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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MBC노조, 그들은 왜 다시 총파업에 나서야 했나!

오마이뉴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노조)의 9월 총파업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오는 24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총파업 찬반투표를 앞두고 MBC는 폭풍전야와도 같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MBC노조는 이미 총파업 수순에 돌입한 모양새다. 지난 17일 편성PD 30여명이 총파업 동참 결의를 내비친 데 이어, 18일 드라마PD 50여명, 21일 MBC 예능PD 56명이 총파업 대열에 동참했다. MBC 아나운서 27명과 기자 146명, 시사제작국 기자와 PD 30명 등 300여명은 이미 방송 제작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노조원 대부분이 파업에 찬성하고 있어 MBC노조가 총파업에 나설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MBC노조가 지난 2012년에 이어 5년 만에 총파업 카드를 꺼내든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다. 김재철·김종국·안광한·김장겸 사장 7년 동안 MBC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7년은 한 조직의 체계와 시스템을 경영진의 입맛대로 바꿔놓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4명의 사장을 거치는 동안 공영방송 MBC의 방송 공정성은 처참하게 무너져 갔다. 뉴스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바닥에 떨어졌고, 한때 국민 신뢰도 1위를 달리던 방송사는 '정권의 혓바닥'이라는 치욕스런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해치는 MBC 경영진의 전횡은 일일히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정권에 유리한 편파적 방송을 거리낌없이 내보내는가 하면, 정권의 치부와 사회를 고발하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폐지·축소시켰다. 공영방송의 취지에 부합하려 애쓰는 기자와 PD들을 엉뚱한 부서로 전보 조치시키는가 하면,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의 방송 출연을 막기도 했다.

눈 밖에 난 인사들을 콕 찝어 해고시키거나 징계하는 보복성 인사를 남발하기도 했고, 충성도 높은 인사들을 보도국 등 핵심 요직에 배치하는 내부인사로 조직을 경영진의 방침에 맞도록 재편시켰다. 방송의 공정성보다 정권의 심기를 살피기에 더 급급했던 경영진의 노고(?)가 오늘의 MBC를 있게 만든 것이다.

정권 맞춤형 방송을 위한 MBC 경영진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MBC 카메라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난 7일 이 사실을 공개한 MBC노조에 따르면, 문건에는 MBC 카메라 기자들의 정치적 성향, 파업 가담 여부, 노조와의 관계, 사측에 대한 충성도 등 아주 세세한 정보들이 담겨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MBC노조는 경영진이 이 문건을 인사 평가와 승진에 활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 의혹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MBC가 김재철 사장 이후 부당한 해고와 징계, 인사 조치를 무수히 감행해왔다는 점에서 파문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해당 문건이 작성된 시점이 김장겸 현 MBC 사장이 보도국장으로 부임한 직후인 지난 2013년 7월 6일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파업 주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이 일어나던 시점에 작성된 해당 문건은 MBC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MBC노조는 2012년 파업 이후 기자들이 받았던 부당 징계와 인사 발령이 문건의 내용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해당 문건이 기자들의 인사에 활용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2년 총파업 이후 MBC에 불어닥친 해직과 징계의 정황이 담겨있다는 측면에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유린하는 반헌법적·반민주적 행태가 다름 아닌 언론계에서 불거졌다는 점에서 블랙리스트 의혹은 망가질대로 망가진  MBC의 민낯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방증이라 할 터다.


ⓒ 오마이뉴스


"지난 5년간 11명의 선배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회사를 쫓기듯 떠났고 11명의 선배들이 마이크를 빼앗기고 마지막으로 제 하나밖에 없는 동기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슬픔을 넘어 자괴감과 무력감·패배감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남아있는 아나운서들도 마찬가지 마음이었습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우리가 돌아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된다는 선배들 말씀대로, 자리를 지키고 실력을 키우고 회사가 나아지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전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무실의 빈자리는 더 많아졌고 우리의 상처는 더 깊어졌습니다. 뉴스를 진행하는 동료 아나운서들은 늘 불안했고 마음을 졸였습니다. 뉴스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확신을 가지고 사실을 전해야 하는데 방향이 정해져있는 수정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앵커멘트를 읽어야 했습니다."

이재은 MBC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달리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눈가에선 연신 눈물이 흘러내렸고, 감정이 복받친 듯 한동안 말문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22일 오전 MBC 아나운서 27명이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 섰다. 방송출연과 업무거부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는 기자회견 자리, 검은 옷을 차려입고 MBC 사옥 앞에 선 그들의 표정은 엄숙했고 비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이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는지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꺼내들었다.

저마다의 사연들이 있을 테지만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하나였다. 아나운서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는 것. 시키는 대로, 써준 대로 멘트를 전하는 영혼없는 꼭두각시가 되지는 않겠다는 것. 가슴이 먹먹해진다. 상식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나선 이들이 어디 아나운서들 뿐이랴. 총파업 대열에 합류하려는 PD와 기자 역시 같은 심정일 터다. PD로서, 기자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분연히 일어서려는 것이다.


지난 2012년 총파업 이후 MBC에 휘몰아닥친 혹독한 시련을 저들이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동료들의 전철을 이번에는 어쩌면 자신들이 밟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저들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려 하고 있다. 저들이라고 어찌 두려움과 불안감이 없을까. 그렇기 때문에 더 빛이 난다. 상식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밥그릇'을 잠시 내려놓은 저들의 결기는 말로 형용하기 힘든 묵직한 감동을 안겨준다.

총파업을 앞둔 MBC노조의 결연한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지난 2012년 총파업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한 의지가 선한 까닭은 그것이 어떤 효과나 결과를 낳아서가 아니다. 비록 이 의지가 원래 의도를 널리 퍼트릴 힘이 부족하다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를 얻을 수 없다 해도 그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임마뉴엘 칸트)라는 말도 있다. 저들의 자존심이 이번에는 꼭 지켜지기를 희망한다. 인간에게는 '빵'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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