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새누리당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냈던 친박계 핵심 윤상현 의원이 제3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무성을 죽여버려. 다 죽여", "내가 당에서 가장 먼저 XX부터 솎아내고, 솎아내서 공천에서 떨어뜨려버려라고 한거야"라고 말한 녹취록이 공개되었기 때문입니다. 9일 새누리당 내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치열한 설전이 펼쳐졌습니다.
윤상현 의원의 막말 파문이 친박과 비박 간의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는 모양새입니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윤상현 의원은 취중에 벌어진 일이라며 황급히 진화에 나섰습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친박계에서도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친박계의 좌장격인 서청원 최고의원은 얼마전 불거졌던 살생부 파동을 거론하며 김무성
대표의 아량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친박계가 김 대표의 사과를 받는 수준에서 사태를 덮고 넘어갔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죠.
친박계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음모론으로 규정하며 오히려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가까스로 봉합되기는 했지만 살생부 파동에서 위기를 느낀 비박계가 윤 의원의 사적인 대화를 불법적으로 녹취해
언론에 흘렸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번 파문을 비박계의 정치공작으로 인식하고 녹취과정의 불법적
행태를 부각시키려 애쓰는 모습입니다.
이에 대해
비박계는 윤 의원의 정계은퇴를 요구하는 한편 당의 공천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실세가 누구인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며 친박계를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윤 의원의 전화 통화 내용이 김 대표와 비박계의 공천 배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는만큼 살생부가 실제하고 있다는 의혹이 더욱 짙어졌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가 '소문을 전한 것 뿐'이라던 살생부가 사실이라면 비박계는 공천학살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 채널A 화면 갈무리
현재 초미의
관심사는 윤 의원과 통화한 친박 실세가 누구냐에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재오 의원은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9일 열린 최고의원·중진연석회의 자리에서 "윤 의원은 공관의원들에게 전화했거나,
아니면 공관의원들에게 오더를 내릴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전화했을 것"이라며
"밝혀지지 않는다면 의원총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직까지
윤 의원과 통화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추론은 가능합니다. 윤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다 죽여 그래서 전화했어 형. 응, 내일 공략해야 돼. 응.응.응. 오케이, 형님"이라고 말했습니다. 통화 내용과 이재오 의원의
말을 종합해 보면 윤 의원과 아주 친밀하고 막역하면서 공천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있는 친박 실세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미 언론에서는 유력한 용의자로 몇몇 의원들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이 윤 의원과 통화한 당사자에 촛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누가 싼 똥인지 밝혀낸다고 해서 악취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녹취록 파문은 새누리당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권위주의에 대한 맹종과 비민주적인 정당체계가 다시 한번 드러난 것에 불과합니다. 친박과 비박간 패권 싸움 과정에서 권력을 향한 숨길 수 없는 탐욕이
노출된 것이죠.
지역주의와
권위주의의 구습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는 이 정당에서는 민주적 정당 체계의 흔적을 터럭만큼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3김 시대가 종식된 이후 정당
정치의 최대 화두였던 당내 민주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결과입니다. 새누리당은 이회창 전 총재 이후에도 친이와 친박
간의 치열한 권력 투쟁 과정을 거치며 오히려 3김 시대 못지 않는 1인 보스 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 시기는 소장파라 불리던 당내 개혁세력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시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새누리당이
패권을 놓고 골육상잔의 혈투를 벌이는 동안 21세기
정치 정당의 시대적 사명이었던 당내 민주화는 한줌의 모래처럼 자취를 감추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이 고루한 정당에서는 더 이상 당내 민주화, 정당 개혁이라는 주장을 찾아보기 힘들어 졌습니다. 급기야 이 정당에서는 패권에 눈이 먼 나머지 동료 의원들을 향해 '죽이겠다'는 살벌한 말까지
서슴없이 튀어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새누리당이 최소한의 당내 민주화도 이루지 못했다는 방증입니다.
ⓒ 머니투데이
조폭 느와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집권여당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군부독재가 남긴 흉물인 권위주의에 집착하는 낡은 정당,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찾아보기 힘든
비민주적인 정당,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기에 여념없는 거수기 정당이 원내 1당을 유지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와 시민권, 의회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에 걸맞는 시대정신과 담론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지금 새누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낯뜨거운 광경들은 도저히 21세기의 시대정신과 담론으로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모두 고루하고 낡은 것들이죠. 새누리당 친박 실세
윤상현 의원의 녹취록 파문은 그래서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낡은 것들과 결별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호히
결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21세기는 여전히 낡은 것들의 지배를
받는 시대로 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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