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극우세력의 망동,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 오마이뉴스


대구매일신문 테러사건은 대한민국 언론사의 흑역사로 기억되는 사건이다. 대낮에 일어났다고 해서 이른바 '백주의 테러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1955년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 시절에 발생했다.


사건의 내막은 이랬다. 당시 자유당 소속 정치인이면서 유엔 대표부 상임대사였던 임병직이 9월 10일 대구를 방문한다. 이에 자유당은 임 대사의 방문에 맞춰 수백명의 중고등학생들을 동원했고, 아침부터 불려나온 학생들은 땡볕에 몇 시간이나 서 있어야 했다.

이를 목격한 대구매일신문의 최석채 주필은 9월13일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는다. 최 주필은 이 사설을 통해 당시 암묵적인 관행이었던 정치권력의 학생동원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사건이 터졌다.

14일 오후 2시25분경 곤봉과 쇠망치를 든 괴한 20명이 대구매일신문사에 불법 난입해 윤전기 등 시설물을 부수고 직원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한 뒤 달아나는 집단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은 훗날 국민회 경북도본부 총무부차장, 자유당 경북도당부 감찰부장 등이 주도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테러 사건 이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자유당 정권은 사건 발생 3일 뒤 최 주필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전격 구속했고, 이 사건을 담담했던 신상수 경북경찰청 사찰과장은 "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는 희대의 망언을 남기며 사건을 무마시키려 했다.

언론의 계속된 문제 제기로 국회진상조사단이 꾸려졌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유당 정권은 테러가 자신들과 무관하다며 발뺌을 했고, 심지어 최창섭 자유당 의원은 "애국심에 불타 테러를 한 청년에게 훈장이라도 주고 싶다"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해가며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켰다.

당시는 그랬다. 지금이라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정부여당과 국가기관, 그리고 관변단체들이 작당해 정부 비판세력에 재갈을 물리는 일이 다반사였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극단적 테러가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던 시절이었다. 보편적 상식과 합리적 이성을 찾아볼 수 없는 집단적 광기와 야만이 난무하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백주의 테러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사건의 발단과 배경, 그리고 이후의 사건 진행에 이르기까지 이성을 망각한 인간의 폭력성이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와 결탁하면 어떤 끔찍한 상황이 초래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 오마이뉴스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든 것은 시절이 하도 수상해서다.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좌우의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자유당 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극단적 광기와 폭력이 난무하던 그 시절이 도래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지경이다. 우스갯소리로 말해왔던 자유당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일들이 실제로 펼쳐지고 있는 탓일 터다.

탄핵 심판과 맞물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극우세력의 반헌법적이고 반사회적인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장소와 대상을 불문한 그들의 막가파식 행동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일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촛불집회 현장 맞은 편에서는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김제동씨를 향해 모골이 송연해지는 극단적인 표현들을 마구 쏟아냈다.

"얼굴도 못생긴 게 마음도 참 뭐같이 생겨서 내가 오늘 김제동 모가지 비틀러 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이 XXX 내 앞에 나타나면 눈깔을 뽑아서 부엉바위에 갖다 버리겠다"는 반인륜적인 발언을 거리낌 없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극우세력들은 단순히 모욕적 폭언만 쏟아내는 것이 아니다. 탄핵 기각을 주장하는 세력들의 광기는 급기야 테러를 선동하는 수준으로까지 비화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중인 박영수 특검팀에 대한 테러를 조장하는 글들이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오는가 하면, 놀랍게도 탄핵 심판을 심리 중인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죽이겠다는 섬뜩한 글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극우세력의 일탈은 의사 표현의 자유를 넘어 급기야 개인의 존엄과 안전, 생명을 위협하는 반사회적인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의 인격을 말살하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사회공동체의 기본적인 질서를 파괴하는 사회악이나 다름 없다.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극우세력의 반사회적 행태에 대한 정부여당과 국가시스템의 대응 방식이다. 사회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하는 폭력적 망동에 대한 통제와 제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보수 단체들이 주축이 된 태극기집회에서는 취재기자들과 시민들을 향한 폭언과 폭행이 부지기수로 이뤄지고 있다. 이에 극우세력의 무분별한 폭력 행위를 의법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에 대한 통제와 법적 처벌은 전무한 상태다. 


집권당인 자유한국당의 행태는 그보다 더욱 고약하다. 국정농단을 막지 못한 공동정범으로써 자숙해도 모자랄 판에 외려 태극기집회에 참석해 여론을 호도하고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대중 선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과 반성은 고사하고 진영논리와 이념갈등에 편승해 어떻게든 정치적 이득을 도모하려는 무도함만이 엿보일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궁지에 몰렸던 한국 지도자는 거의 없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그는 가장 인기 없는 지도자 중 하나로 꼽혔고, 80%에 달하는 응답자는 그가 청와대를 떠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여전히 정광용 박사모 대표 같은 사이비 종교 신도 같은(cult-like) 사람들을 장악하고 있고, 이들의 계속된 헌신은 이르면 5월에 치러질 대선에 세울 만한 후보를 찾고 있는 보수 세력을 분열시키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19일 서울발 기사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우세력의 탄핵 반대 집회를 광신도에 비유했다. 통탄스럽다. 제3자의 시선에 비친 저들의 광란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이 볼쌍스러운 장면이 역사의 명백한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수십 년 전 자유당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일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천연덕스럽게 벌어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민주주의적 가치가 무너지는 것은 이처럼 한순간이다. 



♡♡ 바람 언덕의 정치 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