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대학을 깨어있는 지성의 요람이라 부른다. 어감은 물론이고 그 속에 담겨진 깊은 뜻까지 더해져 저 비유는 이 땅의 젊은 지성들에게 바치는 헌사의 의미가 있다. '깨어있는 지성의 요람', 이 얼마나 근사하고 멋들어진 표현인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양심과 정의, 세상을 향한 진지한 질문과 깊이있는 탐구, 뜨겁게 타오르는 패기와 열정이 한 데 어울려있는 그 시절은 누구나 인정하는 인생의 가장 빛나는 황금기이다.

그 시절 따뜻한 햇빛이 내려쬘 때면 교정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분노하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풀리지 않는 의문에 목말라하던 젊은 청춘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치열한 토론을 벌였고, 세상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고민들로 밤을 지새웠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문득 20년도 더 지난 그 시절의 기억들을 꺼내든 것은 안타깝게도 추억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추억을 이야기할 만큼 한가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지금 대학가는 가을 축제가 한창인 모양이다. 그런데 이 대학 축제와 관련해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일부 대학의 주점에서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당황스럽다. 낯뜨겁고 민망한 이 장면들과 '깨어있는 지성의 요람' 사이에서 그 어떤 접점도 찾질 못하겠다. 세대와 문화의 차이를 인정한다 해도 저 모습에서 낭만이 끼어들 여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어제 '모 대학주점 메뉴 논란'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게시글은 곱창볶음과 모듬튀김을 엮어 '오원춘 세트'를 판매하고 있는 한 대학주점의 실태를 고발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학생들은 끔찍한 반인륜적 살인행각을 벌인 범죄자와 그의 범행을 연상시키는 듯한 메뉴를 판매하고 있었다. 살인마 오원춘이나 '오원춘 메뉴'를 판매하기로 마음먹은 학생들이나 엽기적이기는 매한가지다.

축제철을 맞아 벌어지는 대학가의 풍경들 앞에 '깨어있는 지성인의 요람'이라는 비유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저들에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차가운 지성이 아니라, 철학의 빈곤이며 보편적 정서와 가치의 실종이다물론 모든 대학들과 학생들이 다 저들과 같은 것은 아니다.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세상의 불의에 맞서 의기롭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학생들도 상당하다. 투박한 대자보를 통해 사람들의 '안녕'을 묻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총장선거 부정사건을 바로 잡기 위해 수개월 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

청소 노동자들의 권익과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학내주점을 열고 그 수익금을 노동자들의 복지 기금과 투쟁 기금으로 전달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학원 비리에 맞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학생들도 있다. 또 국정원 사건과 세월호 참사 같은 크고 작은 시국사건에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광장에서 정의와 상식을 부르짖는 학생들도 있다. 방법과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바로 잡기 위한 젊은 청춘들의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저들의 행동은 선배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시대를 불문하고 관성과 낡은 통념, 부정과 불의에 저항하는 젊은 학생들의 뜨거운 에너지가 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선도해 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신군부의 항복을 받아 낸 역사적인 순간에는 늘 그들이 함께 있었다. 불의에 항거하는 젊은 청춘들의 뜨거운 열정과 혈기가 우리 사회의 진전을 이끌어 온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마음은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시선을 돌리면 이내 냉혹하고 냉정한 현실과 마주쳐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맞서려는 청춘들의 분투는 자본과 권력이 쳐놓은 공고한 프레임 앞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철학과 인문학이 외면받는 사회에서라면 실천 이성과 집단 지성을 바라는 것은 난망한 일이 되고 만다. 이런 식이라면 결국 자본과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탐닉, 그리고 즉물적인 본능과 욕망의 지배를 받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대학 축제의 와중에 벌어진 때아닌 메뉴 논란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는 온전히 개별 주체의 몫이다. 치기어린 학생들의 대수롭지 않은 행동으로 인식할 수도 있고, 우려할 만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자본과 권력이 만든 시스템 차원으로 접근해 보면 상황은 아주 심각해 진다.  


자본과 권력은 시스템에 저항하는 주체적 인간보다 시스템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부품형 인간을 원한다. 현 세대들은 그와 같은 습성을 지닌 자본과 권력의 시스템 아래에서 교육받고 오늘에 이른 세대다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시대는 자본과 권력이 쳐놓은 지독한 올무에 걸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데다가반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이기까지 한 대학주점의 풍경들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신호이자, 강력한 경고인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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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空空(공공) 2015.09.24 08:26 신고

    요즘 대학의 목소리가 없어져 버렸네요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나요?
    씁쓸합니다...

    • Favicon of https://windyhill73.tistory.com BlogIcon 바람 언덕 2015.09.24 10:51 신고

      기성세대의 책임이 막중하지요. 결국 보고 듣고 자란대로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 기성세대들보다 더 나쁜 것이 정치권입니다. 아이들을 기득권을 위한 도구로 노예로 만들 작정인가 봅니다. 치열하게 세상을 고민하고 탐구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도서관에 쳐박혀서 스팩쌓기 바쁜 판에 세상이 어디고, 이웃이 어디 있고, 공동체가 어디 있겠습니까?
      갈수록 막장으로 향해 갑니다. 그 끝이 어떨지 정말 끔찍합니다.

  2. Favicon of https://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 2015.09.24 10:27 신고

    기가 막힙니다. 순진한 학생들 비싼 들록금 내고 입학시키면 이런 자본주의문활르 체화시키다니... 거기가 학생들은 한 술 더 뜨서 자발적 자본의 노예가 되겠다니.... 말이 안나옵니다.

    • Favicon of https://windyhill73.tistory.com BlogIcon 바람 언덕 2015.09.24 10:52 신고

      저는 글을 작성하는 내내 속이 울컹거려 혼났습니다.
      나가도 너무 나갔고, 도를 넘어도 한참을 넘었어요.
      어쩌려는 건지...ㅠㅠ

  3. Favicon of https://saenooree.tistory.com BlogIcon 耽讀 2015.09.24 11:57 신고

    80년대 처럼 살아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이에 대한 배려, 생명을 위한 삶이 자체가 없습니다.

    • Favicon of https://windyhill73.tistory.com BlogIcon 바람 언덕 2015.09.25 01:59 신고

      기성세대의 잘못도 많지만, 결국 젊은 세대들이 떨치고 나서야 합니다.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냄비 속 개구리 모양 이용만 당하고 말겁니다.
      침묵과 복종이야말로 저들이 바라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4. Favicon of https://eproo.tistory.com BlogIcon 불루이글 2015.09.26 20:11 신고

    거의 매일 이다시피 대학 가 주위에는 매케한 최류탄 냄새가 끊이지 않았고 하얀색 헬멧으로 무장한 백골부대들과 전경들이 대학 정문앞에 진을 치고 있었지만

    그들은 두려워 하지 않고 싸웠습니다.

    80년대 대학가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흔쾌히 피흘리며 투쟁 한 결과가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분하고 억울합니다.

    그들의 그토록 힘겨운 투쟁의 날들이 물거품이 되버렸을 뿐만 아니라 독재보다 더 무서운 자본의 정신적 노예화에 빠져 무기력 해져버린 청년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두렵고 암담할 따름 입니다.

    • Favicon of https://windyhill73.tistory.com BlogIcon 바람 언덕 2015.09.27 00:20 신고

      에구, 정말 유구무언입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정말 암담하네요. ㅠㅠ

  5. Favicon of https://junpresident.tistory.com BlogIcon 민주청년 2015.09.29 21:38 신고

    전 이해하는 입장입니다. 터치마이 바디같은 소속사가 주체인 것과 달리 일반 학생들이 그런다면...

  6. BlogIcon 검수장 2015.10.02 20:39

    정말 왜 이렇게 되어버린건지 에효...
    환경을 바꿀 힘이 있음에도 주저앉아 넋두리만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은거같아 미래가 암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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