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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딸 유수진, 왜 화제인가 봤더니

어제(30) 온라인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아주 낯익은 이름이 올라와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었다. 검색어 순위 상위에 랭크되어 있던 검색어는 '유시민 '이었다. 유시민 장관은 정계를 은퇴한 이후 재야에서 집필에 몰두하며 간간히 '북콘서트' 강연 등으로 자신의 근황을 알려주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 화제의 주인공은 유시민 장관이 아니라 그의 딸 유수진씨였다.

링크를 따라 들어가 내용을 확인해 보니 역시 '피는 속인다' 옛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아버지에 아들이라더니, 과연 ' 아버지에 딸'이다. 지난 28 총리공관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전단지를 뿌리던 11명의 청년들이 경찰에 연행됐다. 그런데 청년들 가운데 한 명이 유시민 장관의 딸인 유수진씨로 밝혀져 화제가 것이었다.





"정부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총리대통령 정권 전체가 이상 정통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총리 공관 시위는 대통령과 정권에 이를 선언하기 위한..." - 유수진씨


대통령과 정권의 실체를 규정짓는, 최근에 들어 가장 명징한 선언이자 정의다.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응하는 방법은 이처럼 각양각색으로 나타난다. 비겁하게 침묵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저들처럼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어느 쪽도 나름의 논거는 있다. 침묵한다고 해서, 외면한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회적 현상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가치관과 철학,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과 소신의 문제이며,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당신이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나는 청년들의 선언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공화국에서 시민들은 언제든 대통령과 정권을 비판할 권리가 있다. 더욱이 지금처럼 사회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권력의 전횡이 극에 달한 권위주의 시대라면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강력해지고 구체적으로 발현되어야 정상이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요구하는 청년들의 외침은 그러므로 땅의 민주주의가 아직 살아있다는 방증이다. (이 나라가 아직 정상이라는 사실에 나는 안도한다.)





유수진씨가 화제가 된 것은 그녀가 유시민 장관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특별함이 유수진씨를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유시민 장관의 딸이 아닌 주체적 자아를 가진 개인 유수진으로서 자리에 섰다. 그녀가 유시민 장관의 딸이라서 특별히 주목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녀는 연행된 11명의 청년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다만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십년의 터울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딸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가치관과 철학, 세계관의 동질성이 아닐까 싶다. 유수진씨의 아버지 역시 독재권력의 불의와 부정에 맞서 젊음을 불살랐던 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유수진씨가 정권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처럼 유시민 장관 역시 전두환 신군부의 공포정치에 저항하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운동권 출신이었다. 대대로 가업을 이어가는 모습은 심심치 않게 봤어도 대를 잇는 학생운동은 흔히 있는 광경이 아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젊은 청춘들은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학생운동에 헌신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고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학생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당시 권력은 학생운동을 권위에 도전하고 정권을 위협하는 불온의 상징이자 박멸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그들은 운동권이라면 이를 갈았고 보는 족족 분리수거하듯 사회로부터 격리시켰다.  시절은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청년들이 구타와 감금, 구금과 구속을 당해야 했던 야만의 시대였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 상당수가 서슬 퍼런 야만의 시대를 살았던 운동권 출신들의 헌신이 만들어 것들이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성취해 '민주화' 수혜를 이후 세대들이 누리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 운동권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폭력적, 급진적, 반사회적이라는 비판은 그들이 이루어낸 '민주화'라는 성취에 비하면 크게 문제삼을 바가 못된다. 설령 과정의 오류가 있었다 한들 그들은 찬사와 존경의 대상이지 비난과 폄하의 대상이 없다.





유수진씨와 10명의 청년들은 지난 28 총리공관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이 날  십년 그녀의 아버지와 그들의 부모들이 독재정권에 당당히 맞섰던 모습을 그대로 재연했다. 군사독재의 야만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 '민주화' 험난한 과정을 알지 못하는 세대에게서 권력의 부정과 불의,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 저항하는 의기와 혈기가 남아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할 뿐만 아니라 고마운 일이다.

시위에 참여한 청년들의 모습은 날의 시위를 있게 만든 누군가의 삶과 극명하게 대비를 이룬다.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우리에게 '어떻게 것인가'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들처럼 것이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처럼 것이다. 물론 누구의 삶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각자가 일이다. 정답은 없다, 다만 선택의 문제일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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