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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노무현의 국정원과 이명박의 국정원의 결정적 차이

ⓒ 오마이뉴스


"물론 심리전단이 주체고, 나중에 심리전단이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까지 됐는데요. 중간에 있는 간부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원세훈 국정원장은 직보를 받았을 것이 분명해 보이고요. 그 다음 원세훈 국정원장이 본인이 마지막 선으로 알고 끝냈느냐, 아니면 그 윗선으로 보고했느냐의 문제인데요. 사실 MB정권 당시 국정원장과 대통령과의 관계는 주기적으로 독대하는 관계였거든요. 따라서 독대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뤄졌는지, 또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받은 사실은 없는지, 이것이 반드시 조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MB정권이 국정원을 통해 이른바 '민간인 댓글부대'를 조직·운영하면서 여론을 조작했다는 충격적인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세간의 관심은 과연 MB가 관련 사실을 얼마만큼 알고 있었느냐로 모아진다. 이와 관련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7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아주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애둘러 표현하기는 했지만 노 원내대표의 발언은, 맥락상 MB에게 관련 내용이 보고되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전제로 깔고 있다.

노 원내대표가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MB정권 당시 국정원장이 주기적으로 MB와 독대를 하면서 업무를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는 MB정권 하의 국정원이 이전 정부였던 참여정부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운영돼왔다는 의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취임과 동시에 국정원의 전면 개혁을 부르짖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위해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의 정치정보 수집을 금지시켰고, 국정원장과의 독대 보고도 받지 않았다. 국가 안보기관에서 정권의 보위기관으로 전락한 국정원의 탈정치화와 탈권력화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MB정권이 들어서자 국정원은 다시 기존의 모습으로 회귀한다. 대통령과 국정원장의 대면 보고가 부활했고, 국내 정치정보 수집이 재개됐다. 특히 MB는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원세훈 전 서울시 부시장을 국정원장에 임명하며 국정원에 대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참여정부 시절 잘못된 관행과 구습을 끊기 위해 제도와 시스템 개혁에 나섰던 국정원이 정권이 바뀌자 다시 권력의 보위기관으로 원상복귀된 것이다.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 TF에 의해 낱낱히 드러나고 있는 MB정권 시절의 국정원의 활약상(?)은 경악 그 자체다. 자세한 것은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하나씩 하나씩 벗겨지고 있는 국정원의 비위행위들은 MB와 원 전 원장의 합작품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노 전 대통령이 금지시킨 국정원의 정치정보 수집을 부활시키고, 30여개의 민간인 댓글부대를 조직·운영해 여론을 조작하고, 그를 통해 조직적으로 국내 정치와 선거에 개입한 것은 MB가 대통령이 된 이후의 국정원이 저지른 짓이기 때문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처음 세상에 알린 김상욱 전 국정원 직원의 주장 역시 국정원의 비위들이 MB와 연관돼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에 힘을 실어준다. 그는 지난달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에서 생산된 보고서는 기본적으로 청와대에 우선 보고되고 대통령이 결제를 하게 된다"며 국정원의 댓글 여론조작이 "대통령의 암묵적인 지시가 아니라 직접적인 지시와 교감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라고 폭로했다.

그는 "국정원의 법상 지위가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국정원이 특정 조직을 확대, 개편할 경우에는 필요성과 목적에 대해 반드시 청와대의 승인을 받게 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MB가 국정원 심리정보국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MB와 원 전 원장의 특수한 관계, 주기적으로 이뤄진 독대 보고, 조직의 생리와 특성을 감안하면 국정원의 정치 개입 행태를 MB가 몰랐을 리 없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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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흥미로운 것은 MB 측과 구여권이었던 자유한국당의 반응이다. 국정원의 댓글 공작이 다시 재조명되자 MB 측과 한국당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MB 측은 새 정부가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보수의 씨를 말리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한국당은 정치적 의도를 거론하며 '정치보복' 프레임을 가동시키고 있다. MB가 직접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솔솔' 풍기는 가운데 한국당은 '국정원개악저지 TF'를 발족시켜 대응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개탄스럽다. MB정권의 국정원이 벌인 범죄 행위에 다수 국민이 공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이를 주도한 당사자들은 반성은커녕 사과조차 없다. 물론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모습은 '대략난감'이다. 권위적인 국정운영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크게 후퇴시켰다고 평가받는 MB정권과,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서슴없이 '종북'으로 매도했던 한국당의 지난 행태를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저 뻔뻔함과 당당함을 어떻게 맨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국정원 개혁의 첫번째는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정권을 위해서는 그만하십시오. 정권이 국정원에 대해 지금 묻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아서 여러분들이 불안해 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권을 위한 국정원 시대는 이제 끝내 달라는 것이 나의 뜻입니다."(노무현 전 대통령, 2003년 6월20일 국가정보원 업무보고 및 직원간담회 자리에서)

'노무현의 국정원'과 'MB의 국정원'은 국가지도자의 철학과 인식이 국가기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권력기관의 사유화를 막기 위해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반대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에 힘을 썼던 노 전 대통령과, 국정원을 정권의 안위와 보위에 활용했던  MB 사이의 극명한 괴리가 이를 여실히 방증한다. 권력자의 '선한' 의지는 또 다른 권력자의 '나쁜' 의지에 의해 왜곡되고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국정원 적폐청산 TF의 진상조사 결과로 드러난 국정원의 비위들은 국민들의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드는 내용 일색이다. 이번 진상조사 결과가 충격적인 것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꼬리가 밟힌 댓글 공작이 국정원이 자행한 전체 대선 공작 중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 때문일 터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보호해야 할 국정원이 엉뚱하게도 민심과 여론의 조작에 앞장서는가 하면, 야당 정치인의 동향을 파악하고 언론과 국민을 조직적으로 감시하는 등 국가의 공적시스템을 근본부터 훼손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MB와 한국당의 입장은 초지일관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천인공노할 대선 공작을 감행하고도 이를 비호하기에 급급했던 그때나, 전모가 온 천하에 드러난 지금이나 전혀 차이가 없다. 외려 그들은 국정원 적폐청산 TF의 진상조사를 정치적 음모라고 규정하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설 태세마저 보이고 있다. 촛불민심의 요체이자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는 적폐청산의 국민적 요구는 안중에도 없다는 투다.


MB와 한국당이 꺼내든 '정치보복' 프레임은, 사실상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어 논리다. '정치보복' 프레임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그를 발판으로 적폐청산의 예봉을 꺾겠다는 의미다. 보수 주류언론을 통해 적폐청산의 피로감을 끊임없이 부추기며 '국민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라고 봐야 한다. 그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정의'라는 두 글자다. '이명박근혜'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자행된 국정농단, 권력의 사유화, 국가폭력과 인권 유린, 공공성 파괴 등이 회복되고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의 잘못들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선행되야 한다. 그것이 불공정과 불평등, 부조리와 부정·부패로 상징되는 소위 '적폐'에 맞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첫단추라 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적폐청산 없이는 달라질 것도, 새로워질 것도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맞서 '정의'를 세우려면 여기서 굴복해서는 안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쯤하면 됐다고 주춤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적폐의 생명력은 질기고 모질다. 촛불이 탄행시킨 새 정부에서조차 이를 확실하게 끊어내지 못한다면, 적폐는 '정의'를 또 '다시' 농단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는 우리 사회에 적폐청산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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