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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안철수, 그는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나

ⓒ 오마이뉴스


지난달 27일 열린 국민의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후 안철수 대표는 대표수락연설을 통해 "단호하게 싸우는 선명한 야당이 되겠다"고 천명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정치적 수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안 대표의 비판 수위가 점점 더 격해지고 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그 책임 공방을 놓고 공세의 수위를 높이는가 하면, SOC 예산 삭감을 지역차별이라 규정하고 호남홀대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11일 헌정사상 최초로 헌재소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정국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부결될만한 특별한 흠결이 발견되지 않았던 김이수 후보자가 정쟁의 희생양이 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보수야당과 손잡고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국민의당을 향해 세간의 시선이 집중됐다. 특히 안 대표가 부결 직후 "국민의당이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며 그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임명동의안 부결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질 조짐을 보이자 국민의당은 서둘어 진화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임기 1년의 헌법재판소장을 지명해 3·3·3 삼권분립을 침해했다"(김동철 원내대표), "표결 전날 여권에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임명을 철회하고,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해임하는 성의를 보여달라고 요구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해 의원들의 마음이 돌아섰다"(박지원 전 대표)라며 부결의 책임이 문 대통령과 여당에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임기가 1년여밖에 남아있지 않은 헌재소장을 부득불 지명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1월 박한철 전 소장의 퇴임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헌재소장 공석 사태와 비정상적인 8인 재판관 체제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국가 최고의 사법기관이자 헌법 해석 기관인 헌재가 하루 빨리 정상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나오고 있는 형국이었다. 국민의당의 주장대로라면 헌재소장 없이 현 8인체제로 남은 1년을 이어가야 한다. 이는 헌재의 위상과 역할을 도외시한 무책임한 주장이다.

헌재소장 인준을 국무위원 인사와 연계시키려 했다는 사실은 더욱 말이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구태 중의 구태다. 헌법의 가치와 법률의 체계를 세우는 헌재의 수장을 선출하는 사안을 정치적 '딜'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국민의당이 이번 임명동의안 처리를 당리당략의 기회로 삼았다는 방증이나 마찬가지다. 캐스팅보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문재인 정부를 흔들어서 정치적 이득을 도모하려 한 정략적 발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안 대표는 오히려 정부여당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13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사과하라는 주장까지 했다. 앞서 청와대가 임명동의안 부결에 대해 "오늘 국회에서 벌어진 일은 무책임의 극치, 반대를 위한 반대로 기록될 것이다. 특히 헌정질서를 정치적이고 정략적으로 악용한 가장 나쁜 사례가 될 것이다"라며 야당을 강하게 비판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국회 의결을 두고 청와대가 입에 담기 힘든 표현으로 비난하고 있다. 국회의 헌법적 권위를 흔드는 공격은 삼권분립과 민주적 헌정질서를 흔드는 일이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표결 이후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행태가 금도를 넘었다. 청와대의 도를 넘는 공격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하라."

뺨 때려놓고 뺨 맞은 사람더러 사과하라는 겪이다. 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는 그동안 수개월 째 미뤄지고 있던 참이었다. 보수야당과 국민의당이 번번히 반대하며 본회의 상정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 역시 야당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이를 두고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 국민의당의 책임을 빼놓을 수는 없을 터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헌재소장 인준을 장관과 처장의 인사와 연계시켰다는 건 공당으로서 할 짓이 도저히 아니다. 이같은 구태가 '새 정치'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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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안 대표는 얼마 전 정부가 확정한 '2018년 예산안' 역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내년 예산안은 복지예산을 늘리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줄이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전환시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다. 이전 정부에서 과도하게 집행된 SOC 예산을 줄이는 대신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확대, 소방관·경찰관·사회복지 공무원 등 일자리 확충에 보다 많은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안 대표는 이 과정에서 삭감된 SOC 예산을 '호남홀대론'과 연계시켜 정치쟁점화시키고 있다.

안 대표와 국민의당의 주장은 문재인 정부가 호남지역 지자체가 건의한 2018년 SOC 예산은 대폭 삭감하면서도 영남지역은 신청하지도 않은 예산을 배정하는 등 지역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호남고속철도 2단계 사업, 새만금 공항, 광주순환 고속도로 등의 예산이 삭감되거나 책정되지 않았다는 거다. 실제 기획재정부가 밝힌 2018년 예산안에 따르면, 호남지역의 주요 SOC 사업 예산이 전년 대비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액면으로 보자면 문재인 정부가 호남지역의 SOC 예산을 삭감했다는 안 대표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산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내년 예산안 중 SOC 예산 전체가 삭감됐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부는 일자리 및 사회복지예산을 확대하는 대신 SOC 예산은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불필요한 예산 지출을 최소화시키고 확보된 재정을 양극화 해소와 고용 창출에 집중시키겠다는 복안이다. 그에 따라 SOC 예산이 2017년보다 20%나 삭감됐다. 이는 영남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국토교통부의 '2018년 예산안 사업리스트'에 따르면 2017년과 2018년을 비교했을 때 SOC 예산 감소폭이 큰 쪽은 오히려 영남지역이었다. 예산 삭감폭이 큰 사업들 역시 영남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안 대표는 SOC 예산이 전체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과 영남지역의 삭감폭이 크다는 사실은 거두절미 한 채, 이것을 호남지역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안 대표는 SOC 사업의 타당성과 사업진행 과정, 진척 속도, 이월예산 등 여러가지 사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지자체가 3000억을 건의했지만 정부가 예산의 95%를 삭감했다는 호남고속철도 2단계 사업의 경우가 그 대표적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 사업은 현재 사업계획 적정성을 검토하는 단계에 있다. 심지어 노선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아직까지 예비타당성 조사도 끝나지 않은 사업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지자체가 요구했다는 이유로 3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책정해야 하는 건지 의문이다.

이와 관련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금년 예산 중 554억 정도가 이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고에 철도시설공사가 50% 매칭을 해 이것을 포함할 경우 이월액은 1100억원이 넘어 내년도 사업을 진행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반기에 노선이 확정될 경우를 대비해서 즉시 설계에 착수할 수 있도록 150억원을 이미 편성했고, 설계가 완료되면 즉시 착공될 수 있도록 60억원을 추가로 배정해놓았기 때문에 호남고속철도 2단계 사업은 전혀 지장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호남지역 SOC 예산 차별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안 대표가 문재인 정부에 연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지난 대선을 즈음해 전세가 완전히 역전된 호남지역에서의 지지세를 회복하지 않고는 당과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을 터다. 당장 내년 6월에 열리는 지방선거가 분수령이다. 만약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당은 물론이고 안 대표의 정치적 생명을 담보하기 어렵게 된다.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부결의 역풍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여당을 성토하고, SOC 예산 문제로 호남지역 정서를 자극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강경일변도로 나가고 있는 안 대표의 전략적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궁금한 건 안 대표가 과연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느냐는 거다. 안 대표의 정치여정은 '반문'으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당 창당대신 민주당과의 합당을 선택한 이후 안 대표는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반문재인'을 외치고 있다. 이 모습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마치 '반문재인'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도 된다는 듯이 적대적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반문재인'의 기치를 내려놓지 않고 있는 안 대표와 국민의당의 지지율은 외려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맹렬한 기세와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왜 그럴까.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을 중도인 것처럼 포장하는 기회주의적 태도, 말 뿐인 새 정치, 제보조작 의혹사건 등에서 드러난 무책임함, 대안 없이 반대만 일삼는 정략적 행태,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스스로에게는 관대한 이중성, 그리고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흐름과 동떨어진 행보 등등.

많은 사람들이 안 대표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정치를 하기 전과 이후 안 전 대표에게 확연히 달라진 것이 두가지가 있다는 거다. 그 하나가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목소리다. 어쩌면 여기에 '초심'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정치인 '안철수'의 매력과 광채가 사라지게 된 건 그 무렵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대체 어떤 입장인 것인지, 당췌 그 마음을 가늠하기 힘들던 바로 그 즈음 말이다.

기성정치에 동화된 '안철수'는 매력이 없다. 새 정치의 참신함과 역동성이 사라진 '안철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기성정치에 닳고 닳은 그렇고 그런 정치인들은 시쳇말로 널리고 널렸다. 안 대표는 자신이 왜 정치를 하는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지, 정치를 시작하려던 그 때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국민이 안 대표에게 바꾸라고 한 건 정치이지, 얼굴과 목소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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