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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생, 우리의 삶은 여전히 미생이다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숱한 화제를 남긴 드라마 '미생'이 지난 토요일 20국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예상한대로 계약직 사원 장그래의 정규직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 둔 오차장의 부탁을 받은 선차장과 동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끝내 장그래를 선택하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장그래가 보여주었던 뛰어난 업무능력과 실적으로도 촘촘하게 얽혀 있는 조직 시스템의 그물망을 빠져나가기엔 역부족이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들의 세상에는 계약직 사원 장그래가 끼어들 자리가 애시당초 없었다. 장그래는 그들이 원하는 만큼만, 그들이 정해놓은 시간까지만 필요했던 부속품이자 소모품이었다. 





무엇을 바랬던 것일까. 이 가슴 시린 판타지를 통해 나는 무엇을 보길 원했던 걸까. 드라마는 끝났지만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마치 텅 빈 방안에 혼자 남겨진 듯한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고 있다. 이 여운의 기저에는 결코 판타지가 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이 놓여 있다.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내일에 대한 기약이 전혀 없는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명목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비정규직과 계약직, 그리고 최근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적극 추진 중인 시간제 일자리 정책으로 노동자의 삶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같은 신세다. 이같은 우리나라 노동시장구조의 취약함은 한 개인은 물론이고 가정의 취약함으로 이어진다. 


열악한 근로조건과 불평등한 노동현실이 고스란히 삶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고, 그 결과 마치 중세시대의 신분제 사회를 옮겨놓은 듯 삶의 등급은 갈수록 확고부동해진다. 2014년의 대한민국이 평등한 사회라고 믿는 것은 자신이 이건희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멍청하고 바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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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의 장그래가 그랬듯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역시 거대한 시스템의 장벽이 둘러쳐져 있다. 학벌, 출신, 지역, 성별, 나이, 심지어 정치적 성향까지 아우르는 카르텔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늘의 별을 따야만 한다. 


그러나 별을 따기 위해 쏟아부었던 땀과 노력과 시간들이 언제나 우리를 향해 웃어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뼈를 깎는 노력이 쓰디쓴 배신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속출하는 시대다.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들로 가득차 있고, 그 노력조차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그러므로 노력은 절대로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격언은 이제 다시 쓰여져야만 할지도 모른다. 


국가도 정부도, 누구도 이들의 불안한 삶을 지켜주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선거철 이외에는 도통 저들의 삶과 고통에는 관심이 없다. 벌써 몇차례에 걸쳐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약속하고, 공공부문의 상시•지속적 업무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공약했지만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무책임하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박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는 앞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헤쳐나가야 할 험난한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연 저들이 우리 사회 내에 자리잡고 있는 사회적 편견과 불평등, 구조적 모순과 차별의 장벽을 헤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미생'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것은 이 질문이 대한 답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장그래를 기다리고 있던 오차장의 따뜻한 손길은 현실과는 너무나 먼 이야기다. 당신과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그보다는 몇 배는 더 시리다. 뜨거운 열정과 포부를 안고 거침없이 비상할 장그래의 미래가 우리 삶의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거듭 언급하지만 현실은 낭만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계약직 인턴 출신 장그래의 '간지'나는 변신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초라한 현실로 공간이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현실은 '미생'과는 180도 다르다. 기약 없는 삶,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 버린 삶들이 꿈처럼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주변엔 무거운 돌멩이 몇 개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삶, 하루 하루가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이 즐비하다. 이들의 삶을, 아픔을 과연 누가 위로해 줄 것인가. 어쩌면 저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삶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다는 사실에 있는지도 모른다. 모질게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미생인 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생, 그들의 삶은 여전히 미생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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