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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색깔론 포문 연 김문수..완주 가능성은 글쎄

ⓒ 오마이뉴스


"수도 서울의 600여년 역사를 지워버리고 이상한 남북 간 교류와 화합을 말하는 세력들이 어떤 세력인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감옥 속에서도 단파라디오를 반입해 김일성주의를 학습해왔다. 저와 같이 감옥에 산 사람들이 지금 청와대에 있고 전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안다."

10일 자유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추대된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일성은 역시나 '색깔론'이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잔뼈가 굵은 만큼 그 바닥(?) 출신들에 대해 훤히 꽤뚫고 있다는 뜻으로, "주사파가 청와대를 장악했다"는 모 의원의 정치공세를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후보 추대식 당일부터 김 전 지사가 색깔론을 꺼내들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다. 김 전 지사의, 그리고 한국당의 앞으로의 선거 전략을 예측해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되기 때문이다. 수십 년이 넘도록 계속돼 온 보수진영의 색깔 공세가 이번 지방선서에서도 이어지려는 모양이다.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좀비' 같은, 참으로 질긴 생명력이다.

한국당과 색깔론.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의 집권 기간만 무려 50여년에 달한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뀔 만큼의 긴 세월 동안 반공이 우리 사회의 주류 패러다임으로 작동해왔다는 의미다.

그 사이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빨갱이'라는 낙인 속에 모진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구타와 고문, 감금과 구속이 이어졌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부지불식 간에 간첩으로 몰려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는가 하면, 인혁당 사건처럼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도 속출했다. 박종철과 이한열도 그렇게 스러졌다.

군부독재의 불의와 부정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에게 집권세력은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겼다. 전향하기 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젊음을 헌신했던 김 전 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변하는 건 산과 들만이 아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변하게 만들고 때로 이성마저 마비시킨다.

"저는 원래 좌파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했기에 혁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그러나 소련 공산주의권의 붕괴 이후 그들 체제가 얼마나 반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인지 똑똑히 알게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입당한 뒤에 24년간 국회의원 3번 도지사 2번을 했다. 그러는 동안 제가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더 실력있고 더 도덕적이고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봤다."

노동운동의 대부라 불렸던 김 전 지사가 이날 밝힌 간증(?)이다. 그의 전향은 개인의 소신과 철학에 의한 것으로 훗날 역사가 평가할 일이다. 그러나 보수정권의 능력과 도덕성을 언급하는 대목은 동의하기 힘들 것 같다. 왜 그럴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1997년 외환위기다. 20년 전 수많은 국민을 나락으로 내몰았던 IMF 구제금융을 초래한 당사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김영삼 정권의 무능과 부실한 경제 운용으로 대한민국은 전쟁 아닌 전쟁을 경험해야 했다. 환율은 치솟고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대우 ·쌍용 등 20여개의 기업이 줄줄이 파산했고 실업율은 극에 달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은행 이자율을 20%까지 급상승했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심지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생이별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7년 11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대국민 인식조사에서 절반 이상(54.7%)의 국민이 근대화 이후 한국 경제의 최대 악재로 꼽은 것이 바로 '97년 IMF 환란'이다.

2000년대 이후 역대 정부의 경제 성적표 또한 김 전 지사의 평가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보낸 현재 보수가 경제성장을 잘 시킨다는 얘길 부끄러워서 할 수가 없다. 경제는 DJ·노무현 정권 때보다 성적이 못하다. 김대중 정부 때 5%, 노무현 정부 때 4%, 이명박 정부 때 3%, 박근혜 정부 때 2%가 성장했다". 야권의 대표적인 경제통으로 손꼽히는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의 쓴소리는 '경제는 보수'라는 기존의 통념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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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측면은 또 어떠한가. 보수정권의 도덕성 관련 사건·사고들은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로 부지기수다. 김 전 지사가 민주자유당에 입당한 94년 이후로 한정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총풍·차떼기 사건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숱한 성비위·추문 등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보수정권이 '도덕성'을 운운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가 다 아는 일일 터다.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이명박 정권의 부정비리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이 이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김 전 지사의 간증이 뜬금 없는 것은 그런 이유다. 반세기가 넘도록 대한민국을 쥐락펴락 하면서 갖가지 부정·부패와 비리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보수정권의 능력과 도덕성을 치켜세우고 있으니 어찌 아니 그럴 텐가. 이승만(하야), 박정희(쿠데타, 유신독재), 전두환·노태우(군사반란, 내란), 김영삼(IMF 외환위기), 이명박(뇌물수수·국고손실, 구속), 박근혜(탄핵, 구속) 정권의 실상을 보고도 저리 말하고 있으니 시쳇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올드 보이'라는 세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이 김 전 지사를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운 것은 무엇보다 보수우파를 결집시킬 경쟁력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보인다. 색깔론을 앞세워 문재인 정부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는 한국당에게 운동권의 생리를 꽤뚫고 있는 김 전 지사야말로 보수결집을 위한 안성맞춤의 카드가 될 수 있다. 국회의원 3선과 경기지사를 연임하며 쌓인 정무감각과 풍부한 도정 경험 등도 내세울 만한 강점이다.

김 전 지사 역시 이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날 그는 한국당이 자신을 추대한 의중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적극적인 색깔론 공세에 나섰다. 당의 기대(?)에 한껏 부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김 전 지사의 서울시장 도전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론조사 결과 박원순 현 시장은 물론이고 우상호·박영선 의원 등 민주당 후보들이 야권후보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인 데다가, 지금처럼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 선거가 치뤄질 경우 가능성이 더욱 낮아진다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연대설이 끊이질 않는 것도 이와 같은 비관적인 선거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보수진영의 목소리도 점점 비등해지고 있다. 급기야 <조선일보>는 10일 '김문수·안철수의 용단'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서로 망하고 결국은 집권층 도와주는 '좌파 공조 세력'으로 전락하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한다"며 두 후보의 결단을 강력히 촉구했다.

시간이 갈수록 보수진영의 선거연대 요구는 점점 더 거세질 것이다. 야권후보의 지지율이 지리멸렬할 경우 한국당과 김 전 지사가 당안팎의 연대요구를 끝까지 거부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수도권에서의 야권 단일화를 고리로 한 김 전 지사의 중도 포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한국당이 김 전 지사를 서울시장 후보로 추대한 것이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과의 단일화를 염두해 둔 포석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표의 확장성과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김 전 지사를 내세워 단일화 카드로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석 작전, 다시 말해 '버리는 카드'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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