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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선후보들의 때이른 정치 복귀, 그 득과 실

오마이뉴스


지난달 9월20일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방송됐다. 방송을 진행하던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의 인터뷰 도중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관련해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이어갔다. 요약하면, 대선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안 대표가 여전히 치열한 경쟁과 대결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날 김 총수의 발언 중 특히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저는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선이 안 끝났구나, 저분에게는"이라고 말하는 대목이었다. 이 부분이 왜 특별했냐면, 최근 펼쳐지고 있는 정국과 아주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 총수의 발언에 공감하면서 한편으로 이것이 비단 안 대표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문제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즘 돌아가는 정국을 보자면 그렇지 않다는 걸 여실히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채 5개월도 안 된 시점에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후보들이 속속 정치 일선에 복귀하고 있다. 이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안 대표가 당권을 거머쥔데 이어,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마저 승리하게 될 경우 지난 대선의 패장들이 불과 몇개월 만에 당 대표로 복귀하게 되는 초유의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대선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드는 이유 말이다. 과거에는 대선 패배는 곧 칩거를 의미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대선에 패배한 후보들은 상당 기간 자숙하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 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현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이 불문율은 깨지지 않아온 터였다.

그러나 19대 대선에 출마했던 대선후보들은 전혀 다르다. 기존의 관행을 허물며 정치문법을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가장 먼저 정치 복귀를 선언한 사람은 홍 대표였다. 낙선 이후 곧바로 미국으로 출국했던 홍 대표는 SNS를 이용해 활발하게 정치활동을 펴는가 싶더니, 한달여 만에 귀국해 당대표 출마를 공식화하고 당권 도전에 나섰다. 이후 거침없는 기세로 경쟁자들을 따돌리며 7.3 전당대회에서 승리해 보란듯이 당권을 손에 넣었다. 대선이 끝난지 불과 두 달도 안 된 시점이었다.

안 대표의 정치 복귀 시점 역시 아주 빨랐다. 대선 이후 지방을 돌면서 정국 구상에 몰두하던 그는 제보조작 사건으로 당이 풍비박산날 위기에 처하자 전격적인 정치 복귀 선언을 했다. 제보조작 사건 책임론이 당안팎으로부터 빗발쳤지만 안 대표는 이에 굴하지 않았고, 급기야 8.27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유 의원은 지난달 29일 당대표 출마 선언을 했다. 야3당 대선후보 중 가장 늦다. 그러나 유 의원의 경우도 과거에 비하면 대단히 빠른 축이다. 유 의원이 오는 11월13일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승리하게 되면 지난 97년 대선 패배 이후 이듬해 8월 당 총재로 복귀하기까지 8개월이 걸렸던 이 전 총재보다 빠르게 정치 일선에 복귀하는 셈이 된다.


ⓒ 오마이뉴스


세 사람은 복귀의 명분으로 '당 살리기'를 앞세웠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기 위해서는 조기 등판이 불가피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국정농단 사태와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당, 제보조작 사건의 후폭풍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당, 당 지도부의 잇따른 구설과 당의 진로 문제로 극심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는 바른정당 모두 당내 지형이 지극히 불안정하기는 매한가지다. 확장력과 인지도를 갖춘 인물이 없다는 점도 이들의 조기 복귀를 부추긴 요인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당내 패권과 맞물린 전략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 대표나 안 대표의 경우 정치 공백이 길어질수록 당내 영향력이 줄어들 개연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홍 대표는 당내 계파가 없다는 점에서, 안 대표는 호남지역 의원들과 전략적 공생관계에 있는 탓에 2선으로 후퇴할 경우 정치적 입지가 불안해진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미래의 잠재적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권 확보 등의 실권을 쥐는 편이 보다 이득이라고 판단했을 터다.

유 의원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 바른정당의 내부 사정은 푹풍전야와 같다. '통합이냐 '자강이냐'를 놓고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통합파의 최근 행보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당내 상황을 수수방관하다가 자칫 통합파가 한국당으로 복당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당은 물론이고 유 의원의 정치적 미래 역시 담보하기 어렵게 된다. 설사 통합으로 가지 않더라도 통합파의 반대로 '유승민 비대위' 체제가 무산된 전례도 있어 이대로라면 당내 주도권이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대선후보들의 때이른 등판은 이처럼 당이 처해있는 곤궁한 상황과 당내 패권 등 정치적 역학관계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홍 대표나 안 대표 모두 당권을 틀어쥠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당내 장악력을 높여 자기 정치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실속도 챙겼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유 의원 역시 승리하게 된다면 같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후보들의 조기 복귀에 따른 '실'도 만만찮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과 성찰이 없는 정치 일선 복귀를 여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부터가 미지수다. 홍 대표와 안 대표가 당권도전을 선언할 당시 비판 여론이 강했다는 점, 조기 복귀에 따른 국민적 피로감이 앞으로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하면 때이른 복귀가 외려 '독'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내년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대선후보들의 정치적 운명이 달려있다는 점이 뼈아프다. 차기 대선을 염두해두고 있다면 더더욱 그럴 터다. 만에 하나 지방선거에서 패배했을 경우 때이른 정치 복귀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다. 지방선거 결과에 대선후보들의 정치적 명운이 걸려있는 셈이다. 홍 대표와 안 대표, 그리고 당권 도전에 나서는 유 의원 모두 내일의 '가능성'보다 오늘의 '절박함'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사뭇 흥미롭다. 8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가 분수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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