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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헌 타령하는 정치권, 개헌만이 능사가 아니다

ⓒ 오마이뉴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정치권의 대선시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조기 대선과 관련해 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는 '개헌'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다시 한 번 확인된 만큼 수명이 다한 87년 체제를 끝내고 새로운 헌법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29일 국회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구성결의안을 재석의원 219명 가운데 찬성 217명, 기권 2명으로 압도적으로 가결시켰다. 개헌특위는 결의안에서 "1987년 제9차 개정된 현행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신장시키고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타파해 민주주의 발전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지난 30여 년간 국내외의 정치·경제·사회적 환경이 급변해 기존 헌법 체제 하에서 개별 법률의 개정이나 제도의 보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의안에는 개헌이 단순히 권력구조 개편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선거제도, 지방분권, 검찰 개혁, 재벌 개혁, 경제구조 개편 등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개혁과 시스템 재편을 목표로 헌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개헌이 사회 제반 문제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의견 수렴의 과정을 거쳐 추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추진되고 있는 개헌 논의가 결의안에 나타난 취지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치세력의 개헌 논의가 그야말로 '백가쟁명'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현재 개헌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정치세력은 거의 없다. 문재인, 박원순, 반기문, 안철수, 안희정, 유승민, 이재명(가나다 순) 등 유력 대선주자들은 물론 여야 정치권 모두 개헌의 당위를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시기와 방법으로 들어가면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정략적 이해관계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탓이다. 당장 개헌의 시기부터가 문제다. 대선 전에 해야 한다는 입장과 대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입장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대선 전 개헌은 새누리당 친박계, 국민의당, 개혁보수신당, 더불어민주당내 개헌파인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비문재인계,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등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개헌은 빠를수록 좋다며 대선 전 개헌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일 열린 개헌특위 첫날 친문재인계 위원들을 제외한 여야 위원 대부분이 대선 전 개헌을 주장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반면 대부분의 대권주자들과 민주당 주류 등은 대선 이후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대선 전 개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개헌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후 대선 이후에 추진하자는 것이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2018년 지방선거 때 개헌안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입장이며, 박원순 서울시장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 개헌을 추진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대권후보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시기상 대선 전이 불가능하다면 차기 정권의 집권 초기에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개혁보수신당의 유승민 의원은 대선 전 개헌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각 정당과 정파, 대선주자들의 이해타산에 따라 개헌의 시기는 이처럼 크게 엇갈리고 있다. 문제는 개헌 논의가 국민의 기본권, 선거제도, 지방분권, 개혁 의제 등 충분한 논의와 검토 없이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된 채 졸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개헌 문제가 정치세력 간의 견제와 공격의 수단으로 정략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국민의당의 경우가 그 비근한 예다. 국민의당은 6일 문 전 대표의 2018년 개헌 주장에 맹비난을 쏟아냈다. 문 전 대표의 주장이 개헌을 저지하기 위한 꼼수일 뿐이며, 이는 개헌을 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8년 개헌안은 안철수 전 대표의 주장이면서 동시에 국민의당이 지난해 12월23일 채택한 당론과 크게 차이가 없다. 당시 국민의당은 즉시 개헌을 추진하되 조기 대선으로 대선 전 개헌이 어렵다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한다고 당론을 정한 바 있다.


대선 전 개헌 불가론은 국민의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주장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10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해 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서 개헌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불과 두 달만에 즉각 개헌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뒤바꼈다. 탄핵정국이 조성되고 조기 대선이 유력해지자 대선 전략을 황급히 수정한 것이다. 박 대통령 탄핵 이후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개헌 논의가 정치세력의 당리당략으로 흐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율 하락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국민의당과 당내 뚜렷한 대권주자가 없는 개혁보수신당은 귀국을 앞둔 반 전 총장을 향해 러브콜을 보내기에 여념이 없다. 반 전 총장과 여러 대선주자들을 제3지대에서 묶자는 소위 '빅텐트론'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현 정국은 정권교체를 못하는 한이 있어도 '문재인'과는  절대로 손잡을 수 없다는 국민의당, 신당 창당 이후 이슈를 선점해야 하는 개혁보수신당, 여러 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을 꿈꾸고 있는 제3세력 등이 개헌을 두고 서로 복잡하게 맞물려 있는 모양새다. 개헌이 이 이질적인 세력들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고리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개헌의 필요성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대선 전 개헌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서 뜨겁게 제기되고 있는 즉시 개헌 주장은  '어떻게'라는 방법론에 직면하는 순간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개헌의 시기와 방법 등 논의와 합의해야 할 내용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시쳇말로 답이 없기 때문이다. 시기상 개헌의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도출해 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2017년 대한민국은 격동기나 다름이 없다. 촛불에 담긴 시대정신인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정당이나 정파, 특정 대선후보의 이해관계를 초월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개헌의 흐름은 이와는 정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개헌이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의 도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헌의 본래 취지가 사라진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정략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신경써야 할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선거연령 조정, 투표시간 연장, 결선투표제 도입 등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 주권자인 시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제도화가 필요하다. 특히 차기 대선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적폐를 바로잡아야 할 대표자를 선출하는 막중한 선거다. 따라서 대통령 당선자의 대표성 강화를 위해 '결선투표제'의 도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개헌만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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