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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패러디의 진수를 보여준 정의당의 삐라 퍼포먼스

오래 전에 유행하던 것들이 다시 인기를 끄는 사회적 현상을 말하는 '복고' 열풍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된 듯 하다. 대중 문화를 선도하는 TV 드라마나 영화, 음악 등은 물론이고 패션과 가구 및 가전 제품 등에서도 수 십년전 유행했던 올드 스타일의 제품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기사를 보니 역시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빈 말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복고가 유행하는 기저에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불안 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의 트렌디 열풍이 1998년 IMF사태 이후 복고 드라마로 회귀한 것도 갑작스런 경제 위기에 따른 불안을 과거의 향수나 추억에서 찾고자 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회적 불안감이 고조되면 대중들은 불확실한 미래가 아닌 선험적 경험으로부터 안정과 위안을 찾으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복고 열풍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지난주 우리 사회는 수 십년전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삐라'로 인해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어야 했다. 탈북자 단체가 살포한 대북전단(삐라)을 향해 북한이 고사총탄을 발포했고, 우리 군도 이에 대응사격을 함으로써 때 아닌 총격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민통선 근처에서 발생한 이 날 총격전으로 인근 주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고, 남북관계는 다시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날 북한으로 삐라를 살포한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탈북자 단체 관계자 30여 명은 경기도 파주시 통일전망대 주차장에 모여 삐라 20만장을 풍선에 매달아 하늘로 날려 보냈다. 그동안 보수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북한으로 삐라를 날리는 모습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따라서 세간의 주목을 끌만한 커다란 이슈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날은 달랐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이 날 행사장에는 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고 터지기 일보직전의 풍선처럼 긴장감과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다. 


남북간의 총격전이 있던 지난 10일은 북한 노동당 창건 69년 기념일이자 탈북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사망한지 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탈북자 단체들은 북한의 신경을 자극하는 민감한 사안을 가장 민감한 날에 결행하는 호기를 부렸다. 이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북한이 아니었다. 그동안 북한은 각종 매체들을 동원해 삐라 살포 원점과 지원세력, 지휘세력 등을 직접 타격하겠다고 수차례에 걸쳐 경고와 위협을 해왔었다. 그리고 공언한 대로 그들은 수 발의 고사총탄을 발사했다. 총구가 삐라 살포 지역과 살포 지원세력 및 지휘세력에게 향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인 아찔한 순간이었다. 


총격전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행사를 무리하게 강행한 탈북자 단체들에 대한 비난과 함께 사전에 이를 인지하고도 이 위험천만한 행위를 묵인한 정부에 대한 성토가 빗발쳤다. 특히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며 탈북자 단체의 삐라 살포를 막을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정부당국의 입장이 알려지자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네티즌들의 비난과 항의가 끊이질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다음 카카오톡과 네이버 밴드에 대한 사이버 검열로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보호 및 인권침해 논란을 자초했던 정부가 탈북자 단체의 삐라 살포 행위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들먹인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불신이 극에 달한 이유를 보여주는 비근한 예다. 일관성도 형평성도 없는 정부의 태도에서 공신력을 발견해 내기란 사막에서 우물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삐뚫어진 이중잣대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가운데 정의당은 어제(16일) 아주 기발하고 재기넘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정의당은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정부의 사이버 사찰을 규탄하는 내용이 담긴 삐라를 노란풍선에 매달아 청와대를 향해 날리는 '대박 삐라 살포' 퍼포먼스를 벌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했던 것처럼 삐라에는 역시 삐라가 제격임을 정의당은 영민하게도 알아차렸다. 정의당의 퍼포먼스는 확실히 탈북자 단체의 그것과는 달라도 아주 달랐다. 경쾌하면서도 아주 유쾌하고 시의적절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탈북자 단체가 날린 삐라는 고사총탄의 표적이 되었지만 정의당이 날린 삐라는 국민들의 호응과 공감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오는 25일에도 삐라를 날려보내겠다고 공언한 보수단체들이 참고하면 좋을 내용이다. 


이 날 행사에 참석한 심상정 원내대표는 퍼포먼스를 마친후 SNS를 통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녀는 "정의당이 개발한 청와대와 소통 방법, 어떠세요? 청와대 벽이 너무 높아 부득이 삐라를 날려 보내니, 박근혜 대통령께서 꼭 읽어보시고 청와대 밖의 민심 살펴보시길..."이라는 소회를 남기며 구중궁궐에 갖혀 민심을 전혀 읽지 못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태를 꼬집었다. 물론 심상정 원내대표의 바램은 희망에 그칠 공산이 크다. 광화문 일대는 비행금지구역으로 묶여있는 탓에 삐라는 30m까지 날아간 뒤 수거되었고, 현재 ASEM 회의 참석차 이탈리아에 머물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퍼포먼스의 내용이 전달될 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정의당의 '대박 삐라 살포' 퍼포먼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의사표현을 통제•감시하기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정부와 국가기관의 권력남용과 기본권 침해의 부당함을 알리는 방법으로서 더할 나위 없기 때문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의 일관성없는 국정운영과 이중성을 비판하기에 이보다 더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도 없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삐라는 검열로부터 자유롭고 감청과도 무관하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사이버 검열에 불안과 위협을 느끼고 있었던 국민들이라면 삐라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려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삐라야 말로 표현의 자유에 있어 정부의 공인을 받은 몇 안되는 의사표현 중 하나가 아닌가. 


이 불안한 시대에 고향에 두고온 동포들 생각에 목숨걸고 삐라를 날린 탈북자 단체와 삐라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영역임을 확인시켜준 정부, 그리고 탈북자 단체와 정부의 행태를 품위있고 재기넘치게 꼬집은 정의당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특히 정의당은 진정한 패러디의 진수를 선보이며 정치정당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확실히 각인시켜 주었다. 바람 불어 좋은날 필자도 옛추억을 떠올리며 삐라나 한묶음 노란 풍선에 띄워 날려 보내야 겠다. 표현의 자유는 소중한 것이니까.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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