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28주년, 이 땅의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는가

살다보면 너무나 흔하고 당연해서 그 존재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들이 있다. 무감각하게 삶에 길들여져 버린 익숙함이 망각의 향을 피우는 것이다. 그 향은 스스로 피운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피운 것일 수도 있다. 눈을 감고 한번 잠잠히 생각해 보라. 스스로에게 소중한 것들이 무엇이 있었는지, 익숙함 때문에 잠시 잊고 지냈던 혹은 잃어버렸던 가치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당신의 내면 속으로 조용히 침잠해 보라. 

 

눈을 지긋이 감고 침묵 속에 머물다 보면 자연스레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물, 공기, 햇빛 같은 것들로부터 가족, 친구, 연인, 은사, 지인 등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할 것이고,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받은 물건이나 과거의 기억들과 추억들이 생각날 수도 있다. 어떠한가? 어둠 속에서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 중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것들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들은 당신이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가치있는 것들이다. 소중한 것들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그것들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스스로 잃어버렸든,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빼앗겼든 상관없이 말이다. 

 

■ 그날 그 사람들은 왜 그곳에 있었을까?

 

아주 오래 전 그 날 사람들이 있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모여 있었다. 그 날, 그 곳에는 한 목소리로 한 곳을 향해 나아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애타게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었고, 또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찾고 있었다.  1987년 6월 대한민국은 뜨거운 용광로와도 같았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거리로 밀려들었고, 그 곳에서 그들은 목이 터져라 한 목소리로 '독재타도'와 '호헌철폐'를 외쳤다. 박정희 독재 19년과 전두환 독재 7년 합해 무려 26년 간이나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억눌려 있었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목마름이, 참고 참아왔던 염원이 마침내 터져나왔던 것이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졌던 그 기간은 자유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군부독재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탄압받던 시절이었다. 정권을 비판하고, 대통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정말 그랬다. 그 시절은 그렇게 암울하고 무서운, 서슬 퍼런 시절이었다. 

 

■ 막을 수 없었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

 

그러나 군사독재정권의 억압과 탄압이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꺾지는 못했다. 1987년 2월에 발생한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4·13 호헌조치'는 참고 있던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고, 6월 9일 이한열 열사가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자 국민들이 마침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1987년 6·10 민주화 항쟁의 시작이다. 전국적으로 20여일 가량 무려 50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독재정권 타도'와 '호헌철폐', 그리고 '대통령 직선제'를 외치며 거리에서 군사독재세력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그 결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제반 민주화 조치 시행'을 약속하는 역사적인 '6·29 선언'을 이끌어 내게 되었다. 이제 1987년 6월의 뜨거움으로 이 땅에 참다운 민주주의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6월 항쟁 이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이 땅은 민주주의의 뿌리가 더욱 견고해지고 단단해져 왔다. 

 

■ 민주주의 시계를 과거로 돌려버린 그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 목숨값으로 일구어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다시 권위주의 시절의 그때로 회귀되는 데는 불과 몇 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단단하고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는 생각보다 허약했고 아주 부실했다. 민주주의가 주는 달콤한 열매를 따먹는 데에 집착한 나머지 정작 민주주의를 가꾸고 돌보는 데에 소홀했기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부 5년과 박근혜 정부 3년 동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환경이 크게 후퇴했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자유, 그 중에서도 표현의 자유과 집회 결사의 자유가 크게 제약을 받고 있고, 개인의 인권과 평등권은 물론이고 언론 환경도 크게 나빠졌으며 민주주의의 성숙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회·정치적인 지표들 역시 크게 악화되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사회 비판과 함께 건강한 사회 담론을 제시해야 할 언론과 방송은 정권의 나팔수 역할에 충실하고 있고, 공직기강을 확립하고 정치권 및 우리 사회의 부정비리부패를  척결해야 할 검찰은 정치권력과 공생하며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또한 국민의 신변과 안위를 보호해 주어야 할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의 일상을 불법으로 사찰하고,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국민들을 '종북세력'으로 몰아가며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통해 국민분열을 주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5년과 박근혜 정부 3년,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들을 보호하고 확장시켜야 할 정부가 오히려 민주주의의 뿌리와 줄기를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 우리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민주주의의 이상 징후들

 

그 결과 박종철과 이한열, 그리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한 길을 달려왔던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에 균열이 가고 있다. 곳곳에서 이상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베를 중심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민주화'의 의미가 왜곡되어 부정적인 의미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주장 역시 방송에서 서스럼없이 내보내지고 있는 실정이다. 6월 항쟁을 촉발시킨 장본인이며 독재자와 살인마인 전두환을 영웅시하는 사람들도 있고,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박정희 유신독재를 미화 왜곡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보수정부 집권 8년 동안의 결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는 어찌보면 정말 단순하다. 다양한 의견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며 걸러지는 과정을 거쳐 그 안에서 합의점을 찾고 생산적인 고민들을 통해 보다 나은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과 현 박근혜 정부에서는 다양한 의견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책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좌파, 빨갱이, 종북세력'등의 헤묵은 이념 논쟁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이래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부의 국가권력이 어느 곳에 집중되어 있는지를 유심히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1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있지 않은가? 정치권력이 특정 1인에게 집중되게 되면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의 기능들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이같은 흐름이 강압적이고 강제적으로 나타나는 그것이 바로 독재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사실 민주주의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진화한 독재나 다름이 없다. 그 결과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이상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민주주의의 이상징후, 보수정권만 탓할 일도 아니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시절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암흑기였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정권유지와 체제유지를 위해 희생당해 왔다.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바로 그 분들의 희생이 강물처럼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의 가치들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다. 예쁘게 잘 손질된 화단의 꽃이며 나무들은 모두 돌보는 이의 손길과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돌봄이 있어야 하고, 애정이 있어야 하며 끊임없이 관심을 주면서 가꾸어야만 한다. 

 

■ 마음 속 작은 불씨를 소중히 생각하길

 

살다보면 너무나 흔하고 당연해서 그 존재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들이 있다. 무감각하게 삶에 길들여져 버린 익숙함이 무관심이라는 망각의 향을 피우는 것이다. 그 망각의 향에 취해 잊고 있던 것들 속에, 잃어버렸던 것들 속에 혹시 민주주의에 대한 목마름과 갈증의 작은 흔적이라도 발견하거든 고이고이 가슴 한켠에 간직하기를 바란다. 그 작디 작은 것이 어쩌면 이 땅의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확장시키는 불씨가 될지도 모른다. 박종철과 이한열이 불을 지핀 1987년 6월 항쟁도 결국 그 작은 불씨 하나가 동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일은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난지 28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땅에 참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전기를 마련했던 선배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민주주의의 의미와 소중함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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