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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1974년의 닉슨과 2016년의 박근혜

ⓒ 오마이뉴스


20세기 최고의 정치스캔들로 기억되는 워터게이트 사건. 1972년 대선을 앞두고 닉슨 진영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닉슨은 결국 물러나게 된다. 닉슨의 사퇴는 상대 진영에 대한 불법도청이 발단이 되었지만 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닉슨은 재선에 성공한 이후 이 사건을 은폐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밥먹듯이 했고 이 과정에서 국가기관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수사를 방해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닉슨은 워싱턴 포스트가 이 사건의 내막을 잘 알고 있던 제보자 "깊은 목구멍"(deep throat)의 제보를 바탕으로 관련 사실을 부각시키고, FBI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사건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CIA를 활용하는 방안을 알아보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뿐만 아니라 닉슨은 법무장관에게 특별검사를 해고하라고 압력을 넣는가 하면 이 사건과 관련해 참모들과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이 담겨있던 녹취록 중 일부를 삭제하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닉슨은 끝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처음에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사건과 관련되어 기소된 인물들이 범행사실을 자백하자 이번에는 자신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된 일이라며 개인적 일탈로 치부해 버렸다. 기자회견에서 "I am not a crook"(나는 사기꾼이 아니오)이라 외치던 닉슨은 그러나 실체적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변명과 거짓말을 일삼았던 사실이 들통나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물러나게 된다.

40여년 전 미국을 강타한 워터게이트 사건이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시국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던 닉슨의 모습에서 최순실씨 국정농단 파문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탓이다. 단순히 두 사람의 궁색한 처지만 비슷한 것이 아니다. 두 사건의 진행 양상도 기막히게 닮아 있다. 진실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국가기관까지 동원했던 닉슨처럼 박 대통령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4 12 7일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지도부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의 오찬 자리에서 소위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그 찌라시에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보다 앞서 12 1일에는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가문란 행위"라고까지 성토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발언은 최순실씨 국정농단으로 인해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찌라시는 사실이었고 대통령은 연설문을 비롯해
 은밀한 국가기밀까지 최순실씨와 공유하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해 최순실씨의 이름이 한창 거론되던 지난 9 2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비상 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언론에서 제기하는 의혹들에 강력한 방어막을 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거짓이었다. 말과는 다르게 박 대통령은 세간에서 제기되는 의혹을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거짓말을 동원해 실체적 진실을 덮으려고만 했다.

지난달 25일 있었던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내용 역시 거짓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연설문과 홍보물에 한해서 일정 기간 동안만 최순실씨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최순실씨는 청와대 인사를 포함한 국정 전반에 걸쳐 개입하고 있었고, 기간 역시 대통령의 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당시 대국민 담화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해명을 하는 순간에서조차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했고 우롱했다.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 보다는 갖은 거짓말을 동원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감추려 했다는 점에서 닉슨과 박 대통령은 큰 차이가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던 닉슨은 거듭되는 의혹제기에 변명과 거짓말로 책임을 모면하려 애를 썼고, 이 과정에서 국가기관까지 동원해 진실을 은폐하고 수사를 방해하며 민주주의 제도와 국가 시스템을 유린했다


박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권력유지를 위해 검·경 등 국가기관의 도움을 받아 온 정황들은 국정원 사건세월호 참사 등을 비롯해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벅찰 지경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호도했던 사례들도 부지기수다. 이번 사건에서도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비호하기 위해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내쳤고, 지난 4일 두번째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서는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이 모두는 국민이 위임한 국가권력을 박 대통령이 철저하게 사유화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번 사건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까. 마찬가지로 워터게이트 사건이 참고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1974년 당시 미 의회와 대법원, FBI, 언론 등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한 몸으로 움직였다. 시민들 역시 집권자의 거짓말과 권력남용에 끝까지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결국 닉슨은 시민들의 하야 여론과 국회의 탄핵의지가 확고해지자 미련없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지난 주말 박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30만개의 촛불이 전국에서 일제히 타올랐다. 오는 12일 예정된 민중총궐기대회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촛불이 켜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권도 분주해졌다. 국기문란 사건의 몸통인 대통령의 2선 후퇴는 물론이고 정권 퇴진 움직임도 분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일주일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시민권은 전적으로 그를 지키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열망과 의지, 행동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제 2의 시민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거침없이 추락하고 있는 건 비단 박 대통령 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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