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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최경환의 의리? 무슨 이 따위 의리가 있어!

ⓒ 오마이뉴스


"아무리 탄핵을 당한 대통령일지라도 사저로 처음 돌아오는 날에 인사 정도는 하러 가는 게 인간적 도리이지 않겠느냐. 박 전 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했다고 모르는 척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처신인지 묻고 싶다. 대통령이 탄핵되었다고 해서 인간적인 의리를 끊으라고 하는 것은 저에게 어떤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손꼽히는 자유한국당의 최경환 의원이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 중 일부다. 지난 일요일 최 의원을 포함한 한국당 친박 핵심의원들이 청와대를 떠나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거처를 옮긴 박 전 대통령을 마중나간 것을 두고 비난이 일자 그에 대한 심경을 밝힌 것이다.

최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세상의 박한 인심이 야속하다는 듯 속에 담아두고 있던 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의원들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그 곳에 간 것이 아님을 밝힌 뒤, "박 전 대통령이 재직시절 직접 모시거나 남다른 인연을 맺은 의원들이 인간적이 도리를 다하고자 마중나간 일에 대해 매도당하니 세상민심이 야박할 따름"이라고 불만을 내비쳤다.

맞는 말이다. 최 의원의 지적대로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세상 인심은 야박하다 못해 차갑기 그지 없다.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데에 따른 안타까움과 연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파면 직후 리얼미터가 <MBN>과 <매일경제>의 의뢰로 여론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6%가 헌재의 대통령 파면을 "잘했다"고 답했을 정도다. 어디 이뿐인가. 박 전 대통령을 구속수사해야 한다는 여론 역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쯤되면 '야박' 정도가 아니라 매몰차고 모질다고 해야 옳다. 


그러나 최 의원의 충정과 안타까운 심정과는 별개로 그가 크게 간과한 것이 있는 것 같다.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세상 인심이 왜 이렇게 흉흉해졌냐는 거다. 정치인이라면 야박한 민심을 탓하기 전에 민심이 이렇게 돌아선 이유를 성찰해야 하는 것이 먼저다. 원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최 의원을 비롯한 친박 핵심세력들이야말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들이다.

민심을 되돌릴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정부 출범 이후 민심 이반의 징후들을 곳곳에서 표출됐기 때문이다. 소통과 공감 능력 부족, 쓴소리를 싫어하는 독단과 독선, 비민주적이머 권위적인 리더십, 여론을 무시하는 일방적인 국정운영, 투명하지 못한 인사 시스템 등 박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숱한 문제제기가 있어온 터였다. 그러나 그 때마다 번번히 박 전 대통령은 오불관언적인 태도로 일관해왔고 독불장군식 통치를 고집해왔다.


최 의원을 비롯한 친박 핵심세력들 역시 다를 바 없었다그들은 대통령의 심기만 살피는 청와대의 거수기이자 박 전 대통령의 친위부대로써의 역할에만 충실해왔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당내에서는 친박 패권주의를 앞세워 정당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당을 회복 불능의 상태로 몰고 갔다. 그 결과가 바로 보수 대분열이다.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져주기 보다는 정권 유지와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에 혈안이 돼온 그들에게 민심이 돌아선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런데 최 의원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야박한 민심이 세상 탓이라도 된다는 뜻인가. 방귀 뀐 사람은 성을 내서는 안되는 거다. 양심이 있다면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반성과 참회가 먼저여야 할 것이다.


ⓒ 오마이뉴스


자신들의 행위에 정치적 목적이 없다는 주장 역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친박 핵심세력들은 현재 박 전 대통령의 정치활동 재개를 위한 역할 분담을 마친 상태다. 그들은 서청원·최경환(총괄), 윤상현·조원진·이우현(정무), 김진태(법률), 민경욱(언론), 박대출(수행) 등으로 조직 구성을 끝내고 박 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사저 정치'를 펼 수 있는 채비를 구축했다. 이름하여 '삼성동계'다.

1인 보스 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계파정치가 부활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한국 정치의 퇴행이자 퇴보다. 상도동계, 동교동계의 경우 군부독재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주화의 당위라도 있었지만,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한 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성되는 '삼성동계'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를 망각하고 구태 정치에 발벗고 나서고 있는 친박 핵심세력들을 향해 국민적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당을 헌정 질서와 법치 테두리 밖으로 끌어내고 흔드는 행위는 당 존립 기반을 부정하는 행위로 어떤 이유로도 절대 용납될 수 없다"(한국당 인명진 비대위원장), "지도부가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한 징계와 해야 될 일을 해야 된다. 명백한 해당 행위"(나경원 의원), "탄핵 자체에 대해서 불복을 하는 박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가 돼 가지고 지키겠다는 소위 '진박'들의 태도를 보면서 국민이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바른정당 정병국 대표)

친박 핵심세력들을 향한 비판은 한국당 내에서는 물론 보수진영에서도 터져나오고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친박 핵심세력들의 '경고망동'이 행여 대선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해서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궤멸의 위기에 빠져 있는 보수진영에게 친박 핵심세력들의 행태는 엎친 데 덮친 겪이나 다름 없다. 극강의 패권주의로 보수진영을 풍비박산낸 그들이 또 다시 계파주의를 부활시키고 있으니 시쳇말로 답이 없는 것이다. 


최 의원이 언급했던 인간적인 '의리'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의리. 참 좋은 말이다. 아무리 세상이 흉흉해졌다 한들, 사람 사이의 관계성이 엷어졌다 한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는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리는 사람을 다른 종과 구별시키는, 권장하고 권면해야 할 미덕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의리란 것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이 참 다르다. 예를 들어 보자. 조폭 세계의 의리도 의리라 부를 수 있는 걸까. 범죄자들이 범죄를 은폐하고 조작하기 위해 입을 맞추고 진실을 감추는 행위를 의리라고 할 수 있을까. 학연·지연 등을 이용해 파벌을 형성하고, 조직과 세력을 구축해 나가는 것은 또 어떤가. 선거에서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거나, 원칙을 무시하고 특정 계파를 밀어주는 행위를 의리라 할 수 있을까.

의리도 누가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빛이 날 수도 있고, 변색될 수도 있다. 의리라고 다 같은 '의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최 의원이 말한 의리는 어떤가. 인간의 '인간다움'을 오롯이 밝혀주는 미덕으로서의 의리일까.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최 의원이 언급한 의리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가치판단의 영역이다.

그러나 나는 최 의원의 견해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의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 이렇게 정의하는 이유는 그 행위 속에 도덕과 공정, 정당성 같은 인류보편적 가치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전제될 때라야 비로소 의리는 (우리가 아는) '의리'가 된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의 행위는 인류보편적 가치에 대한 부정이자 명백한 도전이었다. 최 의원이 밝힌 의리는 그 기본부터가 어긋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최 의원이 밝힌 의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의리'라고 볼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도대체 무슨 이 따위 의리가 있단 말인가. 유시민 작가의 말을 빌어 표현해 보면, '의리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의리가 입이 있으면 정말 주먹 쥐고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나 억울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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