상 통합의 의미는 희석될 수밖에 없다. 통합의 '역설'이 발생하면서 의석수 급감도 피할 수 없다. '동서화합'의 명분 역시 반감된다. 호남지역 의원들이 이탈할 경우 지역기반이 급속히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통합의 파트너인 바른정당과는 외교안보와 대북관 등 정체성과 노선, 철학의 차이가 상존한다. 넘어야 할 산이 즐비한 것이다.

그러나 안 대표를 더욱 난감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통합개혁신당을 대표하는 인물로 유 대표가 적합하다는 여론이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월간중앙이 지난해 12월 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한다면 누가 통합정당의 대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34.4%가 유 대표를 선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안 대표는 17.4%를 얻는데 그쳤다. 국민의당 싱크탱크인 국민정책연구원이 11월 18~19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현재 야권을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26.2%가 유 대표를, 14.5%가 안 대표를 선택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는 야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안 대표의 위상과 지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준거다. 흥미로운 것은 당의 규모나 조직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국민의당이 바른정당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차례에 걸친 의원들의 집단 탈당으로 당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건 다름아닌 바른정당이었다. 그러나 통합과정에서 감지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통합의 주도권은 오히려 바른정당이 쥐고 있는 모양새다.

상식대로라면 통합에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 건 바른정당, 그 중에서도 유 대표다. 그러나 정작 몸이 더 달아있는 건 안 대표처럼 보인다. 당이 분당 위기에 쌓여있는데도 통합을 향한 행보에 멈춤이 없다.  그러나 여론은 통합개혁신당을 대표하는 인물로 정작 유 대표를 꼽고 있다. 아이러니다. 쏟아지는 비난과 분당의 아픔을 감수하고 통합을 완성한다 해도 결국 보수 적자의 자리를 놓고 유 대표와 다시 한번 진검승부를 펼쳐야 한다. 안 대표의 진짜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기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 오마이뉴스


미래가 불투명하기는 통합 반대파 역시 마찬가지다. 창당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반대파는 24일 당명을 '민주평화당'(민평당)으로 결정했다. 1987년 창당됐던 '평화민주당'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에서 DJ의 유지를 계승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25일 민평당 창당추진위원회는 전남 목포해양대학교에서 창당 결의대회를 열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안 대표가 통합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창준위는 오는 28일 창당 발기인대회에 이어 다음달 6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공식 창당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민평당 창당 결의대회는 안 대표를 비난하는 성토의 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조배숙·박지원·정동영·천정배 의원 등은  안 대표를 거세게 비난하는 한편, DJ 정신을 강조하며 지역민심 다지기에 나섰다. 

현재 민평당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진 의원들은 대략 17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의원은 25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민평당 규모에 대해 "지금 현재는 비례대표를 포함해서 17~18명이다. 잘하면 20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평당과 행보를 맞추고 있는 이상돈·박주현·장정숙 의원 등이 비례대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15명 가량이라는 얘기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자신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여기에 박주선·주승용·김동철·황주홍·이용호 의원 등 중재파 5명이 민평당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사실상 힘들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민평당의 동력이 급속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민평당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한계에 있다.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삼고있는 이상 민평당은 민주당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민심이 완전히 돌아섰다. 현재 호남민심은 민주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태다. 안 대표가 외연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이면에는 호남민심의 여파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조직과 세력 면에서 현저하게 열세인 민평당이 지방선거에서 민심을 업고 있는 민주당과 경쟁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방선거 이후를 생각하면 상황은 더욱 암울해진다. 일각에서는 민평당이 결국 민주당에 흡수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당은 낡고 무능한 양당체제를 종식시키고,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합리적 개혁 노선을 지향하는 국민 정당이 되겠다며 지난 2016년 2월 창당했다. 야권분열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은 19대 총선 당시 호남지역을 석권하며 원내 3당의 지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총선 리베이트 사건, 대선 제보조작 사건 등 크고 작은 파문에 휩싸이며 추락을 거듭했다. 시대흐름과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데다, 창당 주역인 안 대표와 당 중진들 간의 철학과 노선 차이 등으로 당심을 하나로 규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창당한지 2년 만에 분당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안타까운 것은 결별이 확실시되고 있는 안 대표와 민평당의 앞날이 살펴본 것처럼 그리 밝지 않다는 사실이다. 두 세력 모두 창당을 통해 새로운 방향 모색에 나서고 있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안 대표는 유 대표를, 민평당은 민주당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한다. 과거의 영화를 뒤로 한 채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는 안 대표와 민평당. 둘 중 과연 누가 살아남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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