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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거꾸로 나라의 거꾸로 대통령

거꾸로 나라가 있다. 이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거꾸로다. '가시오' 푯말에선 서고 '서시오' 푯말에선 간다. 사람들은 두 발로 걷는 대신 두 손으로 걷는다. 비가 오면 소방차가 출동하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손을 벌린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진실보다 거짓이 더 좋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거꾸로인 나라.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물론 거꾸로 나라는 어디까지나 동화 속 가상의 나라일 뿐이다. 현실에선 저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말세라는 한탄이 절로 나오는 시절이지만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무법천지는 아니다. 빨간불엔 멈춰야 하고, 파란불엔 가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소방차는 불이 나야 출동하고,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구걸할 일은 없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어른도 상상하기 힘들다. 이 모두는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이자 도덕률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거꾸로 나라가 온전히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곳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우리 사회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거꾸로 나라가 허구가 아니라는 정황들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특히 우리 사회의 변화를 선도해야 할 구심점인 정치가 그렇다.



ⓒ 오마이뉴스



G20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 항저우를 방문 중인 박 대통령이 4일 전자결재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안을 재가했다. 야당이 두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렸음에도 임명을 강행한 것이다. 이미 청와대는 "(장관 후보자들이) 임명을 하지 못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혀 절차대로 진행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청와대의 인식은 과연 합당한 것일까. 김 후보자는 해운중계업체 명의의 93평 아파트에서 19000만원의 전세금으로 7년 동안이나 거주했다. 그는 이 기업에 거액의 기업 대출을 알선해 준 당사자다. 농수산물유통국장 시절에는 농협으로부터 연 1.42%의 금리(당시 평균 대출금리 8%)로 주택자금 대출을 받았고, 이 자금으로 아파트를 시세보다 2억 여원 싸게 구입해 5년 만에 37000만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 이 와중에 그의 노모는 10년 동안 극빈층으로 등록돼 2500만원의 의료비 혜택을 지원받은 사실까지 드러났다. 이 모두 일반인이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특혜다.

조 후보자는 또 어떤가. 조 후보자 부부가 지난 2010년부터 5년 동안 지출한 생활비만 무려 36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에 대한 지출 내역을 제대로 증빙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조 후보자는 두 차례 아파트 매매로 27억 여원의 시세 차익을 거두는가 하면, 국회 정무위 소속으로 있을 때는 변호사인 남편이 정무위 소관인 공정위 관련 소송만 26건을 수임하기도 했다. 최근 14개월 동안 교통법규 위반 사례만 무려 29차례에 달한다. 두 후보자 모두 준법성과 도덕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지난 2013 3 11일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열린 첫 국무회의 자리.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새 정부가 막중한 과제들을 잘 해나가려면 인사가 중요하다. 각 부처 산하기관과 공공기관에 대해 앞으로 인사가 많을텐데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게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하기 위해 고심 끝에 지명된 사람들. 과연 그들은 누구일까.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부동산 투기, 두 아들 병역기피),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위장전입, 공금 유용),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이중국적, CIA 경력),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무기중개회사 근무, 부동산 투기), 김학의 법무부 차관(성접대 의혹),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비자금 의혹).


이상은 임기 초 박 대통령이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하겠다며 지명한 사람들의 면면이다. 이들은 모두 비판 여론에 떠밀려 임명이 되지 못했다. 대통령이 저들과 만들어가려 했던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 도무지 가늠이 안된다. 그런데 이제는 저 정도의 허물 쯤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청와대의 인식과 태도에 더 놀란다. 



ⓒ 오마이뉴스



임기 초 인사참사의 후유증을 톡톡히 겪은 후에도 청와대가 임명한, 혹은 임명하려 했던 인사들의 태반이 부동산 투기, 탈세, 논문 표절, 군 면제, 위장 전입, 병역 기피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민 정서에 역행하는 청와대의 행태가 시간이 갈수록 뻔뻔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급기야 최근에는 과거 음주운전 사고 당시 경찰 신분을 숨겼던 인사를 경찰청장에 임명하는 어이없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제 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자의 자질과 능력, 도덕성 등을 검증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회지도층이 얼마나 보편적 상식과 도덕률에 취약한가를 확인하는 시간으로 변질됐다.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때마다 예외없이 누가 덜 나쁜가, 누가 덜 부도덕한가를 따져 묻는 어이없는 상황극이 펼쳐진다. 이 웃지못할 촌극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거꾸로 나라가 있다. 물론 동화책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공간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대통령 이하 이 나라의 고위공직자들 중이 나라가 거꾸로 나라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 과연 누구인가. 양심이 있다면 부끄러워 해야 한다. 국민은 존경할 수 있는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고위공직자를 가질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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