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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4대강에 국민혈세를 또 투입한다고?

전국이 사상 최악의 가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겨울부터 이어진 극심한 가뭄으로 논과 밭이 쩍쩍 갈라지고 농작물은 하루가 다르게 타들어 간다. 급기야 수도권 최대 상수원이자 젖줄인 북한강 상류의 소양감댐마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댐 준공 이후 40년이 넘도록 물에 잠겨 있던 수몰지역의 매차나무가 모습을 드러낼 정도이니 이번 가뭄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1일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를 찾았다. 가뭄으로 타들어 가고 있는 논에 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박 대통령은 비상급수 차량에 연결된 소방호스를 들고 메마른 논바닥을 향해 시원하게 물을 뿌렸다. 그런데 이 장면이 온라인에서 때아닌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박 대통령이 소방호스를 들고 논에 물을 뿌리는 방향이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처럼 물을 뿌리게 되면 소방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수압으로 인해 논바닥이 패이고 벼가 뽑혀 나가기 십상이다. 다행히 물을 뿌렸던 장소의 벼들이 대부분 이미 말라 죽어 있던 장소였기에 망정이지 농민들이 봤다면 아연실색할 순간이었다. 


이날 박 대통령은 현장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잠깐 동안의 물주기를 마치고 대통령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현장에 있던 경찰 살수차와 군용차, 소방차 등도 덩달아 함께 사라졌다.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물을 하사받은 성은에도 불구하고 논바닥은 여전히 갈증에 목이 말라 있었다. 마른 입술에 물기를 살짝 묻힌 수준의 적은 양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가 전국 곳곳에서 치루어질만큼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뭄은 잠깐 동안의 물주기 퍼포먼스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의 주옥같은 명언대로 "온 우주가 도와줄 것"이 아니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최악의 가뭄에 대처하기 위한 정부의 올바른 대책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세계 평균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상시적인 물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바닥을 준설해 '물그릇'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건기에도 강은 물로 가득 찰 수 있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 중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밝힌대로 4대강 사업은 4대강의 하도 정비와 보 건설을 통해 충분한 용수를 확보하려는 측면이 있었다. 또한 하천 정비와 제방 보강을 통해 홍수를 예방하고 4대강 본류의 수질을 2급수 수준으로 개선하며, 나아가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4대강에 설치된 노후된 제방 보강, 토사 퇴적구간 정비, 하천 생태계 복원, 중소규모 댐 및 홍수조절지 건설, 하천 주변 자전거길 조성, 친환경보 건설 등을 통해 4대강과 그 주변을 혁신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그러나 수십조원의 국민혈세가 투입된 4대강 사업의 결과 남은 것은 예쁘게 잘 포장된 자전거길과 16개의 보 안에 갇혀있는 11억7천톤 가량의 물 뿐이다. 


(4대강 사업의 수많은 오류와 허점, 모순은 논외로 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뚝심과 집념으로 가뭄에 유용하게 쓰일 11억7천톤의 용수가 확보되었다는 것은 어찌되었든 반길만한 일이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이 물이 최악의 가뭄으로 타들어 가고 있는 현장에 투입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가 없다. 황당하게도 '물그릇' 안에 있는 물을 끌어다 쓸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확보한 용수를 정작 필요한 시점에 사용할 수 없다면 애써 만든 '물그릇'은 한낱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다는 의미다


국무조정실 4대강조사평가위원회는 지난해 12월 <4대강 사업 조사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들은 보고서를 통해 "4대강 사업이 실시된 (주변) 지역에서는 가뭄이 발생하지 않았고, 4대강 사업으로 확보한 용수를 가뭄에 사용한 실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림의 떡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4대강 사업으로 확보한 용수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세간의 비판에 직면하자 박근혜 정부가 4대강 물을 끌어쓰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계획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하천수 활용 농천용수 공급사업 마스터플랜'으로 명명된 이 계획은 사실 2012년 8월 '4대강 연계 농업용수 확보 마스터플랜'이라는 제목으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던 것을 살짝 비튼 것이다. 임기내 4대강 사업을 완공시키겠다는 사명 하나로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시켰던 이명박 정부는 당시 국민의 거센 비판과 시간 부족으로 임기내  '4대강 연계 농업용수 확보 마스터플랜'을 추진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던 것을 (대운하 사업이 4대강 사업으로 감쪽같이 둔갑한 것과 같이) 박근혜 정부가 슬그머니 이름을 바꿔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천수 활용 농천용수 공급사업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정부는 11개 보에서 20지구, 1만2428 헥타르의 농지를 선택해 '사업 시행 여건이 양호한 지구 3곳'을 바탕으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시범사업을 실시한 후, 2020년에 평가를 거쳐 2021년부터 2029년까지 순차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비는 건설비만으로 총 1조913억원이 책정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사업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의 여부다. 총 1조913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농촌용수 공급사업으로 인해 혜택을 받는 농경지는 전체 물 부족 농경지 42만2296 헥타르 중 1만2428 헥타르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겨우 2.9%에 불과한 수치다.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전체 물 부족 농경지의 단 2.9%만이 혜택을 받는 사업에 건설비로만 무려 1조913억원이 투입된다는 것부터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를 않기 때문이다. 이해가 안되는 것은 또 있다. 그 정도의 대규모 혈세가 투입될 계획이라면 여러가지 경제적 방안들에 대한 비교연구도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은 이 과정이 생략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차후 시설유지 관리 대책과 비용 등에 대한 정확한 자료조차 공개된 바가 없다. 혈세먹는 하마라는 오명 속에 국민적 골치덩이이자 재앙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는 4대강 사업과 마찬가지로 '하천수 활용 농천용수 공급사업 마스터플랜' 역시 총 1조913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건설비와 추가 경비가 투입되는 비효율적 세금낭비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전국의 가뭄문제가 완전히 해소될 것처럼 국민을 기만하며 호도해 왔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이 가뭄해소와는 전혀 별개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증명이 되었다. 어디 이뿐인가. 해마다 여름철이면 거대한 녹조로 4대강이 들끓고 있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고기가 허옇게 배를 뒤집고 생을 마감하고 있다. 2급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더니 수질은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나빠졌고 생태계는 심각한 수준으로 파괴되어 갔다.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민망한 수준이었고, 사업진행과정에서 4대강의 악취보다 더한 부정과 비리가 쌓여만 갔다. 


이쯤되면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책적 실패를 인정하고 미래세대를 위해 보의 해체를 포함한 4대강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거꾸로 행보를 고집하고 있다. 가뭄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또 다시 대규모의 국민혈세를 4대강과 연계해서 투입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연계 농업용수 확보 마스터플랜'은 경제적 타당성이 극히 미미한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을 이어가려는 또 다른 기만책에 불과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1일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를 찾아 가뭄으로 타들어 가고 있는 논에 물을 뿌렸다. 그러나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엉뚱한 곳을 향해 잘못된 방법으로 물을 뿌리며 많은 사람들을 당혹케 만들었다. 벼농사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박 대통령처럼 말라 죽어있는 벼를 향해 그와 같은 방법으로 물을 주지는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4대강 연계 농업용수 확보 마스터플랜'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금 잘못된 처방으로 엉뚱한 곳에 막대한 국민혈세를 투입하려 하고 있다. 막대한 국민혈세를 강바닥에 수장시키는 것은 이명박 정부 하나로 족하다.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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