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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10.26'은 누구를 추모하는 날인가

ⓒ 동아일보

 

박정희 서거 40주기였던 10월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추도식. 익숙한 면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딸 박근령 전 육영재단이사장과 신동욱 공화당 총재, 정홍원 전 국무총리,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김진태·김현아·전희경·이헌승·정태옥 등 한국당 의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이언주 무소속 의원, 조원진·홍문종 우리공화당 대표 등등.

박정희를 추모하는 조문객들로 식장은 식전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추도식이 시작되면서 박정희 찬가와 함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성토가 쏟아져 나왔다.

추도위원장인 정재호 민족중흥회 회장은 개식사에서 "산업화는 영락없는 박정희 대통령의 대명사다"라고 했고, 김문수는 "반공을 국시의 첫번째로 삼으셨던 당신이 떠나신 후 40년 세월 동안 민주화가 도를 넘어 지금 대한민국은 종북 주사파가 집권했다"며 "대한민국은 적화통일의 위기에 처했다. 빨갱이 기생충들이 한강의 기적을 허물어트리고 있다"고 핏대를 세웠다.

수구의 여전사가 되기로 작정한 이언주도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위대한 혁신가로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듯, 이제 우리는 새로운 도약을 통해서 분열과 체제 혼란의 87체제를 중단하고 시대교체를 이뤄야 할 것"이라고 한 몫 거들었다.

황교안 역시 추도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박정희 대통령께서 어려웠던 대한민국의 경제를 되살리고 산업화를 이룩하는 큰 업적을 남겼다"며 "어떻게 어려운 대한민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는가에 대한 리더십을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대통령의 경제 리더십은 본받을 것이 많다"고 한껏 추켜세웠다.

박정희가 죽은지 40년, 보는 것처럼 이 나라는 그를 추모하고 기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넘쳐난다.

18대 대선이 한창이던 2012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이날 이곳에서는 '유신 40년 박정희 정권 희생자 추모제'가 열렸다.

행사를 주최한 민주행동은 "박정희 정권하에서 관제 빨갱이로 몰려 말 못할 고문을 당하고 긴 세월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들이 셀 수 없이 많으며, 개발독재의 피해자로 자신과 가족이 파탄을 맞은 사례들도 일일이 거명하기 힘들 정도"라고 토로했다.

7년이 지난 2019년, 그와 비슷한 행사가 열렸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고 해서 박정희 유신독재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아픔이, 상처가,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 서거를 추모하는 한편에서 누군가는 아파하고 또 아파하리라.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전혀 다른 기억을 가슴에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독재자 박정희를 두고 펼쳐지는 아이러니한 진풍경이다.

상처의 치유는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로 잡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박정희 유신독재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는 절대로 아물지 않는다.

그러나 박정희를 찬양하는 이들은 그 과정은 철저히 생략한 채 통합을, 미래를 이야기 한다. 박정희의 과는 말하지 않고 무용담 이야기하듯 공만 이야기한다. (공을 인정한다 해도) 박정희의 삶이 반쪽짜리요, 왜곡되고 미화된 가짜인 이유다.

일본군 장교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서던 '황군' 다카키 마사오와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살했던 독재자 박정희는 동일인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다카키 마사오가 아닌 가난을 벗어나게 해준 구국의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지독한 이율배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렇게 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민주정부 10년을 제외하면 수구세력이 집권한 기간만 무려 50년이 넘는다. 50년은 한 사람을 신의 반열로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본군 장교였던 다카키 마사오,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서슬 퍼런 독재자였던 박정희는 그렇게 '반신반인'이 됐다.

산 자들이 죽은 자를 찬양한다. 끊임없이 죽은 자를 소환하고 일그러진 과거를 신화의 세계로 미화하고 치장한다. 죽은 자를 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건 살아있는 자들의 욕망이다. 죽은 자는 두렵지 않다. 진짜 무서운 건 산 자들의 맹종과 비루한 욕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