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내가 이러려고 '박근혜·최순실 청문회'를 시청했나?

ⓒ 오마이뉴스


국회의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가 9일 종료됐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초 대기업청문회를 시작으로 어제까지 모두 7차례의 청문회가 열렸지만 증인 불출석, 증인들의 모르쇠 답변, 위원들의 준비 부족 등이 겹치면서 맹탕 청문회가 돼버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번 청문회는 '최순실 청문회'라는 이름이 무색한 청문회였다. 최순실씨는 작년 12월26일 19년 만에 열린 구치소 청문회의 비공개 신문에 잠깐 모습을 드러냈을 뿐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다청문위원들에 따르면 당시 혐의를 전면 부인하던 최씨는 이 과정에서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박 대통령과 공모해 사익을 추구하고 국정을 마비시킨 주범의 행태가 이 모양이니 나머지 증인들의 뻔뻔함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청문회를 통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밝혀지기를 기대한 국민들은 오히려 TV 화면을 통해 전해지는 볼쌍스런 장면들에 분통을 터트려야만 했다. 핵심 증인이 빠진 청문회, '모른다'와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이 반복되는 청문회, 예리한 질문과 논리 대신 호통과 조롱, 면박주기가 난무하는 청문회의 모습은 '이러려고 청문회를 시청했나'라는 자괴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청문회라 더욱 주목을 받았던 7차 청문회에서도 이같은 모습은 고스란히 재연됐다. 이날 증인으로 채택된 20명 중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포함해 단 4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조 장관과 구순성 대통령경호실 행정관은 국회의 동행명령장이 발부된 오후가 되어서야 마지못해 청문회에 출석했다. 청문회에 임하는 증인들의 자세와 땅에 떨어진 국회의 권위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여러모로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 청문회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청문회의 취지와 목적에 걸맞는 성과를 올리기 난망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 청문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번 청문회가 핵심 증인들의 무더기 불참으로 속 빈 강정이 됐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따라서 가장 먼저 손봐야 하는 것은 증인 출석에 관한 규정이다. 물론 청문회 불출석에 따른 제제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국회 증언·감정법)'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은 증인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처벌 규정은 국회로부터 고발을 당한다 하더라도 대부분 벌금형에 처해지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중론이다. 불출석에 따른 처벌 규정을 강화해 증인들이 청문회에 자발적으로 나오도록 강제해야 하는 이유다. 


증인들의 위증과 증언 거부에 대한 처벌 수위도 대폭 높여야 한다. '국회 증언·감정법'은 증인 또는 감정인이 허위의 진술이나 감정을 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으로 처벌받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청문회에 참석한 증인들이 숱한 정황 증거에도 불구하고 '모르쇠'로 나오는 주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증인들의 위증과 증언 거부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를 능멸하는 중대 범죄에 해당된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국회 증언·감정법'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완책이 반드시 요구된다.


청문위원들의 질의 시간도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5공 청문회를 통해 유명세를 탈 수 있었던 이유는 패기와 열정, 치밀힌 준비 외에도 30분에 달하는 충분한 질의 시간이 크게 한몫했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의 경우 청문위원의 질의시간은 일회당 7분으로 제한됐다. 애초 청문회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도입한 '7분 질의'가 외려 위원들의 깊이있는 질의와 추궁을 가로막는 방해 요인이 됐던 것이다. 충분한 시간 보장은 위원들의 깊이있고 심도있는 질의를 위한 최소 조건이다. 청문위원들의 수를 조정해서라도 위원들의 발언시간을 늘려야 한다. 


이와 관련해 청문위원들의 준비부족과 자질 문제도 반드시 되새겨 봐야 한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일부 청문위원들의 자질과 태도 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위원들은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는가 하면 언론에서 이미 보도된 내용을 되묻는 수준의 질의를 이어가 국민을 한숨짓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예리하고 날카로운 질문 대신 호통과 고성, 저주가 난무하기도 했고, 심지어 위증교사 논란까지 벌어지며 파행을 겪기도 했다. 증인 불출석과 위증 및 증언 거부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 못지않게 청문위원들의 치밀한 준비와 자질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국조특위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7차 청문회가 종료된 뒤 국조특위는 청문회에 불출석한 증인들을 반드시 불러내겠다며 국정조사 활동기간을 한달간 연장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는 이번 청문회가 갖은 논란과 파행 속에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는 사실을 국조특위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의 청문회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국조특위의 활동기한이 연장된다 해도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강제수사권이 없는 이상 국조특위의 결의가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조특위는 이번 청문회에서 나타난 한계를 면밀히 검토해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핵심 증인들이 청문회에 반드시 출석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일이 급선무다. 뻔뻔함의 극치를 보이며 시민을 맘껏 우롱하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범들을  증언대에 세우는 것이야말로 이번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지름길이다. 




세상이 보이는 정치·시사 블로그 ▶▶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