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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반도 통일과 사드, 그 살벌한 간극에 대하여

지난 15일 황교안 국무총리는 사드 배치가 확정된 경북 성주를 찾았다가 주민들로부터 계란과 물병 세례를 받는 봉변을 당했다. 황 총리는 이날 주민설명회를 통해 사드의 당위와 안전성 등을 설명하려 했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민들은 격분했고 설명회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하루 아침에 사드 배치라는 날벼락을 맞은 성주 지역주민들의 분노는 황 총리에게 고스란히 표출됐다. 황 총리는 이날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에 둘러싸여 오도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져야만 했고,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격렬한 항의를 6시간이나 받고서야 간신히 지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각 
사드 배치에 따른 국민적 혼란과 갈등을 무의미한 논쟁이자 정쟁이라 일축했던 박 대통령은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참석차 몽골을 방문 중에 있었다. 민심의 역풍에 둘러싸여 곤혹을 치른 황 총리와 그로부터 유유히 벗어나 있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 오마이뉴스


황 총리가 수난을 받은 다음날인 16일 박 대통령은 ASEM 회의에서 유라시아 대륙의 비전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 한반도의 통일이라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유라시아 대륙의 온전한 꿈을 성취하는데 있어 여전히 빠진 고리(missing link)가 있다. 바로 이 곳 몽골에서도 멀지 않은 북한"이라며 "한반도 통일이 가져올 자유와 평화, 번영이 국제사회 전체에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인권문제와 핵개발을 언급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이 한반도의 통일이라고 역설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한반도의 통일이 북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며 궁극적으로 유라시아의 평화와 번영,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표리부동과 이율배반. 박 대통령의 발언을 듣자마자 떠오른 사자성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였다. 남북한의 교류협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통일에 한걸음씩 접근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남북한의 신뢰 형성을 통한 남북관계의 발전, 한반도 평화정착, 통일기반 구축이라는 비전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녹아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철저히 잊혀진 이름이 된지 오래다. 남북관계는 완전히 파탄났고 거듭된 외풍에도 남북을 근근히 이어주던 개성공단은 지난 2월 폐쇄됐다.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 가능성을 내비쳤던 남북화해와 공존을 통한 통일의 꿈은 어느 순간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신뢰와 평화, 통일의 희망 대신 불신과 반목, 대결의 냉전시대가 도래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국정을 운영한지 8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박근혜 정부를 힐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를 회복불능의 파탄 지경으로 만든 책임이 박근혜 정부에게만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이 방어적·자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이를 물리적으로 막을 현실적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적대 정책만을 고집했던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얼마만큼의 실효를 거두었는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 오마이뉴스


남북 경협의 상징이자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였던 개성공단의 폐쇄가 그 비근한 예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개성공단을 폐쇄시킨 정부의 섣부른 결정은 정작 북한보다 우리 기업이 더 큰 피해를 입는 상황을 초래시켰다. 개성공단 폐쇄에 따른 경제 제재 효과가 지극히 미비한 가운데 정작 그에 따른 피해를 우리 기업이 떠안게 되는 촌극이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개성공단 폐쇄에도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계속되는 등 한반도의 안보 리스크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


정부 출범 이후 대북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이 북한을 더욱 고립시키고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통일을 요원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반도의 통일이 유라시아 대륙의 비전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며 북한의 인권과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한없이 실없고 무의미하게 비치는 이유다.

한반도의 통일과 유라시아의 평화와 번영, 미래의 담론을 역설하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대화시키는 사드를 배치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은 표리부동과 이율배반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분단의 장벽만큼이나 박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가로 놓인 괴리의 골이 이처럼 크고도 깊다. 황 총리의 봉변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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