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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관제 개헌?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할 때까지 야당은 뭘했나?

"사람이 먼저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내세운 슬로건이다. 20일 청와대가 발표한 대통령 개헌안에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문 대통령의 철학과 인식이 그대로 녹아있다는 평가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소개한 개헌안 전문과 기본권 조항에 여성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들이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헌안에는 특히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한 것이 눈에 띈다. 조 수석은 이에 대해 "국제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인권의 수준이나 외국인 200만명 시대의 우리사회의 모습을 고려하면 기본권의 주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국가를 떠나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천부인권적 성격의 기본권에 대해서 그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간 존엄의 상징인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인류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를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에 포함시키겠다는 의미다. 노동자의 권리도 대폭 강화됐다. 조 수석은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양극화 해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노동자의 기본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상징적 조치로 개헌안은 군사독재시대에 만들어진 '근로'라는 용어를 보편적 표현인 '노동'으로 수정했다.

또한 개헌안은 국가가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수준의 임금'이 지급되도록 노력할 의무와 '고용안정'과 '일과 생활의 균형'에 관한 적절한 정책들을 시행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했다. 이밖에도 노동조건 개선과 권익보호를 위해 노동자에게 단체행동권을 부여하고, 공무원의 노동3권을 인정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조 수석은 이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개헌안에는 국민주권을 강화하고 국회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도 포함됐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교육감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현행 '주민소환제'에 국회의원을 포함시키고, 국민이 직접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조 수석은 "직접 민주제를 대폭 확대함으로서 기존의 대의제를 보완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종합해 보면, 청와대가 밝힌 '대통령 개헌안'의 전문과 기본권 사항의 핵심은 국민의 기본권 강화와 확대에 방점이 찍혀있음을 알 수 있다. 조 수석은 "이번 개헌은 기본권 및 국민의 권한을 강조하는 국민 중심의 개헌이 되어야 한다"며 "기본권 및 국민주권 강화와 관련된 조항들은 이미 국회에서도 대부분 동의된 바 있는 조항들이다. 양보와 타협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실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국회의 협조를 구했다.


 ⓒ 오마이뉴스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성향의 시민단체, 노동계 등은 기본권 등 국민주권이 대폭 강화되고 국회권력을 견제·감시할 수 있는 방안 등이 포함된 개정안을 높이 평가했다. 온라인 여론 역시 우호적인 것으로 확인된다. 관련 기사마다 국민의 기본권 향상과 국회 권한 축소 등이 담겨있는 대통령 개헌안에 공감하는 댓글들이 춤을 추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위시로 한 보수야당과 보수성향의 시민단체 등은 그와는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그동안 대통령 개헌안을 맹목적으로 반대해온 보수야당의 반발이 거세게 터져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여야가 어렵게 합의해서 운영하고 있는 사개특위를 무력화 시키고, 찬물을 끼얹는 독선과 오만을 보이고 있다"(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 "직접민주주의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은 우리 헌정질서인 대의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원칙에 크게 어긋난다"(정태옥 대변인), "청와대는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로 국회 논의를 무시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신보라 원내대변인),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것으로,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김철근 바른미래당 대변인).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보수야당의 비난이 가열차다. "독선, 오만", "헌정질서 원칙 위배", "제왕적 대통령제",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 부정".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극단적 부정의 수사를 동원하고 있는 것만 봐도 저들이 얼마나 격렬하게 대통령 개헌안을 반대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데 황당한 건, 불과 1년 전 '개헌 타령'에 날 새는 줄 몰랐던 당사자들이 바로 '저들'이라는 거다.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한국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 등은 돌연 개헌 논의에 불을 당겼다. 표면적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는 구실을 내세웠지만,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를 이길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한 개헌을 통해 의회 권력을 강화시키려는 취지였다. 당시 야 3당은 개헌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피력했고, 2018년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입장을 밝힌 문 후보를 "개헌에 저항하는 수구세력"이라고 거칠게 몰아세웠다.

당시 야 3당은 개헌을 밀어붙어기 위해 '막무가내'였다. 문재인·홍준표·안철수·유승민 등 대선후보 대부분이 대선 후 개헌 논의를 거쳐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를 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는 입장이었음에도 '대선-개헌 국민투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야 3당의 개헌 시도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개헌을 추진할 명분과 시간이 촉박했던 데다가 주요 대선 후보들의 반대 의사가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국민 여론 역시 개헌에 부정적이었다.

당시 개헌을 안 하면 나라가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던 야 3당은 그러나 대선이 끝나자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취임 이후 문 대통령이 여러 차례에 걸쳐 개헌의 당위를 강조하면서 조속한 국회 논의를 촉구했음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개헌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며 국회가 흘려 보낸 시간만 1년이 훌쩍 넘는다. 이를 보다 못한 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시사했음에도 야당은 개헌 논의를 이어가기 보다는 '관제 개헌 프레임'으로 정치공세를 펴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 오마이뉴스


야당은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가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따져 볼 일이다. "헌법 128조 1항은 대통령의 헌법개정 발의 권한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역대 사례를 보더라도 정권의 의지가 없으면 개헌은 요원합니다. 여야 정치권에만 의지해서도 안 됩니다.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대통령 개헌안에 연일 맹공을 펼치고 있는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현 한국당 원내대표)의 지난 2016년 9월 20일 발언이다. 흡사 민주당 관계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이 발언은, 그러나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가 헌법에 명시된 정당한 권리라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다.

진성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은 19일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의 개헌안 지시에 대해 "이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와 기간을 준수하되 국회가 개헌에 합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공약 이행을 위해 노력하되 국회가 개헌안에 합의할 경우 개헌 발의를 철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야당이 뼈저리게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라 할 만하다. 국회가 개헌 국면을 주도할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가 최고법인 헌법의 개정은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국회에서 각 정당의 합으로 이뤄지는 것이 마땅하다. 집권 초 대통령이 앞장서 개헌 의지를 밝히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국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의 개헌안이 미흡하다면 국회가 새로운 개헌안을 마련하면 된다. 여야는 하루빨리 자당의 개헌안을 제시하고 개헌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 한국당은 10월 개헌 투표를 주장하지만, 그때는 무슨 동력으로 개헌을 밀고 갈 건가. 개헌에 여유를 부리는 국회를 보면 과연 개헌 의지가 있나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3월 1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대통령 개헌안 반대하는 야, 과연 개헌의지는 있나'라는 제목의 사설 내용 중 일부다. 야당이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를 비판할 수는 있다. 개헌안의 내용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야당은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유구무언'이어야 정상일 터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헌 찬성과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 역시 찬성 여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된다. 야당은 자가당착적 정치공세를 중단하고 지금이라도 개헌 논의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대통령을 개헌의 중심에 서도록 만든 당사자는 다름 아닌 현 '야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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