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질과 함께 하마터면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 했다. 386세대로서 전두환 신군부의 서슬퍼런 독재를 몸소 체험했을 그의 입에서 박정희 독재를 옹호하며 "잘 살수만 있다면 왕정도 상관없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정말 그럴 뻔 했다. 


걸그룹 '시크릿' 멤버 전효성 양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며 천연덕스럽게 '민주화'의 의미를 하수구에 내동댕이 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효성 양의 경우 사물과 현상에 대해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효성 양이 '민주화'란 단어의 의미를 '몰랐거나' 적어도 '잘못 알고' 사용해서 생긴 해프닝으로, 표현 자체를 문제삼을 수 있을 지는 몰라도 효성 양에게 돌팔매를 던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런 불량스런 환경을 만들어 낸 기성세대의 책임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함익병 원장의 인식과 발언은 효성 양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이다. 그는 기성세대의 한 축일 뿐만 아니라 '민주화' '민주주의의 확립'이라는 시대적 사명과 당위가 넘쳐 흐르던 1980년 대 전두환 신군부 시절을 살았던 386세대다. 그렇기에 '이한열'과 '박종철'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발언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 온다. 시대적 소명과 당위라는 절대명제가 잘못된 가치관과 주류 페러다임에 빠져있는 한 개인에게 철저히 굴욕당하는 순간이다. 


월간조선과의 인터뷰 내용 하나 하나를 정조준하여 그의 인식을 재단하는 것은 불필요하게만 느껴진다. 파워 글루로 단단하게 부착되어진 그의 관념이 깨질 리도 없거니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공인으로서의 인식과 발언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저급하고 조악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재를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기만하는 그의 천박한 인식과 태도는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그의 인식과 태도 속에서 이 땅의 '민주화'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던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의 의미가 조롱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2년 생으로 1986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처절했던 '민주화투쟁'의 한복판을 거쳐오며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을 체험한 산 증인이나 다름없다. 그가 이 치열했던 '민주화투쟁'의 과정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와 상관없이 그가 친구이자 동료들인 386세대가 주축이 되어 극적으로 이루어낸 '민주화'의 수혜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쩌면 그는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무임승차자일 지도 모른다.) 


1980년 대의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육체적 정신적 상흔을 입었다. 그가 옹호했던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에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독재자 박정희의 장기집권과 권력유지를 위해서였다. 그 당시는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법에 의지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정권의 눈 밖에 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갔고 반병신이 되어서 나오거나 영영 돌아오지 못하기도 했다. 야만적인 국가폭력이 국민 개개인의 삶을 치유할 수 없는 상태의 만신창이로 만들었던 무자비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박정희 독재시절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쯤되면 오히려 "독재시절이 왜 나쁜거냐"고  되묻는 이 사내가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피부과 의사라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사회구성원들에게 흔하디 흔한 일상의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당연하다. 그러나 이 당연함이 지난 수십년 동안 독재권력에 맞서 싸워온 결과로 얻어낸 산물임을 우리는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민주주의적 환경을 이 땅에 확립하기 위해 우리의 선배들이, 동료들이, 친구들이 대단히 힘든 싸움을 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그것이 '민주화'의 수혜자로서, 무임승차자로서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면서 도리다. 


그러나 함익병 원장의 발언은 이 땅의 '민주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민주화'의 과정 속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조차 무시한 모욕적 언사다. 그의 발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이유다. 





'민주화'의 숭고한 의미를 시장 바닥에 패대기치며 "독재가 왜 나쁜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는 이 얼치기 의사를 정신차리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어쩌면 독재자 전두환의 전설적 망언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는 아직 감정이 안 좋은가 봐...나한테 당해 보지도 않고"


예나 지금이나 경험은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살찌우는 가장 좋은 교사다. 이 사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의료 행위가 아니라, 방송 출연이 아니라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이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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