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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바른정당이냐 민주당이냐, 존폐 기로에 선 국민의당

ⓒ 오마이뉴스


국민의당이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톡톡히 앓고 있다. 당안팎으로 내우외환이 계속되면서 당내 갈등이 점점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초 국민의당은 22일 열렸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오는 8월 전당대회 전까지 당을 이끌 비상대책위원장을 추대하기로 계획한 상태였다. 그러나 박지원 전 대표와 일부 의원들이 중앙위원회의 개최를 요구하면서 계획이 꼬이게 됐다. 여기에 비대위원장이 유력하던 주승용 전 원내대표가 23일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우리 당을 걱정하시는 많은 분들께서 저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나서서 당을 잘 추스르라고 하십니다. 많이 고민했습니다만, 대선패배의 책임이 있는 제가 나설 차례는 아닌것 같습니다. 진짜 위로는 비가 올 때 우산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고 밝히며 백의종군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주 전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직을 고사한 배경에는 박지원 전 대표와 당의 원로 그룹인 동교동계의 반발이 결정적이었다. 박 전 대표는 22일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중앙위 개최를 요구하며 제동을 걸었고, 동교동계는 정대철 전 고문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지 않을 경우 탈당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는 바른정당과의 합당에 부정적인 박 전 대표와 동교동계가 통합에 적극적이었던 주 전 원내대표 체제의 비대위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동교동계가 더불어민주당과의 재통합을 주장하면서 내홍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동교동계는 대선 이후 당의 호남 지지율이 급속히 하락하면서 존립 기반이 심각하게 흔들리자 이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해오던 터였다. 그런데다 당내에서 바른정당과의 합당론까지 불거지며 정체성 혼란이 가중되자 결국 민주당과의 통합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동교동계가 민주당과의 통합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호남지역에서 국민의당의 위상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데다, 민주당내 친문 패권주의의 색채가 상당히 엷어졌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실제 동교동계의 지적대로 호남지역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지지율은 상당한 격차가 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5월 3주차 주간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호남지역 지지율은 67.0%로, 12.2%에 그친 국민의당을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선 이후 호남지역의 민심이 민주당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었다는 방증이다.

동교동계는 국민의당 창당의 실질적 원인으로 지목됐던 친문 패권주의 역시 사라졌다고 보고 있다. 동교동계 인사 중 한 명인 이훈평 전 의원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친문 패권이 싫어서 민주당을 탈당했지만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단행하는 인사 등을 보면 이미 그 패권이 사라졌다고 판단된다"면서 "이런 식이면 더 이상 국민의당에 남을 이유가 없다"고 강변했다. 국민의당의 호남 기반이 붕괴되고 민주당내의 친문 패권주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재통합이 문제될 것 없다는 주장이다. 


ⓒ 오마이뉴스


동교동계의 인식은 국민의당이 처해있는 위기의 본질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애초 지역정당의 한계를 안고 출범한 국민의당은 민주당과의 호남적자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미래를 담보할 수 있었다. 국민의당이 총선과 대선에서 참여정부의 '호남 홀대론'과 '반문정서'를 부추기는 네거티브 전략을 고수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국민의당의 전략은 이번 대선에서 거센 역풍을 맞았다. 안 후보가 외연 확대를 위해 노골적으로 우클릭 행보를 한 것도 커다란 실착이었다는 평가다. 구태의연한 정치공세와 호남민심을 오판한 전략적 행보가 결국 대선 패배로 이어진 것이다. 


현재 국민의당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당의 구심이었던 안 후보가 중앙정치 무대에서 한발 물러서고, 박 전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총사퇴하자 당의 위기를 추스릴 리더십에 공백이 생겼다. 바른정당·민주당과의 합당론, 비대위원장 추대 문제 등으로 당이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는 것도 결국은 당내 리더십의 부재가 주된 요인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국민의당의 위기가 리더십을 바로 세운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민주당과의 통합을 들고나온 동교동계의 주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동교동계인 박양수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이 지금처럼 잘한다면 국민의당이 어떤 호소를 호소를 해도 영향력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민주당과의 합당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창당에 크게 기여했던 동교동계의 현실 인식은 국민의당의 존재 이유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바른정당과의 합당론이 아직까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의 원로 격인 동교동계가 민주당과의 통합을 거론하자 당의 중진의원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민주당과 통합 물꼬를 트기 위해 대선 직후부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동교동계와 달리 중진의원들은 기본적으로 통합 자체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교동계와 함께 주 전 원내대표 체제의 비대위 출범을 사실상 저지시킨 박 전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의당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이유다.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를 아우르는 합리적 개혁주의 정당이 되겠다며 창당한 국민의당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국민의당의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안 후보가 내세웠던 '자강론', 주 전 원내대표가 제기했던 '바른정당과의 합당', 그리고 동교동계가 들고나온 '민주당과의 재합당'이 그렇다. 


그러나 자강론은 민주당으로 완전히 돌아선 지역민심을 고려하면 미래가 불투명해 보이고, 명분을 찾기 힘든 바른정당과의 합당은 외려 민심의 역풍을 부를 공산이 크다. 민주당과의 재합당 역시 당안팎의 이견이 워낙 극심해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산 넘어 또 산이다. 통합이냐 자강이냐,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길을 잃은 형국이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국민의당이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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