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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안희정 현상, 어떻게 봐야 할까

ⓒ 오마이뉴스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지리멸렬해 보이는 범여권과 달리 야권은 그야말로 유례 없는 '풍년'이다. 후보군의 면면이 출중한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심판의 반사이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 단연 눈길이 가는 곳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을 쇼트트랙이나 양궁선발전에 비견하기도 한다. 그만큼 여타의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민주당 후보의 기세는 좀처럼 꺾일 줄을 모르고 있다.

'안희정·문재인·이재명'(가나다 순)의 3파전으로 전개되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화제는 단연 안희정 충남지사다. 지난 1월22일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이후 안 지사의 약진은 눈이 부실 지경이다. 거침 없던 이재명 성남시장의 상승세를 누르더니 불과 몇 주 사이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단기간에 지지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안 전 지사는 지지기반인 충청권 외에도 호남과 민주당 지지층을 흡수하며 문 전 대표와의 격차를 좁혀 나가고 있다. 급기야 한국갤럽의 2월3주차 대선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는 마의 20%를 돌파하며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동안 잠재적 대권 잠룡쯤으로 인식되던 안 전 지사가 단기간에 유력한 대권 후보로 자리잡은 요인은 무엇일까. 


안 지사는 젠틀하고 스마트한 인상을 풍긴다. 여기에 50대로써 젊고 진취적이며, 역동적일 것 같은 기대감도 갖게 만든다. 친근함과 부드러움은 안 지사의 또 다른 매력이다. 기성정치에 물들지 않은 참신함과 신선함도 돋보인다.

게다가 안 지사는 보수와 진보 모두를 껴안을 수 있는 이념적·정책적 유연함까지 갖췄다. 진보진영 뿐만 아니라 보수·중도층까지 흡수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이 자중지란에 빠진 보수표를 상당 부분 잠식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 전 대표의 약점이라 지적받고 있는 외연확장력을 안 지사가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안 지사는 갓 출시된 '신상품'이다. 여타의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출이 덜 됐다. 그런 탓에 안 지사는 유권자들의 집중 관심 대상이다. 그의 언행 하나하나에 대중들의 관심과 이목이 쏠리고,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된다. 소비자들이 새로운 제품에 주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 오마이뉴스


안희정 현상. 지지율이 가파르게 치닫자 언론은 안 지사 돌풍을 저렇게 진단했다. 그럴만 했다. 안 지사는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지 불과 한 달만에 20%의 지지율을 돌파했고, 온갖 화제와 이슈를 몰고다니는 태풍의 눈이 됐다. 이제 안 지사를 잠룡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재의 추세는 안 지사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승자가 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모양새다.

안 지사는 대선출마 선언 당시의 공짜밥 논란부터 시작해 사드 배치 발언, 대연정 제안, 이재용 영장 기각 발언, 녹색 성장·창조경제 계승, '선한 의지' 발언 등 집토끼들을 자극하는 각종 논란 속에서도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상승세다. 이쯤되면 하나의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현상은 어딘가 조금 불안하다. 왜 그럴까. 진보와 보수의 공존을 말하고 있지만 그 경계가 지극히 모호하다. 디테일이 옅은 추상적 담론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선한 의지' 논란에서 드러나듯)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대원칙마저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외연확장을 위한 계산된 행동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안 지사의 행보 속에서 기존의 정치 문법이 조금씩 묻어나는 탓이다. 


안 지사가 당대인들의 시대정신을 비켜난 언행을 보이고 있는 것도 '안희정 현상'이 불안해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다. 현상은 그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이다. 그 속에는 당대인들의 삶과 뜨거운 열망이 동시에 녹아있다. 그러나 안 지사의 모습 속에는 당대인들의 삶과 열망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흔적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중도·보수층을 흡수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가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물론 안 지사의 행보를 '선한 의지'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정치의 미래가 공존과 상생, 협치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진영논리로 점철된 갈등과 대립의 정치를 끝내기 위한 고민의 흔적으로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치는 당대인들의 삶과 현실로부터 유리되는 순간 박제가 된다. 당대인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꿈과 희망을 승화시키지 못하는 순간 그 생명력이 소멸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그 좋은 본보기다. 반 전 총장은 당대인들의 시대정신과 열망을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낙마했다.  


도무지 멈출 것 같지 않아 보였던 안희정 충남지사의 상승세가 꺾였다. 리얼미터가 지난 20~22일 전국 성인 1508명을 상대로 실시한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5%포인트)에서 안 지사의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1.2%포인트 떨어진 19.2%를  기록했다. 거칠 것 없이 상승하던 지지율이 처음으로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20% 지지율까지 무너졌다. 이에 안 지사 캠프의 분위기도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일시적인 지지율 하락인지 아니면 안 지사에게 쏠렸던 거품이 빠지는 것인지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대선출마 선언 이후 거침 없이 달려왔던 안 지사의 파죽지세에 일단 브레이크가 걸린 것만은 분명하다. 일주일이 고비가 될 것이다.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지 아니면 우리 사회를 집어삼킬 거대한 하나의 현상이 될 지, 안 지사의 도전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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