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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혁적 보수 바른정당은 왜 뜨지 못할까?

ⓒ 오마이뉴스


바른정당이 '의원직 총사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7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기각될 경우 의원직을 총사퇴하겠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결과에 승복하고, 만약 탄핵이 기각되면 탄핵을 주도한 정당으로서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는 취지다.

의원직 총사퇴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이다. 결기의 표현이라 보는 긍정의 시각이 있는가 하면, 현실성 없는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있다. 전자가 사즉생의 배수진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진부한 정치공학적 클리셰의 성격이 강하다. 바른정당이 꺼내든 '의원직 총사퇴'는 이 두 가지 중 어디에 해당될까.

실체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바른정당이 처해있는 현실을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아는 대로 바른정당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새누리당(이하 자유한국당)으로부터 분열해 나온 정당이다. 극심한 계파갈등과 패권다툼, 탄핵 정국의 격랑 속에서 바른정당은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겠다며 자유한국당을 박차고 나왔다.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건강하고 따뜻한 보수'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보수의 적통을 두고 펼쳐지는 '보수 쟁탈전'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면 수구보수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시급하다 본 것이다. 선명성을 강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자유한국당에 등을 돌린 합리적 보수층을 껴안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바른정당의 원대한 포부는 현실에서 전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창당 초기의 컨벤션 효과가 사라지고 이곳 저곳에서 약점이 노출되면서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실제 정당에 대한 민심의 향배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인 정당 지지율에서 바른정당은 보수의 적통을 놓고 경쟁하는 자유한국당은 물론이고 비교섭단체인 정의당에도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지난 6~8일 동안 성인 남녀 15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이 45.4%로 부동의 1위를 기록한 가운데 바른정당은 전주보다 2.5%가 하락한 5.8%를 기록하며 5위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2~3위를 기록한 자유한국당(13.8%)과 국민의당(10.5%)은 물론 정의당(6.8%)에게도 밀리는 것으로, 바른정당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다.

바른정당의 지지율 하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니, 바른정당은 왜 뜨는 못하는 것일까. 이슈 선점에 뒤쳐지는 전략의 부재, 애매모호한 정치적 스탠스, 미미한 대선 주자 지지율, 취약한 조직 기반 등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가 있을 터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이유는 창당의 목적과 정신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바른정당의 행보에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당할 것이다. 

주지한 바와 같이 바른정당은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세우겠다는 명분으로 창당했다. 이를 위해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을 낡은 보수로 규정하는 한편 탄핵 정국에서 확인된 시대흐름과 민심에 발맞춰 건강한 보수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자유한국당이 보여온 패권주의와 당리당략적 행태를 배격하고, 비이성과 몰상식의 구태 정치에서 벗어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정치를 펴나가겠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창당 이후 바른정당은 자신들이 천명했던 것과는 다른 행태를 보이며 빈축을 사고 있다. 당리당략과 이해타산에 매몰되는가 하면, 과거 자신들이 즐겨 사용했던 네거티브와 색깔론에 의존하는 구태 역시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사안에 따라 오락가락 행보를 이어가면서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시대적 흐름이자 국민적 요구인 선거연령 하향 의제를 하루 만에 번복했던 것을 시작으로 바른정당의 갈지자 행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달 20일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자유한국당과 함께 '국정교과서 금지법' 표결 불참을 선언하며 동반 퇴장했다. 이 와중에 교문위 소속 바른정당 이은재 의원은 국정교과서 금지가 "미개하다. 아프리카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바른정당은 국민적 관심사인 특검 연장에 대해서도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선제적 조치를 하기보다는 야3당과 여론의 추이를 살피며 적절히 대응하겠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모습은 탄핵안 추진 과정에서 친박계와 민심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 뒤늦에 탄핵 찬성으로 돌아섰던 당시의 모습과 대동소이하다.

바른정당은 건강하고 합리적인 개혁적 보수를 표방하겠다면서도 대표적 개혁 입법 중의 하나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법안을 반대하고 있다. 그로 인해 공수처 신설 법안의 2월 임시국회 입법은 사실상 물건너간 상태다. 구태 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네거티브와 색깔론에 집착하는 모습도 여전하다. 정책과 비전, 미래지향적 담론이 아닌 이념과 진영논리에 기댄 색깔론과 네거티브는 우리 정치의 저급·저렴화를 부추겨온 실질적 주범이다. 그럼에도 바른정당은 철지난 색깔론과 네거티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바른정당의 입지는 그들이 자유한국당의 대체제로서 얼마만큼의 효용성과 가치를 지니느냐에 달려있다. 차별화된 전략과 전술을 통해 자유한국당에 등돌린 보수세력과 무당층을 끌어안아야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바른정당에게는 아직까지 그런 모습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다양한 정치·사회적 의제에서 자유한국당과 공조를 맞추며 차별화에 실패하는 모양새다.


바른정당이 꺼내든 '의원직 총사퇴'는 고육지책에 가깝다. 안으로는 보수의 적통을 놓고 자유한국당과 싸워야 하고, 밖으로는 탄핵 주도권을 선점하고 있는 야당과 개혁 의제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른정당의 '의원직 총사퇴' 카드는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바른정당의 성패는 땅에 떨어진 보수의 품격과 가치를 그들이 어떻게 재정립할 수 있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자유한국당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바른정당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관건은 자유한국당과의 차별화에 있다. 보수 분열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고 창당을 선택한 이상 길은 어차피 외길이다. 바른정당이 촛불민심으로 확인된 우리 사회의 개혁과 혁신, 적폐 청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좌고우면하면서 과거의 구태를 재연하는 한 바른정당에게 미래는 단연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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