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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강성노조가 문제라는 홍준표의 헛발질

ⓒ 오마이뉴스


보수우파 시장주의자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적대적 노동관과 편향된 노동 정책, 그리고 특유의 톡톡 튀는 언행을 앞세워 보수세력을 결집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각계각층의 거센 비난 속에서도 출구를 찾는 이가 바로 홍 후보다. 그런 면에서 진주의료원 사태는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는 홍 후보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비근한 예다.

보궐선거를 통해 지난 2012년 12월19일 경남도지사에 당선된 홍 후보는 취임 이후 공공재인 진주의료원을 폐업시키기로 결심한다. 뼈속까지 시장주의자인 그에게 진주의료원의 적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는 해가 바뀌자 마자 경남도의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진주의료원을 폐업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소식이 알려지자 홍 후보를 향한 비난이 속출했다. 특히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진주의료원 폐업이 '공공의료 죽이기'이자 의료민영화를 위한 멍석깔기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자 홍 후보는 진주의료원이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이유가 과다한 인건비 때문이며, 그 중심에 '강성 노조'가 있다고 판을 흔들었다. 

졸지에 진주의료원 노조는 강성 노조, 만성적자를 유발시키는 주범으로 둔갑했다. 그러나 홍 후보의 주장은 이내 사실관계를 왜곡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2013년 4월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는 이같은 각계의 비판에 힘을 실어준다. 당시 복지부는 '시 외곽 이전에 따른 환자 접근성 악화로 환자(특히 외래환자) 수가 감소한 것이 경영악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의료 수익 자체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율이 높은 것이지 임금 자체가 높은 것은 아니다'라는 견해도 제시했다. 이는 진주의료원의 만성적자가 과다한 인건비 지출 때문이라는 홍 후보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제 밥 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것처럼 진주의료원 노조를 묘사했던 홍 후보의 주장도 사실과는 많이 달랐다. 당시 진주의료원 노조의 임금은 다른 지방의료원 대비 80% 수준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재정상태를 우려해 6년 동안 임금을 동결해오던 상태였다. 또한 노조는 자발적으로 65명의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등 의료원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럼에도 홍 후보는 자신이 공공의료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강성 노조와 싸우는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 대결의 승자가 누구였는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홍 후보는 공공의료시설을 시장의 논리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압도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강성 노조 프레임'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진주의료원의 폐업을 관철시켰다.


승리의 달콤함을 잊지 못했던 것일까. 홍 후보의 입에서 또 다시 '강성 노조'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불과 며칠 전 "해고됐다가 다시 들어오고 이렇게 유연성을 확보해줘야 비정규직이 없어진다"는 획기적인 비정규직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했던 홍 후보가 이번에는 강성 노조를 문제삼고 나선 것이다. 대기업의 강성 귀족노조가 기업을 해외로 내몰고 청년실업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 그 얼개다.

홍 후보는 1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CEO 혁신포럼'에 참석해 "근로자의 3%도 되지 않는 일부 민주노총 노조 때문에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소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이 해외로 나가기 때문에 협력업체인 중소기업도 따라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대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강성 귀족노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 고용노동부


홍 후보가 '강성 노조' 발언을 한 저의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보수언론과 재계가 주장해온 '강성 노조 프레임'으로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노-노 갈등'을 부추겨 반사이득을 보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에게 연일 색깔론 공세를 펴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장면은 진주의료원 사태의 데자뷰다. 홍 후보가 우리나라의 노동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장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관계를 크게 왜곡하고 있는 것도 아주 흡사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2015년 기준으로 10.2%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평균인 27.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29개 회원국 가운데 4번째로 낮은 수치다.

노조 조직률이 낮다는 것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권리 밖에 있다는 뜻이며, 복지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의미다. 아울러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정치·사회적 권리가 그만큼 취약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노조 조직률이 높을수록 노동자의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사실이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의 박형준 연구위원이 지난 2014년 12월 발표한 '한국 사회경제체제의 역사적 경로 변경을 위한 좌표 설정' 보고서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이 높을수록 경제적 불평등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의 연구결과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2015년 9월2일 <뉴스타파>는 노조 조직률이 높아질수록 중산층이 증가해 빈부격차가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의 연구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이 하락할 때 상승한 것은 상위 10%의 소득이었다. 이같은 연구 결과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가장 큰 이유가 강성 귀족노조 때문이라는 홍 후보의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르다. <한겨레>가 수출입은행의 '2015년 해외직접투자 동향'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이 투자잔액이 100만달러를 넘는 현지법인 6천개를 대상으로 투자목적을 조사한 결과, '현지시장 진출' 2797개(46.4%), '수출촉진' 1403개(23.3%), '저임금 활용' 818개(13.6%)의 순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결과는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이유가 강성 귀족노조 때문이 아니라, 현지 내수시장 진출이 주목적임을  말해준다.

기업의 국내 투자 회피가 강성 노조 때문이라는 주장 역시 700조가 넘는 막대한 사내보유금을 쌓아두고 있는 현실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종합해보면 강성 귀족노조가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는 홍 후보의 주장은 우리나라의 척박한 노동현실을 왜곡하는, 비겁하고 저열한 논리라는 것이 드러난다. 재벌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시키고,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을 초래한 책임을 노조에 전가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 나라를 다녀보니 노조가 없거나 금지한 나라도 많다. 그런 곳에서 가혹한 착취가 일어나도 노동자들은 늘 산재를 당하고 보호받지 못한다. 내 가족을 위해 복지안전망을 책임지는 좋은 일자리를 찾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

노동절이었던 지난 2015년 9월9일 미국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가 자국 노동자들을 향해 던진 메시지 중 일부다. 한 사람은 노조를 기업 성장을 방해하고 국가경제를 좀먹는 주범이라 규정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과 규제완화 정책을 비판하면서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 극명한 대비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어쩌면 '강성 노조'보다 큰 문제는 '강성 정치인'인지도 모른다.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서민보다 재벌과 기득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특권은 마음껏 누리면서 악의적인 흑색선전과 색깔론으로 끊임 없이 정치불신과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정치인들 말이다. 그들이야말로 국민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시민의 정치 참여를 가로 막아, 궁극적으로 대의민주주의제도의 근본 취지를 망가뜨리는 주역들이 아닌가. 명색이 대권에 도전하려는 정치인이라면 최소한의 염치와 정직성은 갖추고 있었으면 한다. 대통령은 그리 허튼 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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