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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너진 양강구도, 안철수는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고 있나

ⓒ 오마이뉴스


"안철수 후보는, 5년 전 안철수 현상을 보세요. 5년 전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 좋아' 였어요, '나 안철수 좋아'. 이래서 안풍이 불었는데, 지금은 '난 문재인 싫어' 이게 안풍이예요. 그리고 5년 전에는 청년 멘토예요, 안철수 후보가요. 그래서 젊은층 지지가 되게 높았는데, 지금은 고령층 지지예요. 한 정치인이 5년 사이에 그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회적 기반이 이렇게까지 변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현상이예요. 저는 안철수 후보가 제 자리에 갔다고 봐요."


지난 13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유시민 작가는 대선에서 양강구도를 형성하는데 성공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조명하면서 안 후보의 정체성은 원래 보수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도·보수층 공략을 위한 '우클릭' 행보가 안 후보 본래의 정치 노선과 철학에 부합한다고 유 작가는 본 것이다. 

안 후보의 정치적 출발점은 기성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혐오에서 시작한다. 안 후보가 앞세운 '새정치'의 당위는 기성정치에 녹아있는 구태 청산에 있었다. 안 후보의 정치적 성공이 기성정치와 얼마나 차별화된 정치를 펼치느냐에 달려 있었다는 뜻이다. 낡은 것과 결별해 정치를 새롭게 혁신하고,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는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과제가 그에게 주어진 셈이다.

그러나 안 후보가 내세운 '새정치'의 신선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기성정치에 동화돼 갔다. 국민의당 창당이 그 비근한 예일 터다. 제3지대를 표방한 국민의당의 창당 자체가 안 후보가 내세운 '새정치'와 어긋나 있었다. 먼저 안 후보는 '새정치'와 거리가 먼 인물들로 당의 면면을 구성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당의 주축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호남중진들로 이루어졌다. 창당 과정에서 젊은 세대와 여성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용은 그보다 훨씬 더 나빴다. 인재영입을 발표했던 인사 3명의 비리전력이 드러나 빈축을 사는가 하면,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집착한 나머지 입법청탁 명목으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 3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신학용 의원을 입당시켰다. 이는 "부패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거나 재판에 계류 중인 당원에 대해서는 당원권을 정지하고 당직 및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던 자신의 소신을 뒤집은 결과다.

당의 정체성과 노선에 대한 논란과 잡음도 잇따랐다. 안 후보의 멘토로 알려진 한상진 창당준비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이 도마위에 오르는가 하면, 최원식 창준위 대변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제활성화 입법 촉구를 위한 1천만인 서명운동'에 서명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그 분은 성공한 기업인이잖아요. 그리고 대한민국의 엘리트잖아요. 원래 제대로 된 보수정당이라면 그런 스타일의 리더가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안철수 후보가 처음에 등장할 때는 청년층의 지지와 진보적인 색깔을 가진 유권자들의 호감을 바탕으로 등장했는데, 지금 왜 그게 이렇게 봐뀌었을까를 보면, 안철수 후보가 지난 몇년 간 걸어왔던 정치적 행보, 정책 노선 이 모든 것들이 중도·보수층이 호감을 가질 수 있게끔 해왔다구요. 그래서 이 결과가 이렇게 온 거예요."

유 작가가 지적한 젊은 세대의 이탈이 본격화된 것도 바로 그 무렵이다. 안 후보가 정치 철학과 노선, 경제 관점과 비전, 대북 정책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보수우파 정치인의 모습을 드러낸 데다, 그가 기성 정치인들과 별반 차이 없는 정치적 행보를 보여왔던 탓이다. 그 결과 안 후보의 지지층은 젊은 세대에서 50~60 세대로 완전히 뒤바꼈다. 한때 중도·진보층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정치인은 이제  보수층의 대안이 돼 버렸다. 



ⓒ 오마이뉴스


지난주까지 무섭게 치달았던 안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가 무너졌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 후보의 지지율 하락세가 완연하다. 21일 한국갤럽이 지난 18~20일 전국 1004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안 후보는 지난주보다 7%포인트가 하락한 30%를 기록했다. 이에 문 후보와의 차이가 지난주 3%포인트에서 11%포인트로 벌어졌다. 파죽지세로 문 후보의 턱 밑까지 추격했던 기세가 꺾인 것이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안 후보의 지지율 하락은 거세진 검증공방의 결과라는 것이 중론이다. 국민의당 경선 불법 동원 논란, 조폭·신천지 연루설 등이 잇따라 터진 데다, 부인인 김미경 교수의 특혜임용 의혹과 유치원 공약 논란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안 후보의 지지율 하락은 일시적으로 그에게 쏠렸던 전통적인 보수층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전통적 보수층이라 할 수 있는 TK와 충청, 그리고 50대 이상의 표심 변화가 그 방증이다. 이번 조사에서 안 후보는 TK지역에서 전주보다 무려 25%포인트가 하락한 23%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대전·세종·충청에서 13%포인트가 빠진 23%를 기록했다. 안 후보의 지지율은 50대 이상에서도 10%포인트 가량 하락했다. 이같은 현상은 안 후보의 지지율 상승을 주도했던 보수층의 표심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 후보에 비해 절대적 충성층이 약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안 후보는 중도·보수층으로의 외연 확대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사드 배치 반대에서 돌연 찬성으로 선회한 것이나, 개성공단 재가동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 것, 전작권 조기 환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도 그런 이유다. 또한 '주적' 논란이 불거지자  문 후보를 향해 색깔론을 펴고 있는 것도,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북한 의사를 사전에 확인했는지 밝히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작 자신은 표 계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안 후보가 보이고 있는 일련의 행보들은 정치적 외연 확대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국정농단 사태의 공동정범인 한국당을 포함한 통합 내각을 시사한 것도 그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전략적 선택이다. 중도·보수층의 이탈 조짐이 확인되자 안 후보의 보수색채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 후보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 있다. 거듭된 '우클릭' 행보에도 불구하고 중도·보수층의 지지율이 외려 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안 후보의 확장성이 전통적인 보수층을 뚫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 후보의 지지기반인 호남지역에서 문 후보에게 밀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 안 후보의 트레이트 마크나 다름 없던 새정치의 참신함이 희석된 가운데, 보수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안 후보에게 호남지역 민심이 돌아서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정치 입문 이후 안 후보가 가장 많이 비판받았던 것 중의 하나가 전략적 모호성이었다. 정치적 사안마다 양비론을 앞세워 중립적 포지션을 취했던 그의 행보에 언론은 '중도'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중도지향적인 안 후보의 행보가 과연 누구를 대변하고 있냐는 거다. 이도 저도 다 품겠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누구도 품지 않겠다는 말이다. 새정치의 참신함이 사라진 '안철수', 기성정치의 틀에 갖혀버린 '안철수'는 무미건조하다. 안 후보는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나. 안 후보의 전략적 행보의 '득실'을 냉정히 따져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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