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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밀양서 면박 당한 김성태, "정치하러 왔어요?"

"아니 의원님, 의원님. 불난 집에 와서 무슨 정치보복 그런 이야기를 해요. 불난 데 와서 무슨 적폐 청산 이야기를 해요. 지금 정치하러 왔어요? 정치하러 왔어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밀양시민으로부터 거세게 항의를 받았다. 3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상남도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다.

내막은 이랬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밀양 화재 참사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그는 "쇼통과 정치 보복에 혈안이 된 이 무능한 정권이 국민의 기본적인 생명권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큰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청와대, 내각은 총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말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의 책임이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이어 "더 이상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정권은 대통령이 아니다. 이 참담한 화재 현장에서 또 유족들 위로만 하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 될 수는 없다"며 "생일 축하 광고판에 환한 미소로 쇼통에만 혈안이 돼 있는 이 문재인 정권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기본적 생명권도 지키지 못한다면 정부가 아니다"라고 문 대통령을 강하게 성토했다.

시민의 고성은 그 무렵 터져나왔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마자 한 시민이 김 원내대표를 향해 '불난 곳에 와서 무슨 말을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김 원내대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할 소리는 해야 한다"고 반박했고, 시민은 다시 '정치하러 왔냐'고 강하게 응수했다. 이 과정에서 김 원내대표 측과 시민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뜻하지 않은 참사 소식에 유가족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까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다. 제천 참사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가운데 발생한 탓에 아픔은 배가된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병원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니 참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와 같은 대형 참사에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말못할 충격에 빠져있을 유가족과 시민을 위로하는 일이다. 화재의 원인 규명, 책임소재 추궁, 사후대책 마련 등은 그 이후에 다뤄질 문제다. 그런 면에서 밀양시민의 '격정'은 순리를 망각하고 있는 김 원내대표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 제기일 터다.


오마이뉴스


문재인 정부에 맹공을 퍼붓고 있는 김 원내대표의 주장이 합당한지도 따져볼 일이다. 모든 사고가 그렇듯 이번 참사 역시 여러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피해가 커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지난 9년 동안 국정을 운영해왔던 한국당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번 밀양 세종병원 화재 역시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 세종병원의 건물 외장재는 드라이비트 공법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법은 비용이 저렴하고 단열효과가 뛰어난 장점이 있는 반면 화재에 취약한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드라이비트 공법의 위험성은 제천 스포츠센터 화제 당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외벽에 스티로폼을 붙이고 시멘트를 덧바르는 이 공법은 화재 발생 시 불이 순식간에 번질 뿐만 아니라 다량의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필로티구조 문제도 다시 제기됐다. 건물 1층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벽 없이 기둥만 세우는 필로티구조는 그 면적만큼 방화설비가 설치되지 않기 때문에 화재 발생시 초기진압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와 관련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천 화재 당시 페이스북에 이명박 정부 시절 건축물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는 사실을 지적한 뒤, "전국 각지에서 필로티구조로 된 중소형 다가구주택이 지속적으로 생겨났으며 이러한 건물들에는 건축비가 저렴한 드라이비트 공법이 많이 적용되었다고 한다"고 꼬집은 바 있다.

세종병원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주장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6년 7월 스프링클러 설비 설치대상을 기존 11층 이상에서 6층 이상 건축물로 강화하는 내용 등이 담겨있는 '소방시설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한 데 이어, 2017년 1월 26일 공포한 바 있다. 그러나 일반 의료시설의 경우 바닥면적이 1000㎥ 이상의 건물에만 의무적용 하도록 했다. 중소 의료시설인 세종병원은 이 기준에서 벗어나 스프링클러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런가 하면 세종병원이 불법 무단증축된 사실도 드러났다. <연합뉴스>가 26일 밀양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세종병원은 2011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무단 증축을 하다 적발돼 현재 위반건축물로 지정돼 있는 상태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시는 2012년부터 시정명령과 함께 강제금을 부과했을 뿐 불법건축물을 방치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경남도의 행정을 책임지고 총괄했던 당사자는 다름 아닌 홍준표 한국당 대표였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염불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이는 김 원내대표의 정략적 행태를 말하려 함이다. 이번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는 허술한 법규, 건물 불법 증축, 당국의 안전점검 미비, 고질적인 안전불감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는 이번 참사가 단순히 집권세력의 문제를 넘어 안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시안적인 인식과 태도의 문제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정권을 막론하고 대형 참사가 끊이질 않고 반복되고 있다. 정파적 이해와 당리당략을 떠나 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합쳐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권·청탁 등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법을 만들고, 제도를 정비하고,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관리감독과 행정지도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시민의식을 함양시키기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이것이 정치의 본령일 것이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 제천시민으로부터 "뭐 잘했다고 오느냐"고 면박 당한 바 있는 김 원내대표가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현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김 원내대표는 직시해야 한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혼수성태'에 이어  '면박 성태'라는 별명까지 새로 생길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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